영상 상세
성북
학창시절
미아리고개
추억
돌아보라 그리고 기억하라
2014-07-01
성북천, 학창시절, 미아리 고개 등 성북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을 영상으로 제작, 빠르게 변화하는 삶 속에서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 보고 추억에 잠길 수 있게 하는 영상입니다. - 돌아보라 그리고 기억하라 -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사진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가끔은 빛바랜 사진으로 시간의 공백을 메우고 싶어집니다. 북악터널이 생기기전 정릉동은 농촌 풍경과 다르지 않습니다. 66년 서울시에서는 3일에 한 번씩 각 가정을 돌며 건의여망 사항을 듣고 민원도 처리하는 가정시장제를 실시하였는데 우리 구는 동선동에서 하였나 봅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집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부흥주택 등 각가지 이름의 주택들이 지어졌지만 집 없는 사람은 줄지 않았습니다. 미아리고개가 얼마나 높고 가파른 고개였는지는 구름다리 높이로 짐작 할 뿐입니다. 6,25 전쟁 때 이 고개를 넘어 끌려갔던 많은 사람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 때 사연을 내용으로 한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국민가요가 되었습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미아리고개 변화는 돈암동 옛 전차 종점을 흔적조차 사라지게 했고 높은 고개는 깎이고 도로는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종로 3가에서 6.25때 남산주변으로 옮겼던 점술가들이 미아리고개 주변에 터를 잡아 점성촌을 이루게 됩니다. 84년 하루 5천여 명의 손님이 이곳을 찾아들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는 기사가 눈길을 끕니다. 성북천은 예전엔 맑고 깨끗해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던 곳이었습니다. 소설가 박완서님은 ‘그 남자네 집’라는 소설에서“개천 쪽으로는 수양버들이 늘어져 있어 차가 많지 않은 당시에는 다른 동네 사람들까지 일부러 산책을 올 정도로 한적하고 낭만적인 길이였다”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60년대의 개발 바람은 이런 성북천을 복개하여 아파트 건물이 들어서게 했지만 최근에 낡은 건물이 철거되면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20여년 전 월곡동 동네모습은 오히려 정겹습니다. 사소한 일로 이웃과 소원해지면 누군가 나서서 막걸리 한잔으로 화해시키고 혼기 찬 자녀 걱정을 함께했던 시절,? 허름하고 불편했던 시절이었지만 정은 넘쳤습니다. 당시 월곡동은 외곽이라 제약회사 공장을 비롯한 많은 공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이전되고 새롭게 단장한 라면 공장만이 그 시절을 짐작하게 할 뿐입니다. 라면공장 뒷산에는 두산아파트와 래미안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물이 귀하던 시절, 변두리 지역이나 고지대 주민들은 밤에만 찔끔찔끔 나오는 수돗물을 받기 위해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습니다. 당시 성북구 관할이었던 삼양동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이를 업은 여인들까지 물을 받기 위해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지하수에 등목을 하고 나면 심장도 얼어 버릴 것 같은 시원함을 지금의 에어컨 바람과 비교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청수장 주변은 워터파크처럼 물놀이를 즐기기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서울로 시집온 딸의 살림살이가 보고 싶어 시골에서 온 친정아버지와 4대가 청수장으로 나들이를 했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청수장은 없어졌지만 그 시절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자녀들의 운동회와 소풍이 어른들의 잔치였던 시절, 첫아이의 소풍날을 핑계로 모처럼 가사에서 해방 되었던 젊은 엄마, 고무신에 긴 치마를 입고도 열심히 공 굴리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 눈이 가는 것은 사진이 담고 있는 많은 이야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귀하던 시절 학교 졸업식장 앞에서는 근검절약 캠페인을 하게했습니다. 1970년도 길을 지나다 현금 백 원을 주워 서울시 모범 표창장을 받은 초등학생 기사가 미소 짓게 합니다. 손녀의 졸업식, 불편한 몸을 이끌고 꽃다발을 전해주던 할머니와는 아마도 점심을 자장면으로 했겠지요? 50년 전 교실에서 깔깔대던 소년들은 중년을 훌쩍 넘긴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할아버지와 손을 잡고 있던 손녀딸은 귀여운 아이 둘을 낳은 엄마가 되었고, 길음교 앞에서 아빠와 함께 서있던 꼬마 아이는 증손녀를 둔 할머니가 되었으며, 성당 앞에서 서있던 멋쟁이 새댁은 어느새 듬직한 모습으로 자라난 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성북천 앞에서 귀여운 포즈를 취했던 여자 아이는 깜찍한 딸의 엄마가 되었고, 드림랜드 앞에서 한껏 포즈를 취하고 있던 소년은 성북구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세월의 변화에도 성북에서 자라고 성북에서 가정을 이루며 성북에서 살아가는 것은 그냥 성북이 좋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가정들이 모여 성북의 역사를 이루어 갈 것입니다. 빛바랜 사진 속에는 시간을 품고 왔던 것만큼의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삶속에서 가끔은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는 것은 우리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길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