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은 국시집 사장 이수자고요 저는 나이는 74살 됐습니다. 여기는 1965년에
사실은 문을 열었다고 하셨는데
정식으로 영업허가증은 68년도인가
69년도에 된 것 같아요
이자 옥자 만자입니다
어머니는 서울로 유학을 오셨죠
서울로 유학을 와서 상명여고를 졸업하셨죠
사실은 저희 어머니가 교편 생활을 하셨었어요
6.25 전에 상명여고를 나오셨어요 나오셔서
그 당시에는 고등학교 졸업을 하면은
초등학교 교사 자격증이 있었거든요
그래갖고 교사 생활을 하시다가
여러 가지 사업을 하시면서
성북동에서 한성식 집을 하셨대요
뭐 혼자 사셨으니까
저 하나 데리고 그래갖고
실패를 보셔서
자기가 이제 조그만 집을 하나 얻어서
여기서 국수를 반죽으로 하셔서
밀어서 썰어서 오래 지나니까
저희 외할머니가 음식 솜씨가 좋으셨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하니까
처음에 아시는 분이
조금씩 오시다가 소문이 나서
그때가 아마 65년도 시작을 해서
68년도쯤 불도자 시장님이시라는 그분들이 오셔서
이렇게 좋은 집이 왜 영업허가가 없느냐고
당장 구청에 연락해서
영업 허가를 내서 하라고 그래갖고
그때부터 우리나라에 유명하신 정치가들 재벌가들
이런 사람들이 오시기 시작했어요
김우중 씨도 살아계실 때 오시면
워낙 장소가 좁으니까
앉아서 드시지도 못하고
한참 기다리셨다가
한 그릇 잡수시고 가셨다고
그런 소리는 들었어요
그거는 경상도 사람들은
국수 발음이 잘 안 돼서
국시 국시 그래
국시 국시 그래 갖고 국시로 됐는데
뭐 지금도 농담으로 손님들이요
왜 국수하고 국시하고 다르냐
그럼 우리가 그래요 봉다리하고 봉
봉투하고 다르듯이
그렇다 이렇게 말씀드려요
오로지 칼국수만 하셨어요
자기가 자신 있는 게
어머니가 국수를 엄청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할머니가 그 옛날에 밀가루로
반죽해서 밀어서 썰어서 해주신 게
호박을 많이 넣고 해주신 게
그게 너무 자신이 있으셨나 봐요
그래서 하고 하시면서
이제 자꾸 개발이 돼서
뭐가 되냐면
소고기 국물이 옛날에는 잘 없었잖아요
거의 멸치로 하고 그랬잖아요
근데 어머니는 그때 양지 머리
그걸 투플러스 국물로
저희가 그 국수를 끓여요
제가 기억하는 분은
김영삼 대통령은 청와대에 계시면서도
일주일에 한 번씩 오셨어요 가족끼리
교회 갔다가 바로 이리로 오셨어요
그리고 대통령이 되시기 전이지만
문재인 대통령도 오셨고
이명박 대통령도 오셨고
윤석열 대통령도 한 세 번 오셨다 가셨고
여기 시장 공간이 바로 여기서 5분도 안 걸려요
5분도 안 걸리는 곳에 있기 때문에
여기가 혜화동하고 성북동 경계거든요
그래서 와이샤스 바람으로도
저기 고건 시장님,
또 조순 시장님,
이명박 시장님,
오세훈 시장님 내가 기억하기에는
이렇게 네 분
그 전에도 계속 오셨다는데
제가 미국서 오고 나서 오신 분들은 그래요
저는 1975년에 미국으로 주재원으로 나갔어요
나가서 2000년도에 제가 들어왔습니다
2000년도에 들어와서
제가 이제 아이들 다 크고
미국에서 한 25년 살다가
어머니가 이게 참 아깝다
여자도 뭔가를 하고
애들도 다 키웠으니까
여자도 뭔가를 해야 되지 않냐고
어머님이 이제 그 전에도 이제 내가 미국에서 나오거나
어머님이 미국으로 오시면
야 이 가게가 너무 아깝지 않니
내가 뭐 자식도 없는데
니가 아이들 다 키워놓고 나오면
어떻게 했니 그래서 왔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제가 한 오십 됐었거든요
오십 돼 갖고 들어왔죠
제가 이제 이대로 이거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이십사 년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대로예요
원래는 어머니가 맨 처음에 어떻게 했냐면
아까 국수 드셨던 그 홀 있죠
고기만 세르르 들어서 하셨었어요
세르르 들어서 자가가 아니었다가
그러다가 이제
주인은 여기 살았고
그러다가 이제 이걸 다 사신 거죠
왜 힘들게 그랬냐면요
제가 좀 다른 사람이 하면
간을 제대로 내 마음에 안 들어
그래서 나는 제가 뭐 일은 오래 안 해요
열한 시
반쯤 나와서 3시까지만 일을 하는데
그 다음에 저녁에는
아주 중요한 손님만 오면
제가 나오고 그렇게 오는데
저 아줌마들도 28년,
25년 이렇게 있는 사람들이에요
저 주방에 할머니들이 나하고
같이 와가지고
제가 맡겨놓고
미국도 1년에 한 두 달은 가 있어요
왜냐하면 너무 여기 여름이 덥고
그러니까 가 있는데
아이들도 다 가고 있고
손자들도, 손녀들도 다 있으니까 가는데
오면 나는 그냥 부엌에서 뭐든지 맛있는 거 좀 있으면
옛날 단골은 좀 더 해서
다른 거를 좀 서비스도 해드리고
이래서 그런지
제가 부엌이 좋아요
저는 이제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는
아줌마들한테도 늘 강조하는 게
첫째는 재료를 속이지 마라
그래서 지금 이런 조그만 영업집에서
고기를 2플러스 쓴다는 거는
다들 상상을 못해요
우리가 지금 저기 카운터 뒤에 보면
매달 오는 고기 잡은 영수증
그게 와요 인증서가
근데 그거 붙어있는 집을
전 잘 못 봤어요
거기에 보면 매달 며칠
누가 어디서 횡성해서
등급은 2플러스고 이게 나와요
그걸 꼭 붙여놔요 손님들한테
그래서 광우병이 오거나
뭐가 오거나
우리는 소고기에 대해서
손님들이 걱정을 안 해요
저는 양심이라고 생각해요 주인의
제가 김치도 직접 담고
모든 재료는 국산으로 쓰고
우선 나는 사실 솜씨는 많지 않아요
그러나 재료만 좋으면
음식은 맛있다고 생각해요
단골은 저기 몇십 년 동안
그래도 띄엄띄엄 오시더라도
저희 집에 계속 오시고
또 그 가족들을 모시고 오시고
저희 어머니는 되게 난 퍼주기 좋아하셨어요
뭐 나도 물론 좀 그런 걸 많이 닮았지만
하여튼 친하고
단골 손님한테 오면
정말 이것도 해주고 싶고
저것도 해주고 싶고
과연 예를 들어서
이제 가을에 송이가 나면
단골손님한테는 송이를 하나라도 정성스레 깎아서
조금이라도 대접하시고
그런게 있으셨어요
저도 계속 그거를 해요
저는 앞으로도 지금같이 내가 기운이 있고
내가 하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할겁니다
최선을 다하고
저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까
내가 하는 데까지는 하지만
건강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지금 계속 찾고 있어요
계속 누군가가 여기를 내가 한 1,
2년을 뒤에서 돌봐주더라도
맛을 옛날과 같이 똑같이 하고
첫째는 그거고 둘째도
저기 절대 재료 같은 거
고기값이 좀 싸다고
싼 고기 쓰지 말고
좋은 걸로 써서
옛날 맛하고 똑같이 해라
라는 그게 제 비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칼국수라는 게
지금 뭐 바지락 칼국수
무슨 칼국수 이것은 오리지널
우리나라 전통 음식으로
요새 또 손으로 반죽해서
밀고 썰어서 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거를 이제 미래유산으로 해 주셨나
본데 저는 제가 살아 있고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이대로 할 것이고
저기 뭐 혹시 너무 힘들어서
칼국수 반죽을 못하고
뭐 사 와야 되고 뭐 이런 거는 안 할라고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