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과 식탁의 단절 ②
(영상자막)먹거리 위기 시대 극복 방안,
도농상생에서 찾는다
서울먹거리시민학교
송원규 강사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이제 우리나라도
본격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는 새로운 먹거리 체계,
세계적인 먹거리 체계가 나타나게 되는데요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유럽은 전쟁으로 인한 엄청난 피해를 수습하기 위해서
기존의 유럽이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세계적인 지위나
이런 것들이 약화되게 됩니다
반면에 미국은 실제 진주만에 대한 일본의 당시
일본 제국의 그런 폭격 같은 걸 제외하면
본토는 전혀 손상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오히려 전쟁 물자의 수출이나 이런 걸 통해서
미국은 훨씬 더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었기 때문에
그다음에는 미국이 세계의 먹거리
체계의 주역으로
떠오르는 과정이 있습니다
이 과정의 배경이 되는 것에는
유럽과는 다른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미국의 그런 특징이 있었는데요
어떤 부분이냐면 미국은 유럽에 비해서 땅이 엄청 넓은데
그 땅에서 살아가고
경작을 할 농부의 숫자는 훨씬 적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 넓은 땅덩어리를
소수의 사람들이 경작을 해서
농업 생산을 해야 되는 그런 여건에 놓여 있었고
그러다 보니까 미국에서는 에너지도 많이 쓰고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하는 것처럼 농약이라든지 화학비료
그리고
대형 농기계 같은 것을 적극적으로 사용을 해서
대량 생산을 하는 그런 농업체계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방식의 농업이 지금
우리에게 녹색혁명이라고 알려져 있는
그런 하나의 곡물에 물도 많이 공급하고
비료도 엄청나게 많이 쓰고
농약도 많이 쓰되
생산량은 몇 배가 뛰게 되는
그런 생산의 증진이라는 것을
미국이 전 세계에 안겨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중심의 먹거리 체계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1970년대까지 중심을 이루게 되고요 이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어떤 영향을 받았느냐
우리나라가 대표적이죠
우리나라는 해방과 단독정부 수립,
그리고 아픈 전쟁을 겪은 후에
본격적으로 1960년대부터
경제성장을 준비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여러분도 알다시피
많은 잉여 농산물의 원조를 받고
여러 가지 경제적인 도움도 받으면서
한강의 기적이라고 하는 그런 과정을 얻었는데
이건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당시에 미국의 우방국으로서
세계에 많이 흩어져 있었던 나라들이 비슷하게
미국으로부터 이렇게 전통적인 농경 체계가 아니라
엄청나게 자재와 여러 농기계 같은 것들을 많이 투입해서
생산량을 급격하게 늘리는 녹색혁명형
농업이라는 것을 다 수용하게 되고
그걸 기반으로 해서
경제성장을 하는 공업을 발전시키는 농업이 아닌
1차 산업이 아닌
제조업과 이런
다른 산업들을 발전시키게 되는
그런 과정으로 오게 됩니다
이러면서 아까 영국의 상황에서도 말씀을 드렸는데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결국 노동자들이 많아져야 되고 이 노동자들이 값싼
먹거리와 낮은 임금을 통해서
그 사회에 기여를 하면
경제성장은 훨씬 더 빨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이렇게 증산을 이루고 이 엄청나게
늘어난 생산량을 바탕으로 농촌으로부터 도시로 와서
노동자가 된 사람들을 값싼 먹거리를 먹이면서
경제성장을 할 수 있는
그런 사회로 발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부터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체계들이 본격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시간적으로 차이는 있지만
그래서 우리가 흔히 모두들
지금은 손쉽게
지역에서 우리 지역에서 멀리서 생산된 것들
그리고 공장에서 생산된 가공식품들을
여러분이 진열대 위에서 손쉽게
손으로 선택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런 시스템은 어떻게 이런 체계는 어떻게 갖춰졌냐
기본적으로 냉장.. 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냉동이라고 하는 그런 체계의 발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1920년대
미국에서 처음으로 냉장고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지금 처럼 자동차도 냉장
냉동체계를 가지면서
콜드체인 시스템이라고 하는 생산지에서부터
여러분의 식탁 까지 차가운 상태로
신선도를 유지 할 수 있는 그런 체계가 만들어졌 고요
그 중간중간에 이 전체 체계를 만드, 여러분의 식탁까지
오기 전 단계, 소매,
여러분들이 매장에서 먹거리를
손에 쥐는 단계까지 역할을 해주는 슈퍼마켓
기업들이, 대형 유통업체들이 등장을 하면서
손쉽게 이런 체계들이 형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코로나 시대에 두 가지가
여러분들도 익숙하게 가지게 되었죠
예전보다 좀 더 집에서 밥을 많이 먹게 되면서
다시 집에서 요리를 해 먹는 경우도 많아졌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식당에서 먹던 것을
배달음식으로 대체해서 먹는 과정도 늘어나게 됐습니다
어쨌든 두 가지 다 해서 외식이라고 하는 형태
직접 신선 농산물을 구매하는 방식이 아니라
조리가 된 먹거리나
이제 다른 사람이 조리해 주는 것을
식당에 가서 먹는 형태 배달해서 먹는 형태
이런 요리 산업과 먹거리와 관련해서
사례적으로 사람들의 관계가 변하는 과정들이 있어
왔습니다
이렇게 된 상황에서 본격적으로 농업과 먹거리
그리고 농촌과 도시
간의 관계가
어떻게 멀어졌는지를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데요
여러분들이 식탁에 올려져 있는 신선 농산물부터 가공식품,
심지어는 수산물,
축산물과 같은 모든 먹거리들이 중간에서
대부분 기업을 거치지 않고
여러분의 식탁에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무입니다
여러분이 로컬푸드 직매장을 통해서 구매를 했다든지
아니면 여러분들이 생협조합원이어서
생협을 통해서 구매했다든지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중간에서 농민들로부터 농산물을 구매하고
그것을 가지고
또 다른 기업에게 서로 관계를 맺어서 판매를 해서
가공을 거치거나
이런 것을 통해서 대형 유통업체나 슈퍼마켓이나
이런 매대 위에서 여러분의 먹거리를 선택하기까지
몇 개의 대규모 대형 기업들을 거쳐서
여러분의 식탁 위에 올라오게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중간에
어떠한 큰 영향력을 미치는 기업들이
얼마나 큰 힘을 갖고 있느냐를 가지고
연구자들이 정리를 했는데요 이 연구자들이 정리한 부분을
여기 그림에 보는 것처럼
실 한 가닥에 매달린 먹거리 체계라고 부릅니다
왜 실 한 가닥이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농민들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엄청나게 많은 농자재를 써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미국의 사례를 말씀을 드리면
220만 개의 농장이 있는데 이 농장에서
사서 쓰는 농자재들을 생산한 농자재
기업은 고작 10개에서 20개 남짓한 기업입니다
그리고 이 농민들로부터 농산물을 구매해서 가공하거나
유통시키는 기업 또한 약 2만 5천 개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기업은 11만 개
정도인데
이걸 사먹는 소비자들은 3억 5천만 명이나 됩니다
이거를 세계적인 그림으로도 그려볼 수 있는데요
전 세계에 지금 75억 인구 중에
약 15억 명이 땅에서 땀 흘리는 농부입니다
그런데 이 농부에게
농자재를 공급하는 기업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세계적으로 따져도 몇 개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농산물 유통 가공
그리고 여러분에게 판매하는 소매 기업들을 따져보면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상당히 소수의 기업들이죠
어떤 나라들에서는 하나의 슈퍼마켓
체인이 전체 소매의 80
% 이상을 차지하는 그런 나라들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몇 개의 대형 유통업체들을 거치는 비율이
아직 절반을 넘지는 못하는 그런 상황이지만
유럽이라든지
이런 나라들에서는 한 개의 슈퍼마켓 체인
혹은 두세 개의 슈퍼마켓 체인이 80%,
90 %의 먹거리 소매를 장악,
지배하고 있을 정도로 상당히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 75억 명의 인구는 여러분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하는, 여러분
75억 명의 인구가 먹거리를 제공받는 데 있어서도
역시 얼마 되지 않는
수백 개의 기업들이 여러분의 식탁을 책임지고 있는
이런 구조라는 거죠
이런 구조 하에서는 기본적으로 농민이나
먹거리를 소비하는 시민이나 별로 선택권이 없습니다
농민의 입장에서는 왜 선택권이 없느냐
사실 구매하는 기업들이
우리가 구매할 사양에 대해서 외관은 어때야 되고
크기는 어때야 되고
전반적으로 예를 들면
과일과 같은 경우는 당도는 어때야 되고
이런 기준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농부는 자신의 이 농산물을 사주는 기업
혹은 중간에 유통업자가 요구하는
그런 사양들을 다 맞춰야 되는 거죠
그리고 농사를 짓는 품목
또한 이 기업과 이 기업들이 소비자
선호도 조사를 통해서 이런 농산물이 많이 팔리기 때문에
우린 이걸 구매할 거야 라고 이야기하는
그런 품목들에 한정해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이거를 시장에 판매하지 않으면
생계가 유지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죠
여러분들이 슈퍼마켓과 대형
유통업체의 진열대 위에서 선택하는 수많은 먹거리들은
사실은 브랜드는 다양하지만
그 먹거리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재배되는 품종이라든지
어떤 농산물의 품목별로 품종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기업들이 이미 한정을 해놨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가공했는지
어떤 브랜드를 입혔는지의 차이만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내가 아는 농부에게
혹은 내가 직접적으로 얼굴을 대면하지는 못하지만
좀 더 생태적이고
자연과 공생하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그런 농부로부터 먹거리를 먹고 싶다라고 하면
그런 슈퍼마켓의 진열대가 아니라 생연매장이라든지
로컬푸드 직매장이라든지
기존의 일반적인 유통경로와는 다른 경로를 통해서
여러분이 먹거리를 구매해야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사실 슈퍼마켓의 구매
진열대 위에서는 소비자에게도
선택권은 별로 없다라고 그렇게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보면
아까 우리가 먹거리 체계의 그림을 봤던 것처럼
생산의 단계에서 요것을 가공이나
유통을 시키는 데 있어서 기업을 통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내 식탁 위에 있는 먹거리를
그 가공식품이라 할지라도
그 가공식품의 원물이 된 농산물까지 포함해서
누가 어떻게 생산했는지를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중간중간 단계에서 가공기업 유통기업
소매기업 이렇게 각 단계 별로 엄청나게 전문화되고
세분화 되어서 이 전문성을 가지고
전체 과정을 거쳐서
여러분의 식탁
위에 올라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 각각의 먹거리
체계는 순환하는 것인데
각각의 관계
사이사이는 다 기업들에
이어서 의해서 단절이 돼 있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결국 도시와 농촌 간의 관계도
그 사이에서 엄청나게 멀어져 있다고
이야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이 부분은 뒤에서
좀 더 상세하게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부분을 가지고 짤막하게
한국의 과정에서도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한국 사회는 어떻게
이렇게 농업과 먹거리가 점점 분리되는 과정에 있었을까
그리고 도시와 농촌이
서로 멀어지는 관계들을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라는 부분을 말씀을 드리면
한강의 기적이라고 하는 이
수업을 듣는 여러분들이 연령대에 따라서
익숙하실 수도 있고 아니실 수도 있는데
한강의 기적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나라는 엄청난 경제성장을
60년대 말부터 80년대까지 이루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먹거리 측면에서 가장 중요했던 일 중의 하나는
바로 우리나라가 쌀을 자급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보릿고개라는 유명한 말이 있죠
보통 쌀을 우리나라
국민들이 먹는 주곡인 쌀을 가을에 수확을 해서
그 수확한 것을 창고에 쌓아두고
그 다음에 수확할 때까지 먹게 되는데
보통은 여름을 지나고 나서 수확기까지
쌀이 떨어지고 나면
쌀밥을 해먹을 수는 없기 때문에
보릿고개라는 것이 생기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는 보리와 같은 잡곡이나
아니면 심지어는 나뭇껍질을 뜯어서 죽을 끓이거나
이런 과정을 통해서
다시 수확기를 거칠 때까지 어려운 시기를 거쳐서
거책이 돼서 보릿고개라는 말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정부의 입장에서는 경제성장을 하려면
일단 우리 국민들부터 배를 굶지는 않아야 된다
먹거리는 일단 최소한의 먹거리 보장을 돼야 된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미국으로부터 여러 가지 지원을 받던 단계에서
쌀을 자급하는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1975년도에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쌀 자급이 100
% 이상을 달성하게 되는데요 이 과정에서 보면
아까 녹색혁명이라는 이야기를 드렸는데
국제미장연구소에 나갔던 허인혜 박사가 수확량은 엄청
많으면서 장마 시기에 비가 엄청 많고
그리고 태풍을 거치는 과정에서도 쉽게 쓰러지지 않는
그런 쌀 품종을 개발을 해서
그걸 통일별하고 이야기를 하죠 이 기저귀
쌀이라고 불렸던 보통 400KG
초반대의 생산량을 가졌던 기존 벼
품종보다 엄청나게 생산량 이 늘어서
620에서 50KG 정도까지
생산량이 나올 수 있는 300평에서
이런 엄청난 쌀 품종이 개발이 되면서
우리가 쌀 자급을 이루게
됩니다 이 쌀 자급이라는 것이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공업을 통한 엄청난 경제성장,
수출 중심의 공업국가로서
성장할 수 있는 데에 있어서 크게 기여를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이면에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바로 이 농민들이 쌀을 자급을 시키면서
농민들도 잘 살게 되었느냐라고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최대한 낮은 임금을 줄 수 있어야지
수출을 하는 데 있어서도
훨씬 더 많은 동력이 되기 때문에
우리나라 경제 성향의 동력이 되기 때문에 이 저임금
낮은 임금을 유지하기 위해서
먹거리도 가격이 싸게 유지하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결국 농촌에서
땀을 흘린 농부들에게는 충분한 농산물
가격을 보장해 주지 않은 거죠
또 한 가지는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있었다는 겁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산업 역군이다
사실 이때 시기에 노동자들의 힘으로
우리가 지금처럼 잘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하죠
그래서 국제시장이라고 하는
천만이 넘었던 유명한 영화에서도
여러분들이 그 내용들을 볼 수 있을 수가 있는데
공장에서 땀 흘려서 일하면서
그리고 그 일하면서 낮은 임금을 감수하고
그 낮은 임금을 메우기 위해서
가족들이 모두 불안정 노동
그러니까 파트타임으로
집안의 가장이 보통 공장에 가서 일을 한다고 하면
나머지 가족들도 다 아르바이트나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면서
그 낮은 임금을 메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보통은 엄청나게 장시간 노동을 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독일에 파견됐던 광부라든지
간호사처럼 해외에 나가서 노동력을 팔아서
우리나라가 외화벌이를 하는 이렇게
노동자들의 엄청난 희생이
결국은 이 한강의 기적이라는 것의 이면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노동자들은
원래 농촌에서 농사를 짓던
농가에 살던 사람들이 다 도시로
이주해온 과정이 있었던 거죠 이 과정을 통해서
농촌에서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도시에는 사람들이 과밀해지는 이런 과정들을 겪었던 것이
우리나라에서의 역사적 과정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점점점 농촌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게 되고
우리나라가 지금도 자랑하는 것처럼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는 과정에서
도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 결과물은
결국은 전반적으로
우리나라의 자금률의 저하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쌀은
여전히 100 %대의 자금률을 유지하고 있지만
우리가 보통은 잘 이야기하지 않는 채소류 같은 경우에도
지금 자금률은 87
% 정도 그리고 과일류는 78 % 정도
그리고 축산물은 76
%에 불과합니다 이 과정에서는 결국은 수입
개방이 이루어지면서
농민들이 농사를 짓는 것에서 먹거리를 우리 밥상으로
올리는 것뿐만 아니라
수입된 농산물을 통해서도
우리 밥상을 채워가게 되는 그런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전체적으로
자금률이 떨어지는 그런 과정들이 만들어져 왔고요
이런 농업과 먹거리가 서로의 관계 단절
그리고 농촌과 도시가 서로
관계가 멀어지는 과정들을 통해서
지금 우리의 식탁들을 살펴보면
해외로부터 들여오는 먹거리들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흔히 푸드마일이라고 하는 그런 용어를 쓰는데요
우리가 먹는 먹거리의 전체 중량을
그 먹거리가 날아오거나
배를 타고 온 거리에
곱해서 만든 푸드마일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우리 식탁 위에 온 먹거리가 얼마나
멀리서 왔는지를 따지는 그런 과정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보시면
보통 수천 킬로를 날아와서
우리 식탁 위에 올라오는 것들,
수산물을 포함해서 가공식품,
심지어는 심산
농산물까지 그런 과정들을 통해서 올라오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도
푸드마일이 가장 높은 나라에 해당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