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집콕 360VR]ㅣ삼국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곳ㅣ한성백제박물관
잔잔한 수면 아래
세차게 흐르는 한강의 두께처럼 평온을 기원하며
모여든 사람들과 치열하게 부딪히며
움튼 격전의 역사를
저 강물은 기억하고 있을까
나는 강물의 곡선처럼 유려하고
퇴적과 침식을 반복하며 다듬어진
오래된 문명의 흔적을 쫓아가 본다
먹고 사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이 아니다
숟가락에 밥 한술 얹을 수 있길, 몸뚱이 하나 편하게 뉘일 수 있길,
그대들은 나와 같은 마음으로 흙을 모아 토기를 만들고
성곽을 쌓으며 하늘의 삶을 기원하였다
물에서 생명이 태어나듯 강에서 문명이 태동하고
서울, 한강은 탄생의 순간을 목격했을 테다
서울은 2000년 전
백제가 건국하여
고대 국가로 성장한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기원전 18년 백제 시조
온조가 건국한 이래
475년 고구려의 장수왕에 의해 서울에서 물러날 때까지
약 5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백제는 서울을 수도로 삼아 국가적인 성장을 이룩했습니다
지금 앞에 보이는 구조물은
백제의 풍납토성의 성벽의 단면을 전시해 놓은 것입니다
풍납토성은 아래쪽의 폭이 43M,
높이 11M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구조물입니다
백제는 이처럼 거대한 풍납토성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중앙집권화된 사회였습니다
현재 서울 송파구와 강동구
일대는 모두 백제의 왕도로서 그 기능을 했습니다
웅촌토성과 풍납토성 등 많은 백제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백제 사람들의 먹거리는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보리, 콩 같은 곡물을 주식으로 사용했는데
한강이나 서해바다에서
어로활동을 통해 생선을 잡아서 많이 먹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백제인들의 먹거리는 토기 속에 남아있는 생선뼈나
곡물의 흔적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백제인들이 살았던 집은 지금의 우리와는 조금 다릅니다
지금의 반지하 반과 비슷한 구조였습니다
땅을 파고 움집을 지어서 살아왔습니다
백제의 건축
구조물 중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이
토관이라고 불리는 흙으로 만든 작은 관입니다
이것은 현재의 상하수도관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이처럼 상하수도관이 설치된 도시를 구획했다는 것은
당시 백제인들의 기술 역과
백제인들이 구획한 도시가 얼마나 정연하고 계획적이였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먹고 사는 일 너머로 삶을 꿈꾸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강물에게 고여본 기억이 없듯이
한강 어귀에서 태어난 그대들은 물이 흐르는 곳을 따라
바닷길을 열고 더 넓고 먼 곳을 상상하였다
물길에 꽃잎을 띄워보내듯
두려움보다 신비와 동경으로
문명과 문명의 이음점이 되었던 그대들은
1500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공간의 기억으로 남아주었다
백제는 4세기 후반 국가적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한강과 서해바다를 통해 중국, 외, 인도, 동남아시아까지
여러 나라들과 교류하며 국가적인 성장을 이룩합니다
특히 중국을 통해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백제 고유의 문화로서 발전시켰고
이러한 백제 문화를 왜에 많이 전해주었습니다
특히 왜와 백제의 긴밀한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로서는 칠지도가 있습니다
칠지도의 내용은 백제 왕이 왜왕에게 하사한 물건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칠지도의 내용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다른 이견이 많이 존재하긴 하지만
백제가 일본의 시시도를 포함해서 한학, 유학, 천문학, 의술 등
많은 선진 문화를 전파하고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틀림이 없습니다
백제는 외 뿐만 아니고 한반도의 다른 나라들과도 활발히 교류하면서
국가적인 성장을 이룩해 나갑니다
그러나 흐르는 강물에는 주인이 없었습니다
단단한 철도 시간에 고이면 유약한 물에 부식이 되듯
철의 문명을 이룩한 그대들도
영광을 향한 한강 유역 욕망의 격전 속에 단단한 빛을 잃고 말았다
영원이란 없다는 진부한 명제를 증명이라도 하듯
얽히고 설킨 삼국의 역사는 같은 공간
뒤섞인 유물의 흔적으로 남고
그대들의 치열함은 이제 유리벽 속에 고이 놓였다
그러나 고요 속에 치열했음이 부식되지 않길
닦여진 광택보다 세월의 때의 눈길이 간다
한반도 중앙을 가로지르는 한강은
그 지정학적인 위치와 이로움으로 인해
고대 국가가 성장, 발전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백제, 고구려, 신라 순으로 한강의 주인은 바뀌었습니다
한강 유역에서 건국하여 가장 오랜 시간 동안
한강 유역의 주인이었던 백제는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으로 인해
왕성이었던 풍납토성이 함락되고 계로왕이 잡혀 죽게 되면서
백제는 500년에 가까운 한강유역에서의 역사를 마감하게 됩니다
고구려의 한강유역 지배도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551년 백제와 신라가 연합하여 고구려를 몰아내고
다시 한강유역을 차지하였고
553년 신라가 다시 한강유역을 차지하면서
삼국통일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이처럼 한강유역에서는 백제, 고구려, 신라의 역사와 문화가
아직도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거대하지도 않았으며 최후의 승자도 아니었던
그래서 나에게도 낯설었던 그대들의 흔적 앞에서
그간의 무지함을 삼켜낸다
먼 미래 서울 어딘가에 남겨질
나의 보이지 않는 발자국을 생각하며
같은 땅을 밟고 같은 강을 꿈꾸었을
오랜 옛날 그대들의 발자국을 상상해본다
역사는 공간의 기억으로 남아 사라져도 없어진 게 아니다
강에서 나고 자라 흥하고 망한 그대들의 치열한 역사를
저 강물은 아직 기억하고 있을 테다
(영상자막)
한성백제박물관
SEOUL BAEKJE MUSEUM
<한성백제박물관>은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성루지역을 도읍으로 삼았던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복원하고 조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박물관입니다.
(영상자막)
한성백제박물관
SEOUL BAEKJE MUSEUM
백제는 바닷길을 열며 동아시아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하였으며
고구려, 신라와 함께 치열한 삼국의 각축전을 벌였습니다.
(영상자막)
한성백제박물관
SEOUL BAEKJE MUSEUM
백제가 탄생하고 발전한 역사의 중심에는 한강이 있었고,
<한성백제박물관>에서는 서울의 백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영상자막)
IㆍSEOULㆍU
너와 나의 서울
해설 - 최충기 학예연구사
Produced by A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