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진 최욱의 걱말서] 첫째놈은~ 둘째놈은~ 이 소리는~? 최욱의 단골개그? (f.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전 MBC PD님 오셨다!)
창조되는 경우도 많이 있겠군요
그런 게 없지 않아? 있어! 아 속았네
이거 불러드리기는 어렵다
올라가네? 올라가네? 나 올라가네? 맞아요? 맞아요
오늘 다른 어떤 날보다 굉장히 기대되는 날입니다
엄청 재밌을 것 같아요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많이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리고 또 개그로도 이게 승화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그렇죠 이거 많았거든 첫째 아들 10만 원
둘째 아들 20만 원
첫째 아들 10만 원
둘째 아들 20만
원 이 소리는 제주도 김팔복 할아버지가 첫째
아들 들으라는 소리입니다
첫째 놈은 10만 원 이거 많았거든 너무 재밌었는데
이거에 원조가 오늘 나오셨어
우리의 소리를 찾은 분 아니에요
실제로 찾으러 다녔고
MBC에 담았던 바로 그분입니다
MBC 라디오 PD 출신이에요
정영진 씨와는 악연인 거죠
그런데 이분이 서울 우리소리
박물관에 새로 개관한 이 박물관의 초대 관장님이시라
이분을 모시고
우리의 소리 한번 다시 저희가 찾아보도록 하는 시간
소리 박물관이 있군요
너무 재밌을 것 같습니다 바로 모시도록 하죠
서울 우리소리 박물관 최상일 관장님과 함께하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MBC 라디오
PD 출신이신 거죠? 네,
그렇습니다 이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는 MBC
라디오에서 처음 시작된 겁니까?
30년 전부터 프로젝트가 시작돼서
작년도와 30주년이라고 작은 기념행사도 했는데요
제가 그만큼 나이가 든 거죠
우리 관장님이 처음 네,
제가 처음 기획을 해서 몸서디면서 뛰어다니고
자료를 모으고 또 출판도 하고 책도 쓰고
아니 어쩌다가 이걸 기획하시게 된 거예요?
라디오 PD라는 게
새로운 음원 소재를 찾는 게 일이거든요
요즘은 조금 그런 게 뜸합니다만
젊었을 때는 특집 프로그램을 많이 했어요
숨어있는 새로운 음원을 발굴해갖고
그걸 특집하면 사람들이 좋아하고 상도 받고
이러니까 그런 일을 많이 하는데
그중에 하나의 아이템으로 이런 것이 이제 혜택이 됐는데
시골 아주 깡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만
농촌의 읍내에서 태어나 가지고
어렸을 적에는 그런 전통 문화가 조금 남아 있었어요
예를 들면 뭐 초상이 나면
상여가 우리 집 앞으로 중앙로라고 돼 가지고
인근에 살았던 분들은 다 그리로 지나갑니다
그러면 이렇게 밥 먹다가
멀리서 한 200M 전부터 소리가 들려요
그 요령 흔들면서 소리하는 게 있는 상여 소리가 나는데
그게 그렇게 듣고 싶어가지고
밥숟가락을 던지고
쫓아나가가지고 한참 쫓아가는 끝까지 쫓아가고
남들은 누가 돌아가셔서 슬픈데 그렇죠
슬프긴 하지만
어렸을 때 볼 때는 30명 이상이 큰 상여를 엄청나게
큰 상여를 내고
가면 정말 이렇게 우러러 보이면서 저게 무슨 소리인가
학교에서는 전혀 듣지 못하는 어른들은 또 엉엉 울고
창주들이 따라가기도 하고
이게 사람 좋은 것 같긴 한데
이렇게 소리가 굉장히 멋있게 들리고
소리하는 분이 이렇게 상여로 올라타서 앞장서고
올라타가지고 이렇게 가면서 선창도 하시고 뭐 이런 거죠
소리를 하면 소리를 먹이면서
요령을 흔들면 어린 나이니까 까마득해 높아 보이거든요
저분은 누구길래 저렇게 올라타고 소리를 하는가
굉장히 신기하고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거죠
그 상여회는 소리도 지역마다 좀 다르죠?
그럼요 상여
소리는 그래도 좀 다른
민요에 비해서는 공통점이 좀 많이 있는데
그래도 경상도, 전라도, 중부지방 확실히 다릅니다
지역별로 좀 혹시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불러드리기는 어렵고
듣기는 많이 들었는데
시키기도 많이 시켰는데
부른 적은 없으시니까 부른 적은 없는데
하여간 맛상주야, 둘째
상주야 이러면서 고갠지
경상도 신세타령조로 이렇게 메나리조라고 하는데요
있는 사람이 심금을 울리는 넋두리를 막 하면서
나는 이제 떠나간다
너희들은 잘 있거라
사설이 길게 전개되는 이런 거는 경상도에 가면 흔하고요
전라도는? 전라도는 불교의 영향을 받아가지고
나무아미탑을 관세음보살 굉장히 웅장하게
아주 길게 쭉쭉 뽑아가지고 상여가 떠나기 전에 하는 것
의례적인 성격의 노래
특히나 보통
우리가 미녀라고 하면
명인 명창들이 부르는 이런 민요는 우리가 흔히 듣는데
그런 것이 아닌 향토에서
그러니까 마을
시골에서 동네 사람들이 그냥 스스로
어른들한테 배워서 부르는 노래 완전히 성격이 다릅니다
그 특징이 향토성이 아주 짙다
그러니까 지역마다 많이 다르다
이게 하나의 큰 특징이 되겠습니다
그 처음에 하자마자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까?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가? 그랬던 거였어요 아 그래요?
왜냐하면 몇 년도인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만
90년대 초쯤이죠?
89년부터 해서 89년 아마 가을부터는 방송이 됐는데요
처음에는 인기가 있다기보다는 저런 소리가 다 나나
그때는 MBC
라디오가 아주 인기가 높아서 청취율이 높았죠
그러니까 할만하니까 틀어주겠는데
처음 듣는 소리들이 많이 나오고 낯설고 생소한데
저게 우리 소리
옛날에 어른들이 하던 소리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놀랐어요
좋은 뜻으로 이해하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청취자들이 조금씩 조금씩 들으면서
노래 가사도 좀 귀에 들리고
해설도 해드리고 하니까 저런 게 있었구나 신기하다
우리는 왜 그동안 몰랐지?
너무 몰랐네? 약간 미안한 감도 좀 있고
호기심도 생기고
점차점차 이렇게 인지도가 높아졌다고 할까요?
짧게 짧게 치고 빠진다고 할까요?
1분 이내로
광고 형식으로 하고 나오는 게 훨씬 효과는 좋았고
이건 뭐 취재라고 하나요?
뭐라고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그거 하시는 게 굉장히 어려웠겠네요
녹음하러 다니시는 게
그때만 해도 꽤나 남아있어서 설문조사도 하고
탐문도 하고 해서 어렵지 않게 제보자라고 하고
가창자들을 찾아낼 수가 있었는데
60년대 들어오면 경제 개발되면서 산업화가 급진전되는데
그래 놓으니까 손으로 하던 일을 다 기계가 하게 되고요
또 집에서 하던 일을 다 서비스 산업
그러니까 말하자면
방아를 찧었던 거를 방아깐에 가서 돈 주고 해오고
그러면 소리가 필요가 없어지지
방아 찧는 소리 안 해도 되고요
또 손으로 모시면서 하던 거
또는 배 노져면서 하는 소리 같은 거는 엔진으로
통통통 가니까 소리할 수가 없고
이러면서 민요가 없어진 게 산업화의 영향이 가장 큰데
그래서 60년대 이전에
나이가 좀 되신 분들이 옛날에
조금 듣던 것이 남아 있었던 거죠
머릿속에 남아있는 거를
저희들이 가서 기억을 되살려내가지고
노래해보시다고 간절히 부탁을 해가지고
기억력 좋은 분들이 기억해내가지고 노래를 하시는 건데
실제 불리는 게 아니라
실제 현장은 이미 50년 전에 없어졌다
그래요 저희가 80년대 후반부터 시작했는데
완전 속았네 제가 일부러 속인 건 아니에요
우리나라 실정이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60년대부터 급속히
산업화 되기까지 때문에 없어진 거고
예를 들면 인도
같은 데는 산업화가 훨씬 우리보다 느리거든요
지금도 어디 가면 손으로 모시면
유튜브 같은 데 제가 많이 보는데요
계속 모시면서 노래를 해요
전통적인 노래도 하고 가요 같은 것도 하고
그런 것들이 우리도
옛날에는 있었던 것이 지금 없어진 건데
나라마다 산업 발전에 시차가 있기 때문에
아직도 그런 나라가 남아있고 진작에 없어진 나라가 있고
그런데 우리는 조금 맞붙고
그걸 이제 재현해내는 과정에서
새롭게 창조되는 경우도 많이 있겠군요
그런 게 없지 않아 있는데요 있어 가봐 속았네 이거
아니 새로 악곡이 만들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일부러 누가 만들어야 되니까
그런데 가사가 새로 만들어지는 거
그렇죠 아는 선율에다가
가사 한 절씩 넣는 거는 아주 쉽거든요
특히 소질이 있는 분들은 문학적인 능력이 있으면
즉흥적으로 가사가 나오는 거예요
재현해내는 뭐라고 하냐면 MBC가 가잖아요
그러면 한참 끝에 가다가 서울서 MBC가 오셔가지고
우리가 이렇게 서울서 MBC가 오셔가지고
우리가 오늘 잔치를 한번 해보는구나
그래가지고 그런 가사가 툭 튀어나오거든요
그건 이제 살아있는 민요죠
그런 경우도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런 거 보고
이분들이 그냥 배운대로만 부르는 게 아니라
응용을 하시는구나
민요라는 게 이렇게 열린 구조로 돼있다
가사 계속 매길 수가 있으니까
즉흥적으로 그 정도는 잘 매기시잖아요
코미디언도 마찬가지고
우리 진행자 여러분도 금방 만드실 수 있잖아요
4사조를 매기라고 하면 흔히 잘들 하시거든요
대부분 우리가 4사조
그게 전통이 이어져서
지금도 라디오에서도 4사조로
즉흥시 지어보라고 하면 잘들 짓는 게
옛날에 다 하던 거기 때문에
그러면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는
우리 최상일
관장님이 처음부터 혼자서 다 하신 거였습니까?
혼자는 아니고요
혼자 하다가는 한 20년 걸리겠더라고요 해보니까
그래서 국장님한테 얘기해가지고
지금 이거를
제가 한 팀이 하면
한 10년 걸릴 거를 여러 팀이 하면
그만큼 단축시킬 수 있겠다
왜 단축을 시켜야 하냐면 없어지니까
노인네들이 고령자층만 민요를 아는데
아까 말씀드린 듯이
젊은 분들은 민요를 못 들어본 분들이라
재현도 못해
소형이 전성이 안 되는 상태에서 고령자층이 돌아가시니까
한 분이 돌아가시면 민요를 많이 알고 있는 분이 한 분
돌아가면 진짜 작은 박물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몇십 곡이 한 번에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
그런 얘기도 있지 않습니까?
할머니들은 이야기도 잘하시고 하는데
그거를 현실을 알게 되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빨리 해야 되겠다고 해서
한때 한 다섯 팀이 동시에 다닌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피디들은 임시로 와서 한 1년,
2년 정도 하고 원대복귀하고 이렇게 됐는데
저는 제 소질에 맞는 것 같았거든요
끝까지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됐습니다
그럼 혹시 지금도 그 소리를 만약에 들으시면
이게 언제 녹음한 거지? 감이 좀 오십니까?
웬만한 거는 제가 다닌 건 물론이고
나중에 제가 방송하면서
다른 팀이 한 것도 다 익숙해졌기 때문에
그럼 테스트하면 가만히 계세요
한번 해보시죠 서울 우리소리 박물관 홈페이지가 있습니다
거기 들어가시면 우리의 소리를 다 들어보실 수가 있는데
그것을 즉흥적으로
선 보여드리는 차원에서 시험 들어가겠습니다
자 이건 어떤 소리인지
우리 관장님 한번 잘 들어보십시오 자
크게 아 그거는 압니다
제가 영광장만이라 다 내리고
아니 뭐 나오지도 않았는데
알아요 우리 노비샵
열심히 해 이제 올라가네 올라가네 올라가네 올라가네 아
좋은 노래입니다
나무찜 나르는 소리인데요
전라남도 장성군 나무찜을 치러 올라가는 곳
그 다음에 지고 내려오는 대목까지 쭉 이어집니다
나무찜 나르는 소리 정확하십니다
전남 어디였습니까? 장성 전남 장성
나무찜 나르는 소리 하나만 더 해보겠습니다
전남 너무 비슷해
근데 충남 홍성에 벼 떠는 소리 맞아요? 맞아요
대박 강청리 맞죠? 네 맞습니다
그러니까 벼를 턴다는 거예요? 벼의 이삭을 떨어낸다
털은 먼지를 턴다고 하고
이삭은 떤다고 합니까? 굉장히 어려운 노동인가 보군요
반복적으로 계속 똑같은 걸 하니까
계산이 있으면
앞뒤에서 한 두 사람씩 들어서 벽단을
그때 이렇게 끈으로 묶어요
자리계라는 끈이 있어가지고 딱 묶어가지고 이리 치고
또 이리 치고 해가지고
한 열 번쯤 치면 다 떨어지는 거거든요
그러면 열 마디의 노래가 주고받은 다음에 이제 나가세요
이러면 같이 나가고요
그다음에 이제 또 다른 팀이 대기하고 있다가 들어왔나
그러면 이제 새로 벽단을 들고 들어오는 거죠
그러면 또 이제 노래하면서 또 치기 시작
한 열 번 치면 또 나가고
이런 식으로 한나절씩 하면 그 집 별을 다 떨게 되죠
고단한 와중에도 노래가 있으면 굉장히 재미있는 거죠
노래 안 하면 질서도 좀 흐트러지고
심심하고 괴롭고 힘들잖아요
얼핏 듣기로 모든 노래의 사실 원조가 노동요일 것이다
노동요가 가장 뿌리가 깊다고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특히 노동요가 엄청나게 많은 나라
제가 이제 다른 나라에도 여행을 많이 다니고
또 음반 같은 거
미녀 관련된 거 나오면 거의 다 사고 듣고 하는데
자료가 꽤 많은데
비교를 해보면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미녀가 풍부하고
그중에서 노동료가 많은 나라를 제가 아직 못 봤습니다
뭐 조금씩은 있는데
대부분의 나라들이 미녀라고 하면 놀면서 결혼식이라든지
무슨 잔칫날
명절때 같이 모이면 놀고
춤추면서 부르는 노래가 굉장히 많고
우리 이제 그런 노래도 있지만
일하면서도 노래를 무지하게 했던 거거든요
장례 때도 노래를 하고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금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거 많고
노래 소질이 그만큼 뛰어나다 그거를 노동을 많이 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그만큼 흥이 많은 민족이었다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을까요?
일이야 어느 나라도 일은 다 해서 먹고 살았던 건데
일하는 순간에도
노래를 안 하면 안 되는 민족이었던 거예요
아, 이건 멋있네
그러니까 이게 예술성, 음악성을 타고난 그건 멋있다
그런 민족인 게 분명합니다
박물관에 가서 보시면 대한민국 최고네요
진짜 다른 나라는
그래서 향토 메뉴가 이렇게 다양하지도 않고
박물관 같은 건 제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어요
관장님 같은 지역에서 모 심을 때
노래랑 벼 떨 때 노래랑 다 달라요?
물론 다르죠
가사만 살짝 살짝 다른 게 아니고
아닙니다 완전히 다 달라요?
저도 처음에 제주도 취재 갔을 때는 한나절을 들었는데
그게 그거 같아가지고 야 미치겠다
이게 다 다른 거군가 분명한데
왜 이렇게 비슷하게 들리지? 해서
나중에 계속 듣다 보니까 곡조도 다르고 리듬도 다르고
가사는 물론 다르고요
다른 지방은 노래 종류마다 완전히 다릅니다
노동의 동작 행위
박자에 따라서 그게 노래가 다 다르다 이거죠
같은 가사로 요렇게도 부르고
저렇게도 부르고 그런 동네가 또 있어요
그런 동네에서는 가사를 한 20곡까지만
알면 여러 가지 노래에 다 적용을 해서 그런데
그것도 리듬이나 선율은 또 달라요
그러면 저는 궁금한 게 신기하다
이게 일하는 박자에 맞춰서 노래를 부릅니까?
아니면 노래 박자에 맞춰서 일을 합니까?
예를 들면 노 젓는 거는 어이하디야 어이하디야
이렇게 동작이 맞춰가지고
노래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고
또 많은 노동요는 동작은 동작대로 일은 일대로 하고
따로 가요? 심심해가지고
노래 리듬은 따로 가고 그런 수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게 리듬을 딱딱 맞추기가 어려운 게
못 심는 것 같은 경우는 동작이 일정하죠
1초에 몇 번 심는 다음에는 일손이 빠를 때
거기에 노래를 맞추다 보면 노래하기가 힘이 들어져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에는 노래 마디가 굉장히 길어지고
노래 한 마디 하다 보면 한 3분 지나가고
한 3분짜리 10개 하면 30분 지나가가지고
새참 나오고
이렇게 돼야 사람들이 노래에 별 부담을 느끼지 않고
시간이 경과될 수 있겠네요 알겠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소리를 한 곳에 모아둔 우리 소리
박물관이 이게 언제 생긴 겁니까?
작년 11월에 개관됐습니다
작년 11월 관장님 때문에 생긴 거예요?
제가 하자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니고요
서울시장님께서 어느 무슨 전시회에 우연히 만나 뵀는데
서로 인사를 하니까 저를 이미 알고 계셨더라고요
처음 뵙지만
그러면서 서울시에서 박물관을 여러 개 만드는데
민요 와주고도
박물관 좀 만들 수 없습니까? 라고 하셔서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한번 해봅시다 그런 게 이제 시작이 됐죠
MBC에서 자료를 많이 해놓고 출판도 하고
정리가 잘 된 상태이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박물관이 만들어질 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MBC의 자료를 이쪽으로 빼돌리신 거네요
MBC에서는 쓸 만큼 써서 제가 관리를 하고 있었는데
방송은 지금도 계속 하고 있고요
다른 용도가 없이 보관에 어려움이 오히려 생겼기 때문에
공공박물관에 기증되는 게 훨씬 효용이 있다
여기서 보관하고 있는
우리의 소리는 한 몇 개 정도 있다고 보면 될까요?
MBC로부터 기증받은 게 18
,000곡 엄청나게 많은 겁니다
저작권 이런 개념은 없는 거죠?
부저미녀는 저작권 개념은 없고요
누가 만들었다는 기록도 없고
그런데 저작인접권은 발생합니다
노래 부른 분의 권리, 가창자의 권리,
그 다음에 그걸 방청석의 권리
이런 식으로 인접권은 발생하는데
근데 이건 좀 아쉬우시겠다 북한 쪽은 못 가셨잖아요
북한은 저희가 직접 갈 수는 없었고요
거기는 돈 좀 주면 갈 수는 있었을 거예요
한두 번 근데 돈 많이 달라고 하고
남북 교류 분위기가 맞아야 되고
또 가봐야 한정된 자기들이 물색한 제보자만
몇 명 보여줬을 텐데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았고요
그 대신 만주 벌판을 헤매면서
북한의 민요를 좀 찾아보려고 많은 애를 쓴 결과
많은 정보를 얻어가지고
북한에 자체
녹음해놓은 자료가 있다는 소문을 듣게 돼가지고
북한에도 있어요
그게? 그거를
제가 수소문을 해서
제가 우리 프로젝트 다 끝나고 그걸 꼭 찾아내야 되겠다
거기서 이제 나온 악보집은 몇 개 있었어요
우리나라에도 너무 먼 게 있었는데
북한 자료센터 같은데 보면 향토 민요가 분명한데
악보를 그려가지고 책이 몇 권씩 나와 있어요
제가 경험상 악보를 그릴 정도면 녹음을 했을 것이다
녹음하지 않고
어떻게 악보를 그립니까?
녹음을 했다면 없애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딘가 보관돼 있을 것이다
한 3년을 열심히 찾은 결과
어디에 그 자료가 있다는 걸 알게 돼가지고
방송문화진흥의 이사 분들한테 얘기를 해서
특별 기금을 받아가지고 음원을 수입을 했습니다
중국을 통해가지고
3자 무역 형식으로 이제 있는 걸 다 가져와가지고
1년 정도 작업해가지고 음반으로 10장을 냈죠
북한 노동교를? 북한 미녀 전집
북녘당 우리소리라는 음반이 시판이 돼가지고
지금도 아마 절판되지 않고 팔릴 걸로 알고 있는데
문제는 음질이 좀 안 좋고
보관 상태가 안 좋아가지고
약간 노래가 짧고 완전치 않죠
가사에다 김일성 이름 들어가는 거 아니에요?
향토 미녀는 그런 거 아니에요
그건 다 뺐죠 그거는 전통성이 없죠
그런데 여기에 완전 그냥 푹 빠지셨네요
우리의 소리 자체 그랬습니다
빠지게 될 줄은
아마 시작하실 때는 전혀 예상 못하셨겠죠 몰랐죠
하다 보니 또 사랑받으니까 더 하게 되고
나도 이제 사명감이 좀 생기고 책임감이 생기고
제가 손 놓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방송도 열심히 해서 이걸 알려야 되고
할 일이 많아져서 평생 작업이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 소리 박물관이 어디에 있었을까요?
창덕궁의 도나문이라고 입구가 도나문인데
그 바로 건너편입니다
한옥 건물로 아주 예쁘게 지어서요 정말 예쁩니다
위치가 좋아서 창덕궁
비원 구경하시던 관광객들이 저거는 뭐지? 하고 나오다가
보고는 호기심에 들어오신 분도 많고
일부러 알고
아이들 손잡고 찾아오시는 젊은 부부들도 많이 계시고
코로나 덕분에 많이 감소했는데
점점 회복되고 누구나가 볼 수 있다는 거죠?
무료 입장입니다
외부도 참 예쁜데
내부도 엄청 예쁘게 생겼네 멋스럽게 해주신다 앉아서
우리 음원도
미녀도 들어볼 수 있게 해놨으니까 이 소리를
그러면 이 안에 들어가면
이런저런 소리를 계속 들을 수 있는 거예요?
소리는 뭐 무진장 들을 수가 있습니다
홈페이지에서도 들을 수 있고
또 키오스크라고 들을 수 있는 장치가 있고
전시장에 가면 가만히 있어도 들을 수 있고
이렇게 비치에는 스피커가 있어요
컵 스피커라고 컵처럼 생긴 걸 들어서
귀에 대면 보면서 노래를 들을 수가 있고
그렇게 듣으면서 보는 박물관으로 공연을 왔습니다
공간 자체가 워낙에 예쁘기 때문에
한 번쯤 가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렇게 우리의 전통의 소리를 저장하고
또 전달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흔히 무형유산이라고 하는데요
무형문화유산으로 여러 가지가 거론되고
우리 한옥집만 해도
무형유산이라고 짓는 기술 같은 거는
한복 입고 다니는 젊은이 많잖아요
그런 것들이 우리 전통문화를 잊지 않고
다 기록을 해놔야
나중에 누가 쓰더라도 그걸 쓸 수 있게 되고
그런 자료를 모아놓는 게 박물관의 기능이라고 보고
누구든 쓸 수 있게
어디에다 쓸 거냐는 쓰는 사람의 마음이죠
그러니까 공부를 할 수도 있고
교육용으로 연구할 수도 있고
또 음원을 갖다가
작곡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노래를 만들어 부를 수도 있고
그런 사례가 없지 않아 있고요
국악계에서는
향토미노를 이용해서
새로운 창작곡을 쓰는 것이 꽤 이뤄지고
있고요 뭐 그걸 또 다른 가요에서도 사실
힙합하는 분들도 더러
이런 민요를 갖다 쾌진한 칭칭나네 같은 거 이런
거 갖다 옛날에는 육각수라는 그룹이 있었는데
그 그룹은 흥부가 기가 막혀 맞습니다 이래가지고
이제 그건 판소리입니다마는 향토 민요도 재미있고
멋진 것들이 많거든요
갖다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박물관 기능이고
그 기본 정신을 말씀드리자면
한국인의 정체성을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소재다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다른 나라에 가면 그 나라의 어떤 전통문화를 접하면서
그 나라 사람들은 이렇구나 저렇구나
국민성이 어떻구나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요즘에 코로나
방역 조건이 굉장히 많이 알려지고
BTS라든지
이런 것 때문에
과연 한국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궁금해질 거 아닙니까?
그러면 이제 뭘 가지고
한국 사람의 어떤 본성어를 앓게 될 수가 있겠는가
그럴 때는 향토 미녀를 박물관에 와서 보시고
들으면 그 뿌리를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지 않을까입니다
끝으로 지금 이 힘든 시기에
딱 힘이 될 만한
우리의 소리가 있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노래로 마지막 한번 딱 들어볼까요
거기 이제 아라리 한번 찾아보시면
강원도에 정선의 아라리라고 나올 텐데요
전균왕 할머니가 부르신 노래인데
강원 정선군의 아라리 맞나요?
네 이걸로 한번 제가 한번 가겠습니다
처음에는 이제 노랑저거리
분홍치마 저거는 시집을 가기 싫은데
억지로 갔다는 말씀이고요
노랑저거리 분홍치마는 혼수로 입고 가는 건데
슬프다 가기 싫은데
억지로 가서 고생을 요금된 나물 얘기
한치디산에 곤드레
딱지기가 나물을 무지하게 뜯어서 먹었던 거예요
배가 고파가지고
양식이 모자라니까
산나물이 나오면 많이 뜯어서 섞어가지고
겨우 배를 채웠던 슬픈 걸 하셨어요
슬픈데요 그 다음에는 아까 말씀드린 슬프지만
인생살이에는 슬픈 겁니다
슬프지만 우리가 이웃간의 정으로
가족간의 정으로 이 세상을 견디자는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지금 이건 하소연하는 거고요
여기 나옵니다 우리 팔자는 호사롭게 살 팔자는 못된다
그렇지만 이제 일종의 체념인데요
선생님 왜 이렇게 슬픈 걸 했어 이
슬픈 인생을 이기는 힘이 정입니다
우리 민족의 또 하나의 특징이 정이 많다는 거거든요
이렇게 살았어요 저렇게 살아왔거든요
우리도 지금도 코로나가 어려운데
사실 우리가 서로 가족 간의 정을 확인하면서
이런 거잖아요
우리가 재난기금 받았으면 가능하면 전통시장 가서 써주고
어려운 데 써주고 이러면서 같이 사는 것
공동체로 일어나자 도불어 사는 삶이다
이거죠 그런 것들이 물론 아직 씩씩한 노래 많습니다
그런데 생각나는 걸 말씀드렸는데
슬퍼하지 마시고
이거는 슬픔을 극복하는
노래로 극복하는 노래로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저희 할머니 목소리랑 너무 흡사하고
슬프네 기본적으로 우리 미녀가요 애잔해요
다른 나라 미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게 우리 인간들이 태어나면 노래하면서
자기 얘기가 그냥 나오다
내가 이렇게 자랐지 바로 나오잖아요
본인 이야기야 아유
슬퍼 이런 소리들을 서울 우리소리 박물관
직접 가면 더 좋지만
못 가시더라도
인터넷으로 홈페이지를 통해서
그림을 봐가면서 음미할 수 있게 많이 해놨습니다
정리가 잘 돼 있네요 알겠습니다
우리소리 우리가 많이 좀 잊은 것 같은데요
우리소리 박물관에서 계속 많이 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새롭게 많은 콘텐츠를 저희가 준비해서 모시겠습니다
오늘 함께해 주신 서울 우리소리 박물관의 최상일 관장님
대단히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걱정 말아요
서울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들로 만들어지고 있죠
팟빵 채널을 통해서 댓글 남겨주시고요
서울골뱅이 팟빵닷컴으로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 주에 더욱더 풍성한 소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함께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아이서울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