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KBS1TV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공릉동편(경춘선숲길, 서울생활사박물관, 착한임대인)
서울 도심 한복판 느긋한 발길들이 오갑니다
요란해야 할 철길에 행복한 웃음소리가 가득합니다
몸과 마음으로 걸어요 요즘에는 미세먼지도 좀 덜하고
공기는 참 좋은 것 같아요
아주 걷기에는 참 좋은 날이네
이런 날씨엔 걱정거리 잠시 잊고
신나게 걸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기찻길 위에서는 왜 어릴 적
그 마음으로 돌아가게 되는 걸까요?
안녕하세요
옛 추억을 소환하는 이곳 어딘지 궁금하시죠?
경춘철교 1939년 개설된 경춘선이 지나던 교량으로
서울과 춘천을 왕복하는 열차가 달린다는 의미에서
서울을 나타내는 경과
춘천의 춘을 더해 경춘철교라 이름이 지어졌다
참 제가 젊었을 적에는 이 춘천이 청춘들의 해방구였죠
그래서 이 경춘선 하면
지금도 마음이 설레고 가슴이 뛸니다
청춘열차의 대명사,
경춘선 젊음과 추억을 실어나르던 경춘선
철교를 품고 있는 이곳은 서울 공릉동입니다
여기도 참 많이 변했죠
30년 전만 해도 중랑천, 천변 주위가 논 밭이었는데
지금은 저렇게 고층 아파트가 웃겨져서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오늘은 김용철의 동라
한 바퀴 서울 공릉동을 걸어보겠습니다
공릉동을 관통하던 기찻길이 푸른 숲길로 바뀌었습니다
아유 저것도 예쁘다
이야 이렇게 경춘 숲길이 참 좋네
그냥 계속 연결이 돼 있어서 산책하기가 정말 좋다
시끄럽고 때론 위험하기도 했던 기찻길의 변신
10년 전 열차가 멈춘 길은 사람,
나무, 꽃 세상이 됐습니다 아이고, 예쁘다
꽃 이름을 알면 더 좋을 텐데 아이고, 예쁘다
우리 사람 얼굴 다르듯이 꽃도 하나하나
이렇게 같은 꽃인데도 다
이렇게 얼굴이 다른 거 보면
조물주가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내셨는지
다 자기 나름대로의 개성도 있고
또 아름다움이 다 다르고 이
꽃길을 가꾸시는 분인가 봅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뭐 하세요?
살구나무 죽은 가지를 치고 있어요
이게 살구나무군요
여기 열매가 있네 예쁘죠?
아이고 튼실하게 잘 연걸었네요
이렇게 꽃말도 달아주시나 봐요
네 좀 더 여기 아
그렇구나 살구나무라고 물 망치를 찾아가지고
아 뽑아 놓으시는구나
그 앞에 이렇게 놓으면 저도 이름표 하나 달아 보실래요?
백묘국이라고 백묘국 하얗게 보이는 거 있죠?
네 여기다 이렇게 뽑아주세요
백묘국이구나 어쩌면 영영 모르고
지나쳤을 이름 모를 야생초들 살뜰한 손길 덕분에
이젠 마음껏 컨닝하며 이름 부를 수 있게 됐습니다
경천 숲길이 정말 좋네요
6년, 7년 전만 해도 이런 길이 아니에요
여기서 판자춘도 칠배했고
아주 열악한
그런 데 숲길
공원이 되면서부터
이렇게 확 달라졌어요 이 동네
사시는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한 20년 넘어갑니다
집사람이 몸이 좀 안 좋아서
공기 좋은 곳을 찾아서 이쪽으로 오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은 왕쾌 되셨어요? 아니에요
지금 저 세상은 같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몇 년 되셨어요? 한 3년째인데
아 3년이요?
5월 25일이면 3년이요 아
그러면 이곳에 오셔가지고
한 17년 동안 같이 숲길을 걷고
그러셨겠네 많이 걸었죠
미늘내도 실 때가 다 돼서 매일같이 둘이었을 산책길
이제는 혼잡니다 잘 자라라 아이고
여기 방가지 똥이 방가지 똥이 혼자 피고 있구나
기차가 다닐 때
철로 변이어서 야생 그대로 있던 것들이 이렇게 자라나요
방가지 똥 아이고
깊게 들어가서 잘 서 있어라 순박한 이름들 마음에 품고
아내 보듯 꽃을 본 세월이 벌써 3년째입니다
8년 전 집사람이 말기 폐암이었죠
그걸 받아가지고
그때부터 계속 8년 동안 병간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다가 조금씩 나와서 걷기 시작해서
경준선 숲길을 쭉 걷다가 집사람이 걸음이 느리잖아요
느리느리 걷다가 딱 뭉쳐서요
그래서 왜 어디 불편해 했더니
집사람이 떳떳떳 이 꽃 이름이 뭐야 물어봐
그런데 제가 언뜻 잘 알고 있었다는 꽃
이름도 생각이 하나도 안 난 거예요
그냥 먹먹하고
그래서 한참 고민하고 자꾸 이름 찾고 해도 안 나와요
웃는 얼굴이 꽃처럼 고와 첫눈에 반했답니다
40여 년 인생의 절반을 함께 걸어온 아내는
마지막 눈에 담았던 하얀 꽃나무의 이름을 알지 못한 채
홀로 떠났습니다
이제야 찾은 이름,
쥐똥나무 만나자고
약속이나 한 듯이 올해도 어김없이 꽃망울이 맺혔습니다
5월이면 쥐똥나무가 꽃을 피워요
그때는 집사람이 이 꽃 이름이 뭐야 물었을 때
그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서 저한테 전달돼요
그때는 문득문득 그립고 그래요
지금 보니까 괜히 얄미워요
가장 냄새 좋은 나무에
가장 아름다운 꽃 앞에서 자기를 기억하다니
그래서 조금 밉기도 해요
꽃향기에 실어 아내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어떤 시간 경춘선 숲길을 지나는데
무슨 말이 들리는가
저만치 지났다가 돌아와서 귀를 열었다
줄기를 껴안고
빙글빙글 돌다가 떨고 있는 이파리 한 입 가만 눌렀다
안녕 당신이 대답했다
경춘선 기찻길을 지척에 품고 사는 서울 공릉동
때로는 그립고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는 이야기들을 만나는 중입니다
집이 쌍둥이 건물이네
낡은 철길을 변화시키니까 새로운 식당도 생기고
카페도 태어나고
숲길을 따라서 도시가 재생되고 있는 그 시절
살림집을 고스란히 살린 주택 카페네요 안녕하세요
마스크를 꼭 하라고 안녕하세요 여기
아니 지나다가 이렇게 어떻게 똑같아요
건물이? 네 건물이 좀 오래돼 보이죠?
30년 넘게 된 건물이라고 들었어요
지금 보니까 여기 거실이고
여기는 그렇죠?
네, 안방이에요 여기는 부엌 옛날 부엌이었어요
저희 아버님이랑 저랑
어머님이랑 셋이서 같이 인테리어 한 거예요,
셀프로 그러면 원래 여기서 살았어요?
원래 살지는 않았고 이 동네에서
한 30년 넘게 살았거든요 30년 정도 살았는데
그러면 이 철길에서 뛰어놀고 그랬겠네요 그렇죠
철길에서 뭐 그러면 안 되는 거니까
그런데 반도 한 번 넘어볼까?
띠링띠링 소리? 그런 거 우리 이제 많이 들었죠
자다가 막 기차 소리 때문에 깨고 맞아 하루 7번
춘천행 기차가 지나가면
온 마을엔 소음과 먼지가 가득했답니다
10년 전 마지막 남은 열차까지 멈추고
숲을 갖게 된 마을은
꽃 같은 젊은이들이 붐비는 향기나는 동네로 바뀌었다네요
서울 같지 않은 동네? 서울 같지 않은 동네였어요
친구들이 다 공릉동 언제 벗어나냐고 야,
너 공릉동 언제 벗어나냐?
뭐 이렇게 지금은 친구들이 부러워하죠
어릴 때는 막 다 이 공릉동만 벗어나면 성공한 거?
공릉동 벗어나면 성공했다고 이러는데
지금은 공릉동에 있는 게
성공한 기찻길
옆에 산다는 게 고달픔이었던 시절도 있었죠
이젠 그 시간들도 추억이라는 근사한 선물로
남게 됐습니다
따사로운 햇살이 그냥 이렇게 내려주네요
경춘선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낭만을,
동네 주민들에게는
추억을 선물하는 주택가 여러분도 한번 오셔서
시간여행 속으로 빠져보시죠
서울 공연초등학교 13기
졸업생 공릉동 퀴즈가 다시 뭉쳤습니다
뭐지? 이거 선 정신선 사람 진짜 많더라
옛날에 다닌다고
우엉 지역이 아니야 없는 것도 많이 없어지고
요즘에 동네 사람들 다 이리로 다녀 텔레비전
첫사랑 초등학교 때 첫사랑 봤는데
못 알아보고 이런 거 이해 못하겠어
똑같이 생겼잖아
우리 계속 봐서 그래 진짜 똑같이 생겼는데
왜 보내? 우리가 계속 만나서 여기 안 보는 애들
이런 애들 봐봐 너 좋아했지? 우리 같은 아파트 살았어
나랑 승연아 너 예뻤어 마음은 그때 그대로인데
아니 언제 이리들 훌쩍 커버렸을까요?
봄이면 자전거 타고 부람산을 내달리고
겨울이면 중랑천에서 썰매를 터던 무적의 꽁릉동 키즈
여기서 내려가야 돼
오늘은 옛 골목길을 접수할 참이라 합니다
천천히 가르치지 골목
옛날에 애들이랑 여기서 순덕국질하고 다방 구하고
여기가 엄청 좁아가지고
저기가 엄청 좁았거든
변치 않는 골목은 마르지 않는 추억의 샘물 같은 것이죠
엄마가 이를 지붕에 던져야 새기가 생겨서
그래서 이 목상에다가
이렇게 턱 해가지고 몇 개 올려놨는데
아직도 있을 거야
어 이빨 뿐만 아니라
언니보다 있는 거 아니야? 어 다 있지
그때 아빠가 막 이뻐 봐준다고 하면 울고
방문에 걸어서 땡긴다고
실 묶어서 이 좁은 골목길에서 놀다 보면
하루에 가 또 어찌나 짧던지요 좁지만
너른 우정과 추억을 쌓았던 그 시절
골목길이 참 그립습니다
조용히 좀 더 철거가 아닌
보존을 택해 다시 태어난 경춘산 철길
앞으로도 오래도록 공릉동
키즈의 추억의 아지트가 될 겁니다
골목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와 봤습니다
저쪽 앞쪽에는 아파트, 고층 아파트들이 있고
뒤쪽에는 또 이렇게 연립주택들이 옹기종기 있네요
철문 이 벽돌에 이 철문 70년대 정도에서 이때 주택,
가옥들 구조가 다 이랬죠
소규모 벽돌 공장이 성행했던 80년대 당시
빨간 벽돌집은 골목길의 상징과도 같았죠
이런 서울의 길도 참 정치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깜짝 놀라요 뭐하고 계세요?
바느질한 거 사진도 찍고 있었어요
바느질? 그건 뭐예요? 이거요?
스케이트 아이들 칼 날 있잖아요 칼집? 네 맞아요
날집 이렇게 보관하는 녹슬지 말라고 보관하는 날집인데
새로운 거 만들어서 사진 찍고 있었어요
여기 무슨 공방 같아요? 네 작업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냥 막 이렇게 어지르고 있었어요
공릉동 젊은 엄마들의 사랑방인가 보죠 이 동네 사세요?
네 동네에서 바느질하고 오고 가면서 수다 떨고
그러는 분들이 많아요
여기서 이렇게 공방을 운영하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3년 됐어요 친구분들이 많이 생겼네요 이 동네에 그렇죠
바느질하시는 분들이랑 알고
알고 하면서 이 동네에서 뿌리 내리고 살다 보니까
뭔가 정감 있고 그런 동네라 좋아요
아니 그게 아니고
반장 아줌마가 그렇게 얘기를 하신다니까
비슷한 또래 아이를 가진 엄마들의 고민
해우소로 시작된 바느질 공방
요즘은 면 마스크 만들기가 한창입니다
가족과 이웃들에게 나누기 위한 젊은
엄마들의 야심작이라네요 이건 이쁜데 나는 이거요?
이거 한번 해보세요 필터도 넣을 수 있게 해봤거든요
네네 어떻게 여기까지 사진을 찍어도 돼요?
네, 해도 돼요
귀엽다 멋있어요
좋게 아주 주머니에 아주 오래 쓰도록 간직할게요
아니, 감사합니다
16년 전 결혼 후
신혼집을 꾸리면서 정착하게 된 공릉동
마음둘 곳 없던 그때
바느질을 시작하면서 하나, 둘 동네 친구들이 생겼답니다
나 조수 조수 짜잔 아이를 낳고
아기가 어렸을 때는 특별히 뭐 활동을 하고
그러는 건 없었어
그러니까 동네분들이랑 어울려 지낼 계기도 없었고
그런 육아 스트레스나 우울한 것들을
내가 만들기를 좋아하니까
그냥 미싱으로 샤부짝 샤부짝 뭔가 만들어서 재미라면
그런 재미로 약간 산후 우울증을 극복한 거였거든요
그러면서 자꾸 이렇게 성장한다고 그래야 되나?
그러면서 이 동네에서 뭔가 재미를 찾고
여기서 이제 정을 붙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다리미 다려줘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장님은 마을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힘이 되고
편안한 곳인지 뒤늦게 알게 되었다네요
그래서 마을에 필요한 게 있으면
고사리 손이라도 보탤 줄 아는 동네
주민이 다 됐답니다 이 동네가
이쪽에 잘하는 부분이 있고
이쪽에 좋아하는 거 있으면 서로 모여서 공유하게 되고
서로의 대우를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고
우리는 또 바늘 짓잖아요
어떤 분은 마을에서 하는 분들도 있고
책 모임도 많아요 공감 내용성이 잘 되고요
고민 해결도 잘 되고
서로 모여서 나눔도 잘 되고
그런 것 같아요
골목길 로열 석에 판이 벌어졌습니다
뭐 맛있는 거 하세요? 부침개다
이거 뭐야? 진짜?
나는 마스크 만들어서 하나씩 드리려고 왔는데
모자라 맛있다
오늘은 동네 어르신들과의 골목길 회식날 아이고
열무 맛있겠네 이런 풍경춤은 여기선 일상이랍니다
복닥복닥 둘러앉은 자리
다정하게 나눠드시니까 더 맛있겠네요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들이 있어 더 살맛나는 곳입니다
그렇게 어울려서 불러서 와서 해 먹고
내 거 갖다가 이렇게 해 주고
이래 먹고 그게 참 재미있다
딸이 전화, 딸인데
전화 자주 안 했다가 엄마한테 혼났다는 거야
당연하지, 혼나야 돼
전화를 바쁘다는 거는 알면서도 전화만 기다린다는 거야
엄마도 바쁜데도
어머님, 가까운 곳에 엄마들이 이렇게나 많이 생겼어요
이제는 딸 걱정 조금만 하셔도 되겠습니다
잠깐 살다가 이사 갈 줄 알았던 동네였는데
그냥 여기를 이제 못 떠날 것 같은 그냥 여기가 고향,
고향 자체가 된 것 같아요 이렇게 됐다
고향집 같은 이 풍경을 정말
오래도록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생활사박물관
작년 서울 공릉동에는 특별한 공간이 생겼답니다
생활사 박물관이면
우리의 생활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거구나
2010년, 옛 북부 법조단지가 이전하면서
10년 동안 방치됐던 건물이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답니다
장롱 속에 넣어둔 손때 묻은 물건
기억 속에서나 반짝이던 보물 같은 추억들을 바로 이곳,
서울 생활사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양은솥 오랜만에 보네 참
그러고 보면 옛날 어머님들이 참 바지런하신 것 같아
항상 부엌에 가면 저 양은 냄비
양은솥에 항상 이렇게 깨끗하게
반짝반짝 빛이 날 정도로 닦아서
꼭 이렇게 정돈해 놓고 그러셨어요
어머님들이 바로 어제 일처럼 기억이 또렷한데
벌써 이런 물건들이 박물관에 전시되다니
저만 어색한 기분인가요?
내 집을 꿈꾸다 오 문이 열리네 아 참
그때는 이렇게 최민섭,
김덕호 아 참
집 앞에 이렇게 문패를 걸어놓는 게 참 하나의 꿈이었죠
내 집 앞에 문패를 달아놓으면
드디어 내 왕국이 생겼으니까
정말 뛸 듯이 저도 전세를 살다가
드디어 조그마한
내 집을 마련했을 때의
그 벅찬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분들 다 평안히 안녕하시죠? 이 시대에
평범한 부모님들의 훈장
어디 문패 뿐일까요? 그 삶 자체가 빛나는 훈장이고
또 역사죠 골목길을 걷다 보면 소소하지만
귀한 일상을 만나게 됩니다
장독대가 있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여기 몇 명이세요? 이 동네?
아니, 저 장독대가 아주 예쁘네요
이렇게 있네 뭐 하시는 중이세요?
소금 약간 항아리가 깨져야 간수가 빠지거든요
그래서 소금을 여기에 넣어놓고 써요
그래야 간수는 빠지고
위에가 건조되니까 좋아요
여기 식당이에요? 네, 식당이에요
뭐 하는 식당이에요? 칼국수 보리밥이요
맛있겠다 식당 갔어요? 배고파요 먹어야 돼요
식당 가세요 마침 식사 중인 분들도 계셨네요 안녕하세요
여기 자주 오세요?
병원에 할아버지
여기 모시고 왔다가
아 병원에 오셨다가? 네 여기 뭐가 맛있어요?
불깨칼국수가 맛있고 보리밥도 맛있는데요
아 그래요? 이 사진은 어디 사진이에요?
저희 옛날 집
옛날 집? 네, 구호 여기가? 이 자리에요?
여기 전봇대 있잖아요 네 저기에 방이 몇 개였어요?
하나, 둘, 셋 셋
셋 네 저 거기서 우리 막내 동생은 낳았거든요
73년도에 태어났으니까
막내 고향이 아마 이쯤 될 것 같아요 이런 칼국수
또 보릿강된장 이거는 누구한테 배우신 거예요?
사실 엄마가 맏며느리시거든요
그래서 엄마가 아
친정엄마가? 네 친정엄마가 그러다 보니까 식구들도 많았고
도시락은 7개씩 싸고 그러셨어요
삼촌도 같이 있고
그래서 그런 걸 많이 좀 본 것 같아요
식구도 많았고
그나마 식구도 많았고
50년 전 공릉동 이 자리에 털을 잡고
5남매를 키워내셨답니다
형편이 어려워도 늘 정있게 살아라
가르치신 분이 친정어머니셨다네요
지금은 엄마가 재활 중이시거든요
작년에 뇌출혈에 오셔서 병원에 계시는데
엄마가 사람을 되게 좋아하셨고
누가 오시는 것도 되게 좋아하시고
음식 나눠주는 것도 되게 좋아하셨어요
엄마가 예전에 대문 열어놓고 지나가는 사람
들어오시면 밥 한 끼 하고
가시라고 하셨던 그런 마음처럼
저도 우리가 대단한 음식은 아니지만
엄마가 그랬듯이
저도 이 자리에서
엄마 같은 마음으로 그런 마음으로 해요
어머니 시절처럼 배골눈 사람을 거둘 수는 없지만
그래서 재료에 마음을 쓰신답니다
검은콩과 흑미, 깨, 보리, 현미
이렇게 우곡을 빻아서 반죽을 빚고 하루 동안 숙성합니다
부드러우면서도 찰기가 도는 친정어머님표
면발 비법이라네요
진득하면서도 묵직한 건강한 그릇
어머님의 비법과 딸의 정성이 담긴 대물림
음식 들깨칼국수입니다
고소한 들깨향은 100점인데
맛은 몇 점일까요? 자 까다로운 시식이 있겠습니다
우리 면이 굉장히 부드럽고 들깨가 아주 향이 좋다
어머니한테 이렇게 눈으로 마음으로 배워서 그런지
정말 맛이 다 익혔네
어머님의 너른 품을 닮은 진한 들깨칼국수
그 귀한 맛 잊지 않겠습니다
서울 공릉동은 어느 골목을 걷든
경춘선 숲길과 연결됩니다
와, 이 도깨비가 세상에서 제일 인상 좋은 도깨비들
공릉동에 다 모였네요
안녕 도깨비 시장이라 도깨비 그림이 그려 있구나
공롱동 도깨비 시장은 서울
노원구에서 규모로는 1등인 전통시장이라네요 안녕하세요
이걸 두릅 요즘에 철이죠
철이에요 그건 엄나무순 이것도 맛있죠?
족고추장에?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현지에서 먹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게 도깨비장 병물입니다 맛있다 맛있죠?
바닷물에 삶으신 것 같아 아닙니다
맛이 그대로 있네 하나 더 드세요 아유, 맛있다
쫄깃쫄깃 백구동 오늘 아침 동해에서 상경했답니다
바다 맛이 나죠?
네 나는 동해에서 먹는 것도 더 맛있는 것 같아요
시장길이 아주 반듯하고 정갈합니다 안녕하세요
바다 신장반이 동네나 남고 여기 동네 왔잖아요
우리 동네? 정말? 반갑습니다 아이고
아프고 다시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갔다 가십시오
아주 깔끔하게 해 놓으셨네 예 일하시는 거예요?
파 소포장 옛날에는 막 이렇게 묶어서 팔고 그랬는데
요즘에 시대가 그렇죠 1인 2시대니까 안녕하세요
어머니세요? 부부 그런데 이 시장 이름이 왜 도깨비예요?
도깨비 시장이라고 명하게 된 거는
그때 당시 나 같은 사람,
20대 초반
이런 사람들이 들어와서
니아카 끌고 장사를 시작하다 보니까
당범대원들이 와서 쫓고 동사무소 직원들이 와서 쫓고
그러면 먹고는 살아야 되는데 해결나 해야 되는데
단속은 또 피해야 되고
그러다 보니까 달아이들고 튀고 지게지고 튀고
그러니까 금방 시장이 있던 게 싹 없어져 버린 거예요
단속 끝나면 또 우
딸기 장사부터 시작해
마흔이 넘도록 손수레 노점상을 해온 채소 가게 사장님
딸 둘 아들 하나 늘어가는 식구들 건사하며
천신만고 노력 끝에 지금 이 자리에 뿔이 내렸답니다
지금 한 15년을 하루도 안 쉬었거든요
아 하루 딱 쉬었다
우리 큰딸 시집 보내는 날 언제라도 한이 맺혔던 거지
아 나도 언젠가는 점포를 하나 얻어야 되겠다
근데 그 기간이 20년 걸린 거예요
아이들 키우고 어쩌고 하다 보니까 20년이 걸리더라고요
빈 주먹으로 읽어낸 꿈의 점포
그러니 얼마나 귀할까요 성실하게 열심히 살고 있어요
이날 이때까지
몇십 년을 봐도 맨 똑같이 그렇게 살고 있어요
근데 뭐 장사만 잘 되면 힘든 게 어디 있어요 즐겁죠
요즘에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분들이 안 나오시니까
조금 힘들죠
코로나 처음 때는 아주 얼어붙었었는데
방역도 2일에 한 번, 3일에 한 번 꽉 캤어요
쭉 보시면 손소독제 쭉 넣고 점포마다 다 피치했고
그래서 하여튼
아무 사고 없이 현재까지 잘 지내고 있어요
최고죠 감사합니다
요즘에 저도 뉴스에서도 보고
하지만 서로 많이 어려우신데
조금 돕자는 취지로
이제 임대인들이 세입자
분들한테 많이 좀 이렇게 절감해서 월세를 받으시잖아요
여기도 혜택이 되나요?
아유 우리 받았죠 일 바람 많이 도와주시고
또 우리 이 건물에도 이제 한 20 %씩 몇 개월
이렇게 서슴치 않고 해주시더라고요
열심히 잘해보자 아유 고맙네
파이팅입니다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파이팅! 요즘 시절에 자기 점포가 없는 상인들은 밥알이
모래알 같은 심정이었답니다
이럴 때 잡아주는 따뜻한 손길이 큰 위로가 되겠죠
자발적으로 임대료를 깎아주자는
착한 임대인 운동이 퍼지면서
상인들에게 작은 희망이 생겼답니다
이거는 코로나 때문에 장사들이 안 되니까
사장님께서 3개월 10 %씩 적용해 주신다고 했어요
너무 감사하죠
저희들은 장사 안 되는데
그렇게까지 해 주신 신경 쓰니까 고맙죠
착한 임대인들을 위해 서울시도 팔을 걷었습니다
내린 임대료의 30 %만큼의 건물 보수와 홍보,
정기시설 점검 비용을 함께 나눠주기로 한 것이죠
착한 임대요운동, 종통
참여해주신 건물주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지금 뭐, 너나 없이 다 어려운데
이렇게 또 건물주 되시는 분들이 어려운
결정들을 해주셨는데
코로나19로
아직은 힘든 시기
서로에 대한 공감과 응원이 함께한다면
분명 건강한 내일은 더 빨리 찾아오게 될 겁니다
길을 걷다가 발길이 멈춰진다면 그대로 쉬어도 좋습니다
뜻밖의 행운을 만날 수 있거든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4달러예요?
4달러 무슨 공부하러 나왔어요? 네? 놀이터 갔다 왔어요
네? 놀이터 갔다 왔어요 아 놀이터 갔다 왔어요? 아
네, 안녕히 가세요 아, 지금 유치원 아이들이구나
지금 놀이터 가서 자연학습 공부하고
다시 들어가서 점심 먹으러 들어가는구나
걷는 길마다 푸른 실록이라
오래 걸어도 실증나지가 않네요
나무 향기 그윽합니다 공방이구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 공방이네요? 어떤 관계세요?
아버지요? 아
그러시구나 근데 뭐 형제 같아 아유 감사합니다 친해요
아버지 아버지
아들한테 미안하네 형제라고 그래서 얼마나 되셨어요?
저는 한 40년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 자리는 한
10년 된 것 같고요 이 아래 바로 경축선
숲길 네 숲길이요
거기에 목공소가 크게 있었죠
올라온 지는 한 10년 됐고요
주로 뭐를 만드세요?
전에는 전통 살몬 같은 걸 가구 같은 걸 만들었고요
요 근래에는 이제 또 시대가 바뀌니까
실제 뭐 도마라든가 소품 개념 있잖아요
이거는 누가 만드신 거예요?
아버님이? 아드님은 이거 시작한 지 얼마나 됐어요?
저는 완전 얼마 안 돼가지고
한참 먼지 먹어야 될 상황입니다 소리가 좋다
네, 맞죠 그만큼 반달하던 일이죠
아이고,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나무 소품들
마을의 당산목인 느티나무부터
인도네시아에서 건너온 티크온목까지
나무 본래의 성질을 자연스럽게 살려서인지
생활 소품들이 예술품처럼 참 멋져 보입니다
이런 버리는 걸로 내가 주워서 만든 거거든요
자연스럽게 벌레가 딱 이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나와서 제가 아끼는 겁니다
제가 갖고 다니는 거예요
딱 정해져 있었던 건
어떻게 보면 딱딱하고 재미가 없잖아요
그런데 이제 나무 같은 경우는 자연스럽게
썩은 나무라든가
좀 화려하게 짜뚜리 이런 거는 만들어놨을 때
특별한 작품이 나오잖아요 생각지 않은 작품이 나와요
이거는 색깔을 입힌 게 아니고 나무를? 아주 예쁘네요
일하기 전에 아버지와 또 일을 하고
나서의 아버지는 다르지? 그렇죠 다르죠
이렇게 같이 일을 하는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야? 일에 있어서는 매우 엄격하시고
뭔가 가르치는 거에 있어서
허투루 가르치시는 분이 아니시니까
항상 저는 롤모델이 아버지였어요
어딜 가나 항상 아버지가 저희 롤모델이시고
항상 존경하는 사람이다
아버님이 뿌듯하시겠다 고맙죠
또 착해요 아들 하나인데 엄청 열심히 합니다
저도 아들이 둘이지만
다른 사람한테 존경을 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아들한테 존경한다는 소리가 제일 듣기 좋더라고요
앞치마는 왜 입냐고요?
남자들의 로망 목공일에 저도 도전장을 내밀어 봤습니다
생각보다 거친 작업이 이어져서 이거 되려 더 재밌네요
네 아주 느낌이 너무 좋다
나무를 살짝 그을려 이름도 새겨봅니다
절대 변하지 않을 나만의 도마 만들기
이건 저의 아내를 위해 간직하겠습니다
네 4살 때부터 목공소를 놀이터 삼아 커온 아들
세훈 씨 고등학교 때
진로를 건축과로 정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아버지 밑에서 목공일을 배우는 중입니다
너무 항상 바쁘셨어서 사진에 항상 아버지가 없어요
항상 엄마랑 찍은 사진밖에 없어서 저는 조금
그게 항상 왜 아빠 사진은 왜 없지?
항상 일하고 계시는 거죠
판타지 같은 존재 볼 수가 없으니까
꿈에서나 볼 수 있는 판타지 같은 존재였었고
아버지를 보려면 목공소로 찾아가면 돼요
하나뿐인 아들에게 되려 더 엄격하셨답니다
한 번의 실수는
곧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게 목공일이기 때문이었다네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동생 생활 기억나서
삼촌이랑 같이 만약에 실수로 떨어뜨릴 것 같다
그러면 그냥 몸으로라도 받아라
그 당시에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 당시에는 자제가 사람보다 더 귀할 때였어요
이렇게 받았거든요,
팔로 받아서 되게 뿌듯했어요 자제를 지켰다
그런데 저는 여기에도 지금 흉이 있거든요
그래서 계속 지금도 있는데 그 정도로 엄격하시고
그리고 칭찬을 받기가 되게 힘들었어요
속으로는 내가 칭찬을 많이 하죠
칭찬하면서도 말을 좀 그까짓 것 같고
생생내 이게 무슨 얘기가 칭찬이거든요
3년 전 새 식구가 태어나면서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아들은 아빠가 됐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걸까요?
예전보다 손발도 더 잘 맞는답니다
소나무를 깎아 만든 나무벤치 경춘선 숲길
소나무벤치가 제2의 뿌리를 내릴 곳으로 안성맞춤이네요
늘 뒤따라 걷던 아들도 이젠 아버지
옆자리가 딱인 것 같습니다
마을의 병풍과도 같은 부람산
싱그러운 봄 내음이 가득합니다
와우 진짜 바위가.. 여기가 불암산 줄기인가? 와 대단하네
흡사 수도를 위한 고행길 마냥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
그 끝에 속세를 떠나 있는 듯한 작은 암자가 있습니다
학이 논의된 아름다운 곳이라 해 이름붙은 학도암
그리고 이곳에서 뜻밖의 마애부를 만났습니다
학도암의 전설은? 바위 면에 도둘새김으로 새긴 높이 13
.4M의 가늠보살은
전국에서 가장 큰 마해불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비로운 그 빛이 공릉동에도 오래도록 닿았겠죠 이
학도함에서 바라보는 이 공릉동이 어머니의 치마
폭에 감싸있듯이 포옥 감싸있네요
그래서 이제 이 공룡동이 참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듭니다
작은 물들이 큰 물로 모이듯
공룡동 여기저기서
들고나는 골목길은 다시 경춘선 숲의 낭만과
그리움이 깃든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것도 좋겠습니다
(영상자막)
그대 봄에 공릉동에 오시면
잡은 손에 힘을 주고 환하게 웃어요
우리가 만든 우리만의 시간과
문장을 함께 외우기로 해요
봄이잖아요
김재천
(그대 봄에 공릉동에 오시면) 중
하얀 꽃과 함께 찾아올 그분 올해도 만나셨나요? 어머님의 손맛은 오늘 하루만큼 더 깊어졌겠죠
아버지의 인생 나이트를 이젠 아들이 이어가게 될 겁니다
이렇게 한 공릉동 키즈들 그 우정 변치 말아요
오늘보다 내일이 더 행복할 공릉동에서 말이죠
방송에 소개된 명소를 찾아
인증샷과 소감을 남겨주시면 추첨을 통해 소정의 기념품을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