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걱정 내일도 걱정이십니까?
여러분의 걱정을 덜어드립니다
정영진, 최욱의 걱정 말아요
서울 2주째 백회특집 걱정 말아요
서울 또 하게 됐습니다
2부가 이제 시작됐는데 이 부에는 진짜 대박
게스트가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이분이 나오지 않는다면 사실 의미가 없어요
그렇습니다 팥소 없는 찐빵인가?
뭐 그쯤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요
자 우리 서울시 팟캐스트를 2년 동안 하면서
한 번은 나오겠지
한 번도 안 나왔어요 네 진짜 서운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가 서울시컬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한 번은 안 오실까 해서 근데 오늘도 안 왔어요
굉장히 서운한데요
영상으로나마 오늘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을 무시하는 거예요
그걸 아세요?
여기까지 내가 뭐 올 건 아니지 않나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 화내주시고
분노해줘야 이런 자리를 다 찾아오는 겁니다
자 그럼 한번 연결을 해서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울시 삼선시장
박원순 시장님 연결합니다 뭐 카카오톡으로 해? 야
진짜 너무한다
진짜 이게 뭐냐
야 서울시 진짜 최첨단 달린다며 아 뭐야
이건 또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유 반갑습니다 시장님 반갑습니다
시장님 여기
서울 시민분들이 엄청 많이 오셨는데 이 현장에
안 오시고
이렇게 카카오톡으로 이거는 약간 좀 아이고 죄송합니다
오늘 우리 서울시에 투자출연기관장 MT가 있어갖고
제가 지금 양평에 와있어요
아니 서울시장이 양평에 소개시켜드리면 어떡해요
좀 위수 범위를 벗어나긴 했네요
그래도 우리 투자출연기관들하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인생을 살리고
경제를 살릴까 이 고민하러 왔으니까 좀 봐주세요
아 아무튼 여러분 서운한데
저희 방송의 존재는 알고 있습니까 걱정 말아요
서울을 저희가 2년 동안 하고 있어요
우리 시장님의 정책을 알리고 있다고요
아 내가 얘기는 들었죠
얘기는 들었대 파케스트라고 지금 공공기반 중에 1등이고
또 정책파케스트를 포함해도 한 40이 된다고
그러니까 당연히 시장님이 알아야죠
아니 우리 시장님이 큰일 났는데
제가 큰일 한 번 할게요
두 분한테 아니 그러지 마시고
시장님이 저희 이렇게 대우 안 해주면
저희는 어쩔 수 없이 경기도로 가야 됩니다
아 그러면 안 돼 시장님
어떻게 요즘 잘 지내고 계신 거죠?
아니 그럼요 지금 보세요 내 얼굴이 확 폈잖아요
아니 그 요즘에 그렇게 분위기가 좋지는 않은 것 같은데
욕 많이 먹는 것 같은데 아닙니다
스티비 거는 사람들 비판하는 사람들 막 있는데요
일을 잘하니까 그런 거예요
아 그래요?
아니 그 최근에 광화문광장 재구조와 얼굴 굳으신다
잘 얘기하세요 표정
그렇게 하지 마시고 표정 밝게 하셔야지
내가 얼마나 미남 됐습니까 신수가 화내졌잖아요
그거 관련해가지고
여론이 지금 상당히 안 좋은 것 같더라고요
거기에 대해서 억울한 점 있으면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특히나 그 동상 관련해서 난리입니다
세상에 모든 일이 처음 시작할 때는 힘든 거예요
아니 서울로 할 때 기억 안 나십니까
서울 고가를 시민공원으로 만들 때도 반대가 정말 많았죠
주민들까지 심지어 남대문시장에서 그때 나보고
오지 말라고 들어오지 말라고 그렇게 했는데
제가 정말 꾸준히 설득하고 해가지고
결국 되고 나니까 1년에 130만 명?
아니 아니 1300만 명 그래가지고
그 남대문시장이 대박이 나고
그 면에 따뜻없이 다 올랐어요
근데 뭐 딸거 몰랐다고
뭐 서울시에서 세금 더 내는 분들 안 계시대요?
네네 알겠습니다 엄청 좋아집니다 알겠습니다 뭐
그거는 저희가 뭐 지켜보도록 하고요
조금 전에 조세현 작가가 왔다 가셨는데요
그 광화문 광장이 조세현 사진작가님 네 죄송한데
제 말할 때 자꾸 껴들면은 이 딜레이가 있어서 힘들어요
그 작가님이 그 이 광장이 새롭게 탈바꿈 되면
지금 광장에서 사진 찍으시는
우리 노숙인 분들한테 타격이 갈까봐 걱정하시더라고요
제가 지금 한 몇 분 하고 계신데요
몇 십 명 해도 괜찮도록 해드릴게요
오 이걸 약속하는 겁니다
왜냐면 광장이 한 4배로 커져요
네 4배 늘려도 괜찮습니다
아 진짜죠? 나중에 또 뭐 아니요
그거는요 하면서 쓱 발 빼지 마시고요
약속한 거 실천 안 하는 거 보셨나요?
제가 공약 달성률이 90%가 높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러면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이번 해
2019년에 서울시가 가장 서울시 걱정 말아요
서울시 알았어요 개그하지 마시고 네 개그하지 마세요
올해 서울시 뭐 계획 중에 가장 큰 거
아니면 뭐 가장 시민들한테 좀
어필할 만한 거 있다면
어떤 거 있습니까? 딱 하나만 말씀드립니다 제로페이 있죠?
제로페이 아까 얘기 너무 많이 했어
아니 너무 많이 했어
아니 80만 명의 자영업자가 있는데
이분들에게 카드 수수료 완전히 제로로 알아요
우리 다 그거 말고 다른 거 지금
우리 여기 여성들 많이 와 계실 텐데요
여성들이 경력 단절
이런 게 생기는 이유가 아이 돌보는 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서울시가 그 돌봄의 사각지대를
틈새를 완전히 외우는 돌봄을 실시합니다
그래서 한 만 명 정도를 채용해서
어릴 때부터 초등학교 때까지 직장
다녀도 아무 문제가 없더라도
아무리 밤에 늦어도 또 토요일 일요일 나가도
우리 서울시가 다 책임져주는
이런 온종일 돌봄 시스템을 거주하거든요
이런 게 큰 거고요
또 하나만 더 말씀드릴까요? 주택인데
지금 청년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게 주택 문제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24만 원에다가
추가로 8만 원까지 앞으로 향후 4년 안에 공급하겠다
그래서 이런 청년들,
신혼부부들에게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하는 겁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서울시의 전체 주택이 한 380만 원이 되는데
서울시가 공급하는 공공주택이 약 10%
그러니까 38만원 정도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정도 되면
그래도 많은 우리 청년,
스무 부부들에게 주택 문제가 좀 해결되겠죠
네 그 시장님
저희가 그 매주 서울시
정책 하나씩을 홍보를 하고 있는데
제가 방송을 한 2년 정도 하다 보니까 야
이런 정책은 시민들한테 많이 알려지면
굉장히 참 좋을 것 같은데
너무 안 알려져서 아쉽다라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너무 그쪽으로 약한 것 같아요 맞아요
저도 그런 생각하는데
우리가 조선을 자랑하는 게 사실 좀 어색하잖아요
그런데 요새는 제가 이제 공포 좀 해라
저밖에 모르는 게 많아요
사실 그게 뭐야
내가 만나는 두 분한테 같이 가서 공부를 하면 좋은데
저도 바쁘니까 우리 여기 가만히 있어봐라 누구더라?
정경욱 주무관
정경욱 주무관이 아주 잘한다면서요 아
웃겨요 아 웃겨요? 진급 좀 시켜줘요
재미가 없어서 진급 진급
아아 홍보 잘했으면 진급시켜야죠
네, 그럼요 인센티브로 가야죠
네 우리 저 시장님은 실적 가점이라는 게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시장님은 요즘 하루하루가 너무 바쁘신가요? 많이 바쁜데
그래도 요새 시간을 많이 빼서 좀 쉬고 들이려고 해요
왜냐하면 제가 좀 쉬어야 소시
공무원들이 좀 행복해지거든요 사생활이 있으신가요?
그러면 요즘도 사생활 사실 공적인 생활이 사생활이고
사생활이 공적 생활이고 그렇긴 한데
그래도 요새 제가 하루 이틀씩 휴가도 내고
금년에는 저한테 주어진
법적 휴가 다 쓰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 드리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시장님의 개인 재산을 보니까
저보다도 가난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다보니까 그렇게 됐어요
아니 시장만 그만두면 제가 돈 금방 많이 벌 수 있어요
아 그렇습니까?
나도 팟캐스트 열고 내가 마음대로 얘기하고
그러면 팟캐스트를 무슨 돈을 벌어요
아니 팟캐스트 우습게 보십니까 지금? 전쟁터입니다
여기에 아니 저도 우습습니까?
아니 아니
내가 두 분하고 대적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부모하고 같이 병원을 하면 되잖아요
네 네 알겠습니다
안겨주신다고 하면 약간 좀 허황된 꿈인 것 같습니다
자 그럼 이쯤에서 우리 시장님
반가운 목소리가 있어가지고
잠깐 대화를 좀 나눠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네 대화 나누시죠 어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시민 여러분
저는 따뜻한 온돌방 같은 그런 마음을 가진 남자
박신장입니다 시장님 안녕하세요
아니 박 누구라고요?
아니 시장님 오랜만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아니 제목을 이렇게 똑같이 따라하세요?
아 우리 그때 SBS에서 한번 만났죠
네 그때 제가 시장님 얼굴을 두고 성대모사를 했었죠
반대다님은? 아니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 있는데요
아니 그 그 시장님이 좋아하는
노래는 어떤 노래가 있나요
내가 저 18번은 저기 낙엽 따라 가버리죠
그거 한 소절만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빼지 마시고요
한번 해볼까요
지금 박수 한번 주시죠
네, 이거입니다 이 감귤 좀 들어가야 되는데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 스치며
따스하던 너의 두 뺨이 뭐, 네 오, 그리웁구나
노래도 비슷하게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고
오를 수시면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이상민씨였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대단하시네 고맙습니다
우리 시장님 정말 좋고요
네 진짜 똑같죠?
아니 제가 이제 굉장히 바빠서 이런 행사도 못 가고
저런 행사도 못 가는데 다음에 이상민씨 보내면 되겠네요
네 언제만 남으면 다 못쓰고
끝으로 우리 서울시민분들에게 한마디 하면서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네 시민 여러분 걱정 마세요
서울은 제가 잘 책임지고
우리 시민들의 삶을 잘 보살피고
또 세계 최고의 도시로 만들겠습니다
우리 도시 직원들과 함께 열심히 해서
특히 이제 금년 한 해 민생과 경제를 잘 보살피고
발전시켜서 지금 의류
시민들의 삶을 확실히 좀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시민 여러분 힘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감사합니다 네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시 박원순 시장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최첨단 카카오톡으로 영상 통화를 했습니다
자 2019년 바로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마침 저희도 이제 100회를 맞이했죠
그래서 저희가 3.1운동
100주년 기념 백백토크를 마련했습니다
그래서 그 백백토크의 주인공 3.1운동
10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회 서우진입니다 혜성 총감독님
모시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서혜성 감독님 나오셨습니다
반갑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제가 매료가 돼 가지고 완전 팬이 됐었거든요
그 이후로 제가 연락을 많이 드리고 했던 거 기억하시죠
근데 어떻게 저한테 그렇게 상처를 주십니까
왜 그러신 거예요 정말 나 깜짝 놀랐어요
제가 이렇게 많은 분들 앞에서 말씀드리기 죄송한데
어디 나오라는 데가 되게 많습니다 가끔 나가야 됩니다
왜냐하면 일정이 도저히 그렇게 되질 않아요
제가 이따가 소개하겠습니다만
서울시에서 하고 있는 사업이 행사를 포함하면
대개 100가지 정도 됩니다
서울시를 자주 가신다면서요
서울시청에 제 사무실이 11층에 있어서 가야 됩니다
사무실이 아예 있으시구나
그러니까 의무로는 제가 일주일에 하루만 가면 되는데
일주일에 8일 근무하고 있습니다
아 워낙 바쁘시군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아 부르는데도 너무 많고
그래서 제가 볼 때는
우리 방송 보다 훨씬 구석에 있는 방송인데도 나가시고
우리 방송은 안 나오시더라고
그 선별과정 시스템을 좀 정비할 필요가 있어
보이더라고요
그건 아니고요 뭐냐면
그 방송은 3.1운동을 하기 전부터 했던 거고요
그래서 이번에 끝냈습니다 3.1운동
100주년을 해야 되기 때문에
그런데 기왕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소개하실 때 3.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그랬는데
사실은 3.1운동
밑 하는 그 말이 사실 일본어식 어투입니다
밑이라는 말은 우리말인 건 맞는데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문서에다가 이제 뭐 뭐 밑 할 때
우리말로는 사실 정확하게 표현하면 과가 맞습니다
3.1운동 과 우리 정인 씨는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친일파? 아직도 친일파 보지 못했으니까
DNA가 이렇게 살아납니다
수시가 그렇게 맛있더라
혓바닥도 꼭 독립을 했으면 좋겠네요
일단 시작과 동시에 우리를 또 일깨워주셨고요
일단은 서울시 기념사업회 기념사업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저희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작가가 다 이렇게 써줬어요
어떻게 다 틀려 작가 여기 나오시라고
테이블 안에 비어있으니까
서울시 기념사업은 어떤 사업인가요?
음.. 3.1운동
100주년은 여러분 엄청난 사업이지 않습니까?
100주년의 의미를
옛날 거를 그대로 보여주려고 하는 게 아니고
오늘날의 가치로 재구성하고자 하는 게 중요한 목표입니다
그중에 몇 가지 방점이 있는데
첫 번째는 일상의 공간 속에서 3.1운동과 만나게 하자
일상의 공간 네 왜냐하면 그래서 이런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가령 기념비를 세운다든지 기념탑을 세운다든지
동상을 세운다든지 대막식 뭐 이런 거 안 하고
그런 거 그건 뭐냐면 너무 권위적인 거죠
사실은 대표적으로 예를 들자면
서울시가 크게 하고 있는 주력
사업 중에 하나가 안국역을 독립운동
테마역으로 바꾸는 거거든요
현재 1차 사업은 진행했고
여기 두 분만 부르시고 여기 계신 분은 다 아십니다
그런데 전체를 타면 한 칸당 문이 4개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한쪽에 40개, 저쪽에 40개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40개의 문에
우리 독립운동가들 80분의 얼굴
사진과 그분들이 남기신 말씀 이렇게 해놨죠
그런데 우리가 전국에 지하철,
메트로역이 960개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최초로 독립운동 테마역입니다
또 하나 길과 관련돼서 말씀드리면
서울시에서 올해 안에 포스
정류장 100개의 독립운동가 이름을 같이 쓰려고 합니다
우리 마을 사람이죠
우리 마을에 독립운동가 누가 있었나
그거 좋다 찾아봐야 되잖아요
포스 타고 내릴 때
다음은 공공약국 홍길동역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거죠
우리 최욱 씨도 열심히 하셔서
나중에 포스트
정거장 이름에 한번 들어가실 수 있도록 아
너무 좋은 아이디어인데요
그럼 이제 그 안내방송에도 역시 같이 나오고
안내방송에 나옵니다
그 다음에 이제 버스 표지판 거기에도 써 있고요
이름이 같이 써 있는 거군요
그리고 이제 포스트 타는데
눈높이쯤에 그 왜 이 정거장을 안중근 요구를 했냐
그 설명이 붙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그렇죠
여러분 안중근 의사가 서울에 어디 사셨는지 궁금하시죠
바로 그런 거거든요
안중근 의사가 서울에 사시지는 않았는데
서울에 자주 오셨어요 아
가톨릭 신도였기 때문에 명동성당에 아주 자주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명동성당 당시에는 종현성당이었는데
그러니까 가령
그 일대에다 안중근 역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기 여성분들 많으신데
반 정도를 여성독립운동가에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면
우리나라 현재
독립운동가를
국가보문체에서 인정하고 있는 사람이 15,180명이거든요
그런데 그중에 여성독립운동가가 302명입니다
말 돼요 안 돼요?
여성분들 중에 너무 힘이 없으시네요 말 돼요
안 돼요? 말 돼요
안 돼요? 말이 안 되죠 죄송한데 선동하지 마시고요
그런데 서울시에서 포스
정류장 이름에서라도
여성 독립운동가 들
이름을 더 많이 새겨드리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실은 제대로 된 평가다 라고 생각하는 거고요
안국역에 혹시 가보시면
그중에 한 가운데에는 여성
독립운동가 를 이름으로 가득 채워놨습니다
한 가운데는
그리고 그 옆에는 또 기생
독립운동가 들 이름을 많이 새겨놨습니다
기생 독립운동가
우리는 여성독립운동가 302명 중에서
기생독립운동가가 제일 많습니다 50명이에요
그분들은 주로 자금 조달이라든지
측면 지원을 많이 하신 거예요? 직접 하신 거예요 그래요?
여기 수원에서
가장 먼저 만세 시위를 하신 분들이 기생들이에요
독립운동가 누가 지식인이 먼저 한 게 아니고
그런데 정말 슬픈 얘기 하나 해드릴게요
수원 독립운동을 주도하신 분은 김향아 선생이신데
기생이십니다
기생인게 아니라 기생 신분으로 독립운동을 했지만
그분이 사실 뭡니까 독립운동가시죠
그러니까 우리가 선생이라고 부르는게 맞습니다
김양관 선생 같은 경우는 독립운동 이니까
그러면 독립운동 후손이라고 인정받으면 훈장도 나오고
뭐 이렇게 돈도 나오고 그러거든요
후손이 안 나타나세요 왜 그럴까요
기생 이시니까 후손이 안 나타나는 거예요 기생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독립운동을 하신 분이죠
우리가 아직도 이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죠
근데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기생이 이거보다
수십 배 더 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독립운동 기록하신
분들이 기생을 높이 기록해 주려고 그랬을까요?
솔직히 말해서
그냥 좀 덜 기록하려고 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겠죠?
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생에 참여했는가
한번 생각해 보시면 되겠죠
그러니까 우리 역사에서 그 기생에 대해서
우리는 뭐 예술한다, 문화한다
이렇게만 얘기하는데
저는 그분보다 훨씬 훌륭한 것은
기생들 다수가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하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거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그 기생분들이 독립운동에
참여를 많이 한 이유가 있습니까?
네 그 말씀 마저 드리겠습니다
그 기생들이 많이 참여한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어떤 혁명적 시기가 오면
가장 고통받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나옵니다
광장에 가장 많이 나옵니다
3.1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이 누구일 것 같으십니까?
여러분 3.1운동하면 누가 떠오르세요?
유관순 누나
유관순 누나가 떠올라 유관순 누나라고 하면 안 돼요
그건 남성 편견적인 얘기죠
10살 이렇게 하시면 안 돼요 미투 걸리시는 거예요
이렇게 은퇴하는 거 유관순 언니라고 하는 건 상관없어요
언니는 남녀 다 쓰는 말입니다
남자가 뭘 언니라고 합니까
언니라는 말은 순우리말의 형이란 뜻이에요
그 말 자체가 형이란 뜻이에요 임껍정 읽어보시면 나와요
사람들이 자기 동생들 부를 때
껍정이 언니 이렇게 불러요 원래 쓰던 말인데
이게 일제시대 무렵에 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여성들에게 쓰는 서울에서
서울이 원래 고향이신 분들은 형을 언니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아무튼
3.1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특성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한다면
사실은 3.1운동의 반 정도가 여성이 참여했다는 겁니다
실제로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냐면
사진으로 알 수 있습니다
3.1운동에 참여했던 시위대사진을 분석해보면
그중에 반 정도가 거의 여성이에요
이거 보십시오 3.1운동이 되기 전에
10대 소녀가 역사의 주인공인 적이 역사에
한 번이라도 있었어요? 없었어요? 3.1운동이 처음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유관순이 유명해진 거예요
그중에 유관순 한 명이 아니라
그 여성 모두를 대표해서 유명해진 거예요
3.1운동에 최대 2대 스타가 있습니다
스타로 표현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편하게 말하려고 그러는 건데 두 분이 있는데
남쪽의 유관순 유관순이 아닙니다 유관순입니다
그리고 유관순이고 북쪽의 동풍신 두 분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북쪽에서도
여성들이 훨씬 더 유명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동풍신? 동풍신 동풍신 처음 들어봐요 처음 들어보시죠
그러니까 동풍신이요? 네 그런데 왜 그렇게 됐냐면
이게 휴전선이 갈리면서
북쪽에서 3.1운동을 한 것을 묻혀버렸어요
3월 1일 날
동시에 시위를 했던 도시는 7개 도시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사실은 382남에는 서울밖에 없어요
당일날 시위를 많이 했던 것은 주로 북쪽이었어요
천안 아원회장권 의견 안 그건 4월 1일에 한 거예요
4월 1일이잖아 4월 1일이잖아
넌 가만히 있어 언니! 진짜 왜 그래
언니 넌 이틀이야 인마 4월 1일이잖아
언니 언니! 사실 언니란 말 살렸으면 좋겠어요
순우리말이고 좋은 말이니까 또 말이 따뜻하잖아요
그 말이 언니란 말 살려서 썼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3.1운동의 가장 중요한 특성을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여성들의 대거 진출
오늘날 우리가 말하고 있는 모든 페미니즘에
가장 기초가 된 일이다 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런데 어떻다고요
바로 우리 민족의 광복을 되찾기 위해서
여성들이 정말 나섰다
여학생만 나선 게 아니라 귀생들도 그렇게 많이 나섰다
그리고 아주머니들 도 많이 나설 수 있어요
실제로 요 그런 점에서 3.1운동은 다른 한편
여성이 정말
역사의 중심에 섰던 날이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 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독립운동 할 때 무장투쟁
총 쏘고 그랬잖아요
그러면 그럴 때 의사나 간호사가 있었을까요 있죠
주로 여성들이었어요
그런데 그런 분들은 마치 보조적인 역할인 것처럼
돼서 기록이 안 된 거예요
실제로 청산리 전투에 우리나라 독립운동하신 아주머니,
굳이 말하면
연령으로 치면 그런 분들이 가서 부상자들 치료해주고
그러셨어요
그런데 이름이 안 남은 거예요
그 말 무슨 얘긴지 아시죠?
그런 것들은 마치 독립운동이 아닌 것처럼
남성들 중심으로 역사를 기록해 봤기 때문이에요
100년 맞아서 그 여성들을 복원해 드리고 싶은데
그중에서도 버스정류장으로 버스정류장 근처에 가면 야
우리 동네 여기 유관순 누나가 여기 지나갔대
그래서 지나간 자리만 찾아 가지고
다 기록을 남겨 놓으려고
기록이 좀 그래도 많이 남아 있는 모양이에요
찾고 있습니다
서울시에서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감독이 하는 일이 그런 겁니다
옛날 신문들 뭐 이런 건가요 그렇죠
신문들 또 증언들
우리 선생님 보니까 굉장히 그 여성
인기영합주의로 지금 가는 건 아닌가
사실 3.1운동 가는데
자꾸 뭐 젠더 이슈로 이렇게 확장시켜 가지고
이렇게 딱 들어오시면서 여자가 많아 그쪽으로 틀어야겠다
딱 하시더라고 빠르셔 그런 측면이 좀 있죠?
그런데 이건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15,000대 300이라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건 말이 안 된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조금 생각해 보자
저는 적극적으로 생각하는데
제가 아무리 열심히 생각해도 지금까지 기록한 거
또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그것에 너무 사실 빈약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리가 고작 유관순
운동도 알고 있어도 되겠느냐는 겁니다
훨씬 더 많은 분들이 실제로 참여했고
그런 분들을 우리가 기억해야죠
3.1운동이 정말 중요한 건데요
세 가지 점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세 가지 의미의 이건 제가 받아 적겠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 역사에서 있었던 일에 많은 변화가 있었죠
그런데 여러분 세계에서 가장 정치
권력의 교체가 없었던 나라가 있습니다
딱 세 분만 교체된 나라가 있었습니다
2000년 동안 그게 한국입니다
그게 한국이에요?
중국은 그 사이에 수백 번 바뀌었습니다 보세요
여러분 신라가 한번 통일하고 나서 뭐가 남았죠?
바로 바뀐 나라가 고려예요 그렇죠 고려하고
그 다음 조선이고
그리고 일제에 의해서 망한 거 이게 다예요
여러분 외국 서양 역사 한번 찾아보세요
머리가 너무 아파서 찾아볼 수가 없죠
한국사 공부가 어렵다고 그러시면 안 됩니다
우리는 정치 권리 교체가 대표적으로 없는 나라였어요
세계에서 가장 없는 나라예요
단연 가장 없는 나라
이렇게 안 바뀐 나라는 없습니다
한국이 유일한 나라입니다
이렇게 역사가 기록된 나라들 중에서 그런데
그 말씀을 제가 드리는 이유는
한국사를 이해하기 쉽다는 겁니다
세 번 변화가 그런데 뭐였죠? 다 왕조에 교체했죠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왕조에 교체했죠
그런데 3.1운동은 뭐냐면 근본적으로 나라를 바꾼 겁니다
3.1운동이 결과로 탄생한 게 뭔가요?
1919년 4월 11일에 탄생한 게 대한민국입니다
왕국에서 뭐가 됐다고요?
민국이 됐어요
여러분 왕국은 뭐냐면 왕이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소유권자가 왕이에요
국가의 소유권자가 그런데
민국은 주인이 누구죠? 민이에요 민
엄청난 변화가 온 거예요
그러니까 2000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1이다
이렇게 제가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나 정치적 성격 변화는 가장 크다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세 가지 점에서 중요한데
하나는 시간의 건국입니다
시간을 새롭게 세운 일이에요 그 전까지는 왕조시대였죠
드디어 민국의 시대를 연 겁니다
민국의 시대를 엄청난 변화죠
또 하나는 공간의 근국입니다
공간은 뭐냐면
그 전까지는 전라좌도 경상좌도 그럼 어디를 얘기하냐면요
동쪽을 얘기하는 겁니다
여러분 좌측이 동쪽이에요 서쪽이에요?
우리가 우리 기준으로 하면? 서쪽입니다 서쪽이죠
예 맞아요
근데 왕이 서울에 계시기 때문에
서울에서 남쪽을 보고 앉아있게 돼 있거든요
왕은요 그러니까 좌도가 동적인 거예요
말이 안 되잖아요
민국이 되었기 때문에 왕토에서 국토로 바뀐 겁니다
그리고 그전에는 우리가 뭐였죠 백성이었죠
백성에서 뭐가 됐나요
국민 혹은 시민이 된 거예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거죠
그러니까 3.1운동은 세 가지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3.1운동이 우리나라 인구 10분
1일이 넘는 사람이 만세 시기에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10분의 1이라고 하기보다는
더 많이 상가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여러분
우리나라 현재
행정자치구가 대개 300여 개 정도 되거든요
그런데 그 당시
우리나라 3.1운동이 1500군데에서 일어났어요
여러분 1500군데에서 일어났다고 그때 여러분 핸드폰
카카오톡 삐삐 아무것도 없죠 1500군데에서 일어났어요
그것도 3,
4, 5월에만 지금 얘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참가한 인원이 200만 명이에요
여러분 200만
아니면 지금 2000만 정도 참여한 거예요 말하자면요
엄청난 숫자가 참여한 거예요
그거 여러분 생각하셔야 돼요
여러분 왜 대한민국이 탄생했냐면요
그때 지식인들이 똑똑한 사람들이 보니까
이건 이제 더 이상 몇몇이 지배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닌
거예요
여러분 내 나라니까 사람들이 나가서 싸운 거죠
그래 안 그래요
여러분 한국인이 한국 정치
권력에 불만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이요
왜 그런지 아세요?
일본인은 자기 정치 권력에 대해서 불만이 없어요
가만히 있어요 그냥요 여러분
일본에서 핵발전소 터졌을 때
일본에 시위 두 분밖에 없었어요
한국에 있으면 어떻게 됐을 것 같으세요?
세월호 대모 몇 번 장관하셨어요 여러분
그렇죠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한국인들은 불만이 정말 많은 사람들이에요 왜 그러냐
이게 내 나라이기 때문이에요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이 만들었거든요
진짜로요 한국은 여러분 보세요 제가 다 계산해 봤거든요
정확하게 동학혁명
1894년에서부터 촛불집회까지
2.78년에 한 번씩 전국적 봉기를 했어요
여러분 기억해보세요
여러분 생애에만 있었던 전국적 시위가 많았어요?
안 많았어요? 그렇죠 우리는 너무 익숙하죠
세계에서 그런 일이 없습니다
프랑스에서 대혁명이 일어나고
100년 동안 일어났던 민중의 참여보다도
한국 사람이 훨씬 더 비중이 높아요 여러분
우리 정치 권력 누가 바꿨죠?
대통령이 바꾼 적 한 번도 없습니다
4.19 일어나서 독재를 다 더했죠
또 시민이 일어나가지고
독재를 바꾼 게 유월항쟁이죠 촛불집회를 또 바꿨죠
가장 결정적 순간에 대부분은 한국인이 스스로 바꿨어요
그 뿌리가 뭐냐고요
3.1운동입니다 3.1운동에서 경험을 해본 거예요
그리고 대한민국을 만들어봤어요 대한민국 여러분
임시정부 지도자들이 만든 거 아닙니다
그 이름은 수많은 사람들이 3.1운동을 참여했고
그걸 보고 사람들이 안 거예요
이제 더 이상 왕국 이런 거 안 된다
이건 무조건 민국이다 라고 본 거예요
그래서 민국이 탄생한 거예요 여러분 그 후배예요
우리가 그래서 우리가 다 촛불집회 한 거고
정말 누구를 지지하게 해서 촛불집회를 한 게 아니라
적당하지 않고
정말 부족한 정권은 유지하지 않는 게 좋다라고 생각하고
탄핵을 해서 정치고를 바꾼 거죠
여러분 그 선배들은 3.1운동
선배들에게 박수 한 번 불러주세요
사회자가 필요 없는 것
같지 않으세요
여러분 근데? 죄송한데
3.1운동 세 글자로
세 가지 의의를 간략하게 다시
제가 이걸 적으려고 펜을 들고 있는데
시간을 못 적었어 이거는 정말 세 가지 딱 좋으십니다
서울시의 공식 모토입니다
시간의 건국 시간을 새로 세웠다 이거죠
시간의 건국 공간의 건국
인간의 건국 백성에서 시민이 된 일 민주주의가 되었다
줄여 말하면요 민국에 살게 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아까 그 뭐 200만 명?
뭐 이렇게 참가할 수 있는 게 아까
잠깐 말씀하셨습니다만 진짜 뭐 통신 기계 하나도 없는데
그럼 그 전에 다 3월 1일날
하자는 이야기들을 뭐 말에서 말로
아니면 뭐 몰래 무슨 편지를 쓰든지
이렇게 해서 다 전달을 했다는 거예요
그만큼 정말 중요한 질문을 하셨어요
최국 씨를 밀어내기 생기는데
좀 있으면 이제 중요한 질문을 하셨어요 뭐냐면 여러분들
실제로는 김희동 선임을 두 번 인쇄합니다
먼저 인쇄를 했어요
그래서 전국으로 먼저 보냈습니다
근데 다 보냈어요 사람들이 가지고 가기도 하고
정말 재미있게도 그냥 서울역에서 붙였습니다
수화물로 발각이 안 됩니까?
그게?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3월 1일까지 일본인이 정말로 몰랐습니다
근데 그 전에 수천 명이 알고 있었어요
여러분 수십만 명이 참가하려면 수천 명이 알아야지
시위에 나오라고
그러죠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이게 기적입니다
이상하게도
그런데 놀라울 정도로 비밀이 전혀 누절되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그날 학생들 모임할 10개 학교에 참가했거든요
10개 학교 학생들이 다 모였습니다
대표들이 그러다 다시 학년 대표가 모였고
다시 반 대표가 모였어요
여러분 지금도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렇게 다 모여서 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았어요
왜 그랬을까요?
여러분 독립된 나라에 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정말 가슴 뜨거운 얘기예요 이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은 것은
독립된 나라에 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정말 거짓말처럼 비밀을 지킨 거예요
여러분 그런 선배들을 정말 존중해야 됩니다
그래가지고 서울역 같은 데 다 붙였어요
전국에 다 도착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날 만세 부른다는 거 알아요 몰라요
그러니까 알고 있었습니다
유인물이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금방 알 수 있냐면요
처음 찍은 인쇄물이 5등은 자해야 조선의 독립국인가
조선인의 자조미임을 선언하노라 이렇게 돼 있잖아요
김정일 선임 첫 줄이 그런데 오타가 났어요
5등은 자해와
손조의 독립구인과 조선의 글자가 뒤집힌 거예요
그래서 처음 돌아갔던 걸 금방 알 수 있어요
처음 첫 번째 인쇄물
그리고 두 번째 인쇄물은 27일 밤에 찍었습니다
밤 10시경에 서울에서 써야 될 거 물 좀 마시겠습니다
되게 물도 마시고 하라고 진행자가 그런 말 하고
그러던데
물틈도 안 주면서 알아서 워낙 잘 드세요
저분이 2월 27일
밤에 찍은 정말 여기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분은 여러분 기억해 주셔야 돼요
제가 이분이라고 그러잖아요
종로경찰서에 있는 신철이라는 고등계 형사
지금 말하면 정복과 형사입니다
정복과 형사가 지금 정확하게 조계사라는 절이 있잖아요
조계사 대웅전 앞에가 보성사라는 인쇄소
보성고등학교 안에 있는 인쇄소에 있습니다
무슨 고등학교에 인쇄소가 있냐고요
옛날에는 여러분
교과서를 학교별로 따로따로 찍었던 그 역사가 있습니다
아직 총독부가 다 통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 책을 거기서 찍는 인쇄소가 있었습니다
그 인쇄소 이름이 보정사예요
대웅전 마당 그 자리가 바로 인쇄소 자리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종로경찰서
종복과 형사가 와서 한국인이에요
독립운동가 잡아서 고문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에요
이름이 신철입니다
이분이 와가지고 독립운동... 설을 잡았어요
이렇게요 잡힌 거죠
이제 3.1 독립선언 끝났죠 이해가시죠
무슨 얘기인지 선언서를 잡혔다니까요
선언서를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그래서 이종일 선생님 33인 중에 한 분이십니다
이분이 인쇄소 사장이셨어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빌었어요
빌면서 손병희 선생님에게 의암 선생님에게 갑시다
그때는 손병희 옛날 어른들 호를 부르시잖아요
의암 선생님에게 갑시다 그랬더니
당신이 가시오 그런 거예요
그래서 절망했죠
그리고 손병현 선생님들한테 가서 사정을 말씀드렸어요
다시 와서 설득했어요 그래가지고
이분이 그거를 정말
3월 1일 될 때까지 이틀밖에 안 남았잖아요
조마조마하고 있는데 이 양반이 2월 28일 날
종로경찰서에 출장계를 내고 신우주로 갔습니다
출장계가 뭐였냐면
그 당시에는 안동이라고
그러고 지금은 단동이라고 그러는데
안동에서 만세하는
사람들이 신우주로 들어온다는 소문이 있다
그 정보를 내가 얻으러 간다
이렇게 말을 한 거예요 뭐야 거짓말을 한 거죠
그리고 신우지로 도망갔어요
근데 일본 군인한테 잡혔습니다
헌병에게 설이 두 가지가 있는데
기차에서 죽었다는 설이 있고
용산까지 와서 그 청산가리 시아나 나트륨 복약을 먹고
하여튼 자살했습니다
근데 자살하는 동안까지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습니다
그 친일파죠
독립운동가를 20명씩 잡아들인 이 사람이
그 말을 하지 않고 죽었습니다
그러므로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보호해
준 거예요 이 사람은 역사에 침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독립운동을 하지는 않았으나
훈장을 줄 수는 없죠
그러나 그 비밀을 누설하지 않음으로써 오늘
우리 3.1운동이 가능케 했던 그런 분이시죠
그러니까 같이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걱정
말아요 이 방송을 통해서 같이 기억했으면 좋겠고
그리고 여기에
또 일본인들은 일본 경찰은 한국인의 돈을 받고
그렇게 했다 라고 주장하고 있고
우리 독립운동가들은 돈을 준다고 그랬는데
안 가지고 갔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쵸 한국인
마치 돈에 매수 되어서 하는 것처럼 매장하려고
그러는 거고
우리 독립운동가들은 설령 돈을 가져갔다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 안 하시고
이분들을 좁게 높이 평가해 주려고 그러는 거죠
그쵸 우리는 뭐라고 그래야겠습니까
돈 안 받은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말해야 되겠죠
신철 선생일 수는 없지만
제가 그분이라고 꼭 불러드리고 싶습니다
그래가지고 걸리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대략
12시에서 1시 사이에 인쇄가 다 끝났습니다
성주의 씨 여기 계신 분 그때 어떻게 찍었냐면요
그냥 이게 3.1운동
김의당 독립선언문만 인쇄하면 안 되니까
성주의 씨 족보를 같이 인쇄했습니다
왜요? 안 걸리려고 혹시 걸리더라도 지금 뭐 하냐
그러면 성주의 씨 족보를 찍고 있습니다
이러려고 그래가지고
성주의 씨 족보를 찍는 사이사이에 독립운동
이걸 모르게 찍은 거예요
그 안에서도 이해가시죠
무슨 얘기인지 성주의 씨 있으면 제가 절하려고 했는데
아무도 안 나타나시네
여긴 좋은 가문은 한 명도 없습니다
좋은 가문 그래가지고 성주의 씨 족보를 찍어가지고
그 이제 이렇게 손수레의 식곡
지금이 이제 천도교
대교당이 있는 경운동으로 오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어디냐면
운영군 건너편에 있는 그리 오고 있었는데
대략 거리가 그러니까 운반하는 거리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한 500M 정도가 안되는데
손수레 씻고 오고 있었어요
독립선언서 밑에 깔고
위에 송주희 씨 족보를 덮어놓고 있었어요
근데 그게 거기 있는 파출소에 걸렸어요
왜 자꾸 걸려
그러니까 제가 얘기하는 거야 안 걸린 게 기적이라고요
어떻게 됐어 그건 근데 이건 일본인이었어요 아
이건 끝이지 뭐 끝이죠
아 끝이야 맞아 끝났죠 3.1운동은 못해
그래서 그 사람이 그 파출소
앞에 있는 가로등이 있었어요
그 가로등 앞에 끌고 가서 족보를 이렇게 드러낸 거예요
하나씩 다 살펴본 거예요
그런데 무슨 거짓말처럼
독립선언서가 막 나오려고 하는 찰나에
정전이 돼 버렸어요
아 영화 같네 약간 이 순사가 꿈이신 거 아니에요?
거짓말 아니에요 이 방송 나가면 수백만이 듣는 방송인데
제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러니까 그 당시에 우리말이 경찰이고
순사가 이제 등을
그때는 랜턴이 없었어요 등을 가지러 들어간 거예요
그러니까 그 위에 있는 간부가 야
그만해라 큐션케 보내라 불도 꺼졌는데
그런 거예요 죄송한데 영화 본 이야기 하시는 거 아니죠?
영화 감독 여러분들
영화 감독 여러분들 이 방송 들으시면 말씀드리고 싶어요
영화 감독하신 분들
이런 얘기를 몰라서 재미있게 못 만드는 거예요
이게 팩트예요 팩트예요 네 이게 팩트예요
진짜로 그러면 아까
기적이라는 단어를 괜히 쓴 게 아니네요
정말 기적이에요
그러니까 그래 가지고 이제 가져 오니까
그때 겨울이잖아요
그죠 우리가 3월 1일 말이 봄이지 겨울이잖아요
그 운반하는 사람이 세 사람이 있는데
세 사람이 기록이 나와 있어요 온통 땀에 젖은 거예요
그 순간 걸리면 끝이잖아요
그런 생각을 여러분 독립운동사
관념적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디테일을 알면 너무 재밌어요 실제로요
그러니까 그렇게 하신 거죠
그래가지고 그때
이제 천도교 대교당이 그 당시에 공사를 하고 있었어요
공사를 하고 있는데
그 돈 인쇄물 이 비용 다 어디서 나온 거냐면요
대교당을 짓는다고 돈을 먼저 모은 거예요
여러분 독립운동 한다고 돈 모을 수 있겠어
없겠어요 모을 수가 없죠
천도교 그 대교당을 짓는다고 해서
그 돈을 모아가지고
대교당 짓는 비용의 상담부를 헐어가지고
이런 작업을 한 거죠
작업을 해가지고
그 공사하는 움막 같은
거기에다가 이 문서를 이제 보관해 놨던 거죠
이종일 선생님 댁인데 보관해 놨다가
이제 그 다음날
아침부터 이제 독립운동 선언서를 배포했던 거죠
그리고 또 하나 재밌는 게 그래가지고
이제 독립운동 선언서가 여러분
아시다시피 탑골공원에서 했잖아요
그죠 그 태화관이라고 하는 흔히 말하는 정확한 명칭은
태화관이 아니고
명월관 인사동 지점입니다
근데 거기에 태아정이라는 정자가 있어가지고
옛날에 있었기 때문에
그걸 태아관이라고 흔히 부르는 거예요
지금 인사동에 있습니다 여러분 가실 수 있어요
이제 올해 8월 25일 날
거기 삼삼광장을 이렇게 만듭니다
3.1운동 독립선언광장을 그것을 만들기 때문에
여러분 가셔서 차도 마실 수 있고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그런 광장이 생깁니다
당연히 서울시에 사고 있는 사업입니다
그러니까 그곳으로
33인이 정확하게 29인이 네 분 안 오셨어요
한 분은 중국으로 가서 중국이 알리위에서 떠나셨고
그 전날 세 분은 차가 지금처럼 편치가 않아가지고
서울에 도착을 못했어요
그래서 29인이 낭독을 이렇게 하셨잖아요
아시다시피 그리고 사실은 그분들은 안 가셨어요
탑골공원에 그때는 이름이 탑동공원이었는데
탑골공원에 가지를 않으셨어요
원래는 12시에 가기로 했는데
학생대표가 왔어요
그래서 강기덕
김원벽이라고 하는 등 학생대표들이 와가지고
선생님 이렇게 안 오시면 어떡합니까
12시에 오기로 하셨는데
그런 거죠
그런데 그 전날 28일 날
저녁에 손병인 선생님 댁에서 지금 가이동
동사무소가 손병인 선생님 집자리거든요
그런데 거기에서 이분이 말씀을 하신 거예요
우리는 내일 대중 집회 가지 말자
손병인 선생님이 얘기하신 거예요 겁나세요? 그렇죠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번에 제가 해명해 드리고 싶어요
정말 좋은 질문을 하셨어요
그래서 괜히 욕하는 사람
인터넷 보면 많거든요 그거 오해하시는 겁니다
그 십 몇 년 전에
손병희 선생이 전봉준
장군과 더불어서 동학군을 이끌었던 책임자예요
호남 동학군을 이끌었던 사람은 전봉준
충청도 동학군을 이끌었던 분은 손병희 선생이세요
그래서 우금치 전투에 참가했던 구토
세력이 전봉준을 이끌었던 세력을 남접이라고 부르고
손병희 선생이 이끌었던 걸 북접이라고 그래요
여러분 아시다시피
10만 명 가까운 사람이 그때 죽었습니다
동학군 농민 분들이시죠
손병희 선생이 당신의 이름 아래
수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자기가 책임이었잖아요
여러분 끔찍하겠어요? 안 했겠어요?
여러분이 지도자라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세월호 했을 때 교감 선생님은 어떻게 되셨어요?
돌아가셨잖아요 사셨는데 돌아가셨잖아요
여러분 책임자가 되면 그렇게 무서운 거예요
생명이 떠나가면
그러니까 손병희 선생이
또 이게 유혈충돌로 갈까 봐 너무 걱정하신 거예요
해봤잖아요 낫 들고 총 들고 싸워봤잖아요
너무 많은 사람이 죽은 거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든 유혈 충돌을 막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안 가셨어요 어른들이 근데 여러분
정말 재밌는 일이 벌어진 거예요
직선 거리를 200M예요
태화관에서 탑골공원까지 걸어가면 300M 거립니다
안 가셨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되죠?
거기 남아있는 사람들이 학생들이잖아요
평균 연령 18세 정도 되는 거였어요
18세 정도 되는 왜냐면
중고등학생, 그 당시는 중학교라고 그랬는데
중고등학생 그리고 전문학교
그러니까 연희전문 보송전문
이런 데 다니는 대략
연령이 18세 정도 된다고 봐야 돼요
여러분 20세기에
한국에 큰 변화가 있을 때마다 누가 주로 참가했죠?
학생들이에요
그래서 갑자기 학생들이 주인공이 돼 버린 거예요
학생이 주인공
만약에 그때 어른들이 와서 거기 와서
선언서를 낭독했으면
학생이 역사의 주인공이 안 됐을 거예요
그럼 어른들이 됐을 거예요
청년 학생이 세계의 주인이 됐던 게
어른들이 안 오므로서
어쩔 수 없이
학생들이 학생들이 재밌게도 플랜 B를 계산하지 않았어요
12시에 어른들이 안 오니까
학생들이 할 게 없어져 버린 거예요
그래서 1시 반까지 어떻게 하지? 이렇게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일단 모이자 그렇게 해가지고
1시 반에 인사동 주변에 학생들이 숨어 있었거든요
지시를 받고 탑골공원 북문으로 들어왔어요
거기 가면 이제 10층 석탑 있잖아요
10층 석탑 주변에 그냥 모여 있었어요
근데 누가 지시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왜냐면 플랜 B가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학생들이 논의 끝에 결정을 한 거예요
이제 우리가 의사결정을 하자
이게 역사적인 순간이에요
청년들이 한국사회의 주인공이 된 이유예요
그 이후에 수많은
모든 일에서는 다 청년학생의 주인공이 된 이유예요
그래가지고 이제 했는데
대표자를 낭독할 대표자를 선정을 안 한 거예요
사실 대표 누가 낭독할 사람이 따로 정해있지 않았어요
근데 그때 실은 학생대표가 낭독해 있다
이렇게 돼 있는데 그렇지 않았고
사실은 그때
33살 먹은 해주의 전도사가 거기 와 있었어요
근데 이분이 그 전날
어떻게 해서 독립선언서 하나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고 이분이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주머니 안에서 이렇게 독립선언서를 끄집어낸 거예요
그러니까 대부분 요즘 말로 하면 고등학생 나이들이냐
옆에 있는 분들이 이렇게 선언서를 끄집어내니까
사람들이 아
그럼 형님이 한번 해보시라고 말하자면
체육 같은 사람한테 올라가서 가서
장님이 한번 해보시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린 학생들이니까
자기들이 하기가 좀 민망할 것 같고
그러니까 이 양반이 얼결에 그 팔각정으로 올라간 거예요
얼결에 그리고는 그걸 가서 읽으신 거예요 읽어가지고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당시에는 정식 명칭이 김희동의 선언문이 아닙니다
선언서입니다
선언서 이름이 그냥
그래서 이분이 앞에 네 글자를 붙인 거예요
조선독립선언서라고 읽은 거죠
그럼 학생들이 막 울부짖었다고 그래요
왜 그러냐면
여러분 그 학생들은 나라가
대한제국이 일본에게 넘어갈 적에 어린 학생이었거나
그때 알고 있었어요 우리하고 달라요
무슨 얘기인지 아시죠?
9년 전에 망했으니까
나라가 망했다는 표현을 쓰고 싶지 않은데
국권을 이뤘을 적이 9년 전이었기 때문에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딱 이렇게 됐잖아요
5등은 자의야 조선의 독립국인가?
독립국인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느라
그러니까 막 그 첫 줄을 읽었을 때 눈물을 흘리고
모자를 집어 던지고
막 통곡하듯이 땅을 울리고 이렇게 했던 거죠
그러고는 그 학생들이 이제 탑골공원
지금 3.1문이라고 돼 있는 남문을 나와가지고
종각 앞에서 수많은 이제
그 사람들이 같이 거기서 같이 섞였습니다
그때 최초의 사진이 거기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교보문고 앞에 있는 비각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죠 고종황제 취임
40주년 기념으로 세운 친경비각인데
공식 명칭은 친경비각 앞에
수많은 사람이 거기서
모인 걸 어떤 사람이 찍은 사진이 있어요
그 사진이 있고
거기서 좌회전을 해 가지고
덕수궁 앞으로 가서 절을 세 번 했습니다
왕에게는 왕이 돌아가시면 절을 세 번 합니다
그러니까 세 번 하고
그리고는 지금 서울광장 여러분
서울광장이 그때부터 중요한 공간이었어요
서울광장에서 만세 시위를 하고
주력 세력이 지금 한국은행 그 당시에는 조선은행이었는데
한국은행 앞으로 진출했죠
거기서 일본 기마대하고 처음으로 맞버딛혔죠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진출했냐면요
그때 조선총독부가 남산에 있었습니다
지금 남산 서울 애니메이션센터가 조선총독부 자리였습니다
거기에 가서 너희들 물러가라
이제 조선은 독립되었다 라고 말하려고 가고 있었어요
일본 경찰이 와가지고
기마 경찰이 와가지고 그걸 제지한 거죠
그 제지선을 4번을 뚫었습니다
시위대가 4번을 돌파하고
일본 경찰이 공격이 칼을 휘둘렀어요
그래서 칼로 상처를 입고 그랬는데
그 경찰은 어디서 나왔냐면
지금 필동에 가면 남산 한옥마을
그게 바로 당시에 일본 헌병대가 거기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 말을 타고
이렇게 시위를 지나 바로 나왔던 것이죠
그런데 강연이 되고 있네요
네 좀 느끼는 게 없니? 아 감동이다
진짜 좀 느껴라 아 진짜 감동 아니에요? 그분들이 18,
19이었습니다
부끄럽네요 동풍 씨는 16살이었습니다 아우 대단합니다
그리고 사실 복립운동가라고
우리가 기록을 못한 것들이 많은데
지금의 초등학생 당시
국민학생들이 칼에 찌를 쥐었다는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초등학생들도 정말 8살,
9살, 10살 먹은 학생들도 나와서 시위를 같이 했습니다
그리고 만세를 부르면서 죽어갔습니다
사실 제가 감독을 하고 있는데
그 생각하면 목이 메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나라 없는 슬픔이 뭔
우리가 나라가 있기 때문에 모르는 거예요
독립운동가들이 꿈꾼 세계가 뭐냐고요
수많은 사람이 저한테 그런 물어보거든요
여러분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한일전 축구할 때 일본 마음껏 미워할 수 있는 자유
우리끼리 한국말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 여러분
그거에 의해서 싸운 거예요
여러분 3.1운동은 일본으로 얘기하면 불법 집회였습니다
일본이 공식적으로 한국을 지배한 게 34년 11개월
보름 동안 지배했습니다
그동안 5개 집회를 단 한 번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도 허용하지 않았다고요
그런데 그 나라
일본이 우리를 근대화시켰다고 말하는
새로운 친일파들이 있죠 현재 친일파들이 나쁜 사람들이죠
집회 시위 허가가 단 한 번도 없었다고요
33년 11개월 보름 동안요 출판의 자유도 없었고요
그걸 여러분
만세운동 그냥 사람이 많이 했으니까
했다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정말 목숨 걸고 한 겁니다
더 자랑스럽게 생각하셔야 될 게 있습니다
그건 뭐냐면
그 당시에 3.1운동에 참가한 많은 한국인들은
당시 세계사적 흐름과 동행했다는 겁니다
그게 뭐죠? 바로 평화입니다 그렇죠
여러분 평화죠
3.1운동에 내세운 가장 중요한 모토가 뭡니까?
비폭력 평화 시위예요 그렇죠 여러분
그 정신이 3년 전에 있었던 여러분 뭐예요?
촛불 집회죠 비폭력 평화 시위였잖아요
그러니까 성공했잖아요
여러분 비폭력
평화 시위가 여러분
힘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바보 같은 얘기예요
여러분 그 당시에
전 세계가 내세운 모토 중에서
가장 큰 모토가 평화였습니다 1차 대전이 끝나고
그 세계적 조류에서 한 걸음도 뒤 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한국인들이 그러니까
일본인들이 얼마든지 우리가 능멸할 수 있는 거죠
우리가 그렇게 평화
지금 21세기 가장 중요한 모토
한 가지를 얘기하면 뭘까요
평화죠 전 인류가 공유할 수 있는 그것을 얘기하면
우리가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하자는 것도 뭡니까
바로 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수많은 서양 사람들은 말로만 했지만
우리는 실제로
그 평화를 행동으로
실천으로 이루고자 했던 것이
한국인들이 가장 대중적으로 나섰다
그리고 세계의 중심이었다
한국이 변방이 아니라
비록 19년도에 독립을 하지 못했지만
그 힘으로 우리가 대한민국 이집트 정부도 만들었고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 도 만든 것이고 그렇죠
우리는 그러니까 3.1운동의 후손이죠
3.1혁명이라고 부르든 3.1운동이라고 부르든
그건 생각에 따라 조금 다를 수 있겠습니다마는
그 후손이고
그리고 그냥 후손이 아니고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하셔야 돼요
그 백년을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에 뜨거운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숙연해지네요 네 정현진 씨 질문하세요 질문 좀 하세요
뭘 알아야 질문하시고
그래서 이제 서울시에서 뭐 하는지 여쭤보고 싶은데
여쭤봤다가 또 30분 갈까 봐
제가 너무 걱정돼서 여쭤보지 못하겠어요
하고 있는 일 제가 너무 죄송한데
제가 선약이 있어서 빨리 가봐야 되니까
짧게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크게 보면 세 가지 있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좋은 공간을 많이 만듭니다
아까 소개했던 두 가지를 포함해서
시민들이 일상적인 공간에서 저절로
독립운동 역사가 만날 수 있는 아까 안국력 말씀드렸고
그리고 또 길도 만듭니다 3.1대로도 만들고
나라가 국치를 당했던 것을 국칙길도 만들고
선언서를 읽었던
그 길을 따라서 갈 수 있는 선언서의 길도 만들고
국칙길은 어디입니까? 남산입니다
남산이 국칙길입니까?
남산 서울시 중구 예정동
2-1번지에서 1910년 8월
22일 오후 3시에 문서에 조약했습니다
우리가 마지막 문서
이른바 일본말로 합방문서
우리는 합방이라고 그러면 안 됩니다
병탄 일제가 우리를 병탄한 문서에
대한제국의 마지막 조향문이었죠
그리고 남산 꼭대기는 일본의 신을 모신 아마타라스
오미카미하고
메이지 라고 하는 신을 모신 신궁
조선신궁이 거기 있었는데
거기를 연결하는 그 길이 국치길 이런 것도 만들고
제가 이제 국치일에 태어났습니다
맞아요 국치일에 태어났어요
8월 29일 발표한 날이 8월 29일이에요
그러니까 애국자가 되신 거예요 그렇습니다
생일이 언제세요? 10월 25일입니다
자칫하면 12일이 태어날 뻔했다
그냥 10월 26일이라 하지
그랬어 거의 밤늦게라 거의 10월 26일이에요
10월 26일에 태어났으면
안중근 의사가 이또를 저격한 날이 아이고
그래요 자칫하면 근데 안중근 편이 될지
이또 편이 될지 알 수가 없는 거죠
아 알겠습니다 국치길도 만들고
그리고 이제 많은 행사가 있습니다
내일 모레 2월 1일 날이 대한독립선언 선언일입니다
최초의 독립선언입니다 2월 1일이 100주년입니다
228독립선언도 100주년입니다
3.1 독립선언도 100주년입니다
우리 국회를 만든 것도 100주년입니다 4월 10일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100주년입니다 9월 11일 날
상하이 임시정부
노령에 있는 러시아에 있었던 대한국민의회
그리고 한성에 있었던 한성
임시정부를 통합해서 새로운 정부로
출범한 날이 9월 11일 그것도 100주년입니다
그러니까 그 100주년을 중심으로
서울시는 많은 행사가 있습니다 수십 개 행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4월 11일날도
여의도에 가면 C-47 비행기가 있는데
우리 광복군이 도착했던 자리입니다
거기서 큰 콘서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가수들도 오고
그러니까 여러분 같이 오셔서 노래도 부르시고
이야기도 같이 나누고
할 수 있는 그런 자리가 많이 있습니다
여기 뭐 그 체육 종영진만 하지 마시고
거기다 좀 오시고 그러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올해 엄청 바쁘시겠네 우리 감독님 대단하시네요
정말 이분에게도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서해선 교수님입니다
아 근데 교수님은 야
그 마치 당시에 같이 독립운동 하시는 분처럼
마치 자기 일처럼 막 이렇게 얘기를 하시는 게 아
그게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어쨌든 뭐 문서를 통해서도 뭐 그렇게 만났을 이야기인데
마치 그 본인이 그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와 그 그려지네요
제가 그런 혐의를 많이 받습니다 너 1919년에 살았냐?
이런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역사를 그렇게 느끼는 게 좋습니다
여러분 제가 가끔 강연하거나 재밌게 이렇게 말하거든요
우리나라 최초의 브로마이드가 누구였는지 아세요?
브로마이드가 뭔지 아시죠? 큰 사진으로 유명한 사람
누구였는지 아세요? 영화 배우가 아닙니다 준근 오빠예요
네? 준근 오빠 안준근 안준근이에요
왜 안준근이 브로마이드가 됐냐면요
니들이 잘못하면 안준근처럼 된다고
그래서 이번 총독부가 안중근 사진을 뿌렸습니다
사슬에 묶여 있는 안중근을 근데
우리 여학생들이 어떻게 했을 것 같으세요?
그 사진 한 장 안 갖고 있는 여학생은 조선
여학생이 못된 거예요
그 말 이해가 가시죠?
이건 법으로 걸리지 않잖아요 여러분 그래 안 그래요?
일본 총독부가 이거 가져오라고 준 건데 걸리지 않죠
근데 그 사진이 그렇게 많을 수가 없으니까 이 사진
복제품이 학교 앞에서 팔렸어요
여러분 브로마이드 아니에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최초의 브로마이드가 안중근
그러니까 내가 그러잖아요
준군 오빠라고 여러분 독립운동가를 오빠 형
누나 이렇게 해보세요 가까워요 안 가까워요? 그렇죠
그 당시에 그 여학생들이 특히 여학생들이죠
여학생들이 안준군을 책갈피 사이에 넣어갖고
다녔던 거예요 이 사람이 우리 오빠다 이거지 그렇죠
그러니까 독립운동가들이나 그런 분들을 멀리 두지 마시고
유관순 누나는 왜 이렇게 혼냈어요
아까 유관순 누나라고 했다가 엄청 혼났는데
얘는 제가 이제 기왕이면 그렇게 말한 거죠
그런데 이제 남성들이 유관순 누나라고 하는 건
사실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공식 용어에서는 유관순 열사
이렇게 부르는 게 맞고
왜 그러냐면
그러면 여성들은 유관순 언니 이렇게 불러야 되잖아요
사실 그러니까
이런 방송 같은 게
일종의 공식성이 있다고 봐야 되거든요
그런 점에서는 그냥 통칭을 불러주는 게 좋습니다
왜냐하면 남성들만 부르시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누나라는 말은 유관순이
남성의 호명에 의해서만 불려져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미디어나 서울시 같은 공식 행사에서는 그럴 때는 유관순
열사
아니면 뭐 그러는 게 맞다는 거죠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남성들이
남성들은 유관순 누나라고 부르고
한 번 우리가 같이 외쳐봐도 좋죠
남성은 유관순 누나
여성들은 유관순 언니라고 부르는 건 사실 좋은 말이죠
개인적으로 부를 때는 알겠습니다
자 이제 마무리를 벌써요?
벌써가 아니라 다 죽을 맛입니다
좋은 얘기도 한두 번이지
지금 40분을 혼자서 소화가 안돼요
너무 많이 쏟아내셔 가지고
10분의 1정도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만하세요 애들 표정 보세요
애들은 지금 오늘이 국치일이에요 아이고 참 너무하십니다
여러분 재밌으시죠
재밌으시다 그러는데
요정도로 마무리 저희가 전할 때 전화 좀 받으세요
바쁘다 그러겠지
또 그래 올해는 약속 드리겠습니다
한번 더 나오는 걸로 아 진짜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3.1운동 감독에서만 불려 나온 게 아니고
두 번째가 제가 방송에 나왔었거든요
그때 유관순 얘기를 했는데
다운로드율이 좋았다고 나오라고
그래서 강제 호출 당한 겁니다
그 전에도 이 두 분이 몇 번 나오라고 저한테 그랬는데
사실 제가 돈도 주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서 아 돈 주죠 돈 줍니까? 그럼요 여러분
여기 혹시 방송
들으신 분들 중에 출연하시는 분들은 돈을 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나와서 출연료도 받으시고
그러면 될 것 같습니다 세상에 제일 싫어하는 거예요
저는 돈 안 주는 방송 이런 거는 적폐라고 생각합니다
네 출연자가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주신다고 하니까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3.1운동 10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의 총감독을 맡고 계신
우리 서해성 총감독님 벌써 가는 거예요
진짜로요? 여러분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꼭 나오지요
옷을 또 안 가지고 가셨네요
또 오기 전에 빨리 끝내주세요 또 올 수도 있으니까
우리 백회 특집 걱정 말아요
서울 이제 드디어 마실 시간이죠
두 시간에 우리 백회를 모두 담을 수 없었겠지만
남은 이야기
앞으로 방송 통해서 계속 재밌게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걱정 말아요
서울을 많이 사랑해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오늘 어떻게 즐거우셨는지요
네 고맙습니다
다음에 공개 방송에서 다시 여러분을 만나겠습니다
저희는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I say you Thank you 고맙습니다
한글자막 BY 한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