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역사 토크쇼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아
별로 뭐 반가워하는 표정들이 아닌 것 같아요
아 순간 제가 어색해집니다 네 반갑습니다
저는 전 세계의 한국의 문화 역사를 널리 알리고 있는 서경덕 교수입니다 반갑습니다
네 오늘 이렇게 유튜브를 통해서
우리가 서울 특히 지금 2000년 바로 역사와 관광이 만나다
라는 주제를 통해 가지고요 오늘 강연과 그 다음에
또 재미난 토크 콘서트를 진행을 하게 됐습니다
서울 2000년 저한테도 굉장히 좀 생소한 단어거든요
왜냐면 제가 1994년으로 정확히 기억하는데요
그때 서울시 정도 600년 행사를 서울시에서 굉장히 크게 했었습니다
제가 그때 대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정말 다 믿기지 않는 얼굴들이에요 그렇죠?
그래서 그때 당시에 제가 서울 이런 큰 행사를 진행하는데
우리 대학생들이 가만히 있어도 되겠냐 이래서
제가 그때 당시 서울시에 무조건 들이대서
대학생들이 뭔가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된다고 해서
함께 진행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지금 나왔어요
그래서 정확히 5 연도도 그냥 바로 기억이 나요
600년 행사를 했었기 때문에
예 그 400년 뒤에 타임 캡슐 연다 해가지고요 2394년입니다
그래서 남산의 제가 어 타임캡슐 묻을 때도
대학생을 어 대표해서 한번 그때 갔었구요
그래서 600년 단어가 저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인지가 되어 있는 게 사실인데
근데 제가 이 교수님을 만나게 되고 이러면서
갑자기 서울이 2000년이 넘는 이런
도배 역할을 백제 때에 시작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는 얘기들을 슬슬 듣기 시작을 하면서
이번 토크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굉장히 저도 많은 것들을 좀 배울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오늘 시청하시는 많은 우리 누리꾼들하고
여기 나와 계시는 관계자 분들과 함께
오늘 강연과 함께 진행하는 토크 콘서트를 통해서
우리 서울의 또 이 송파 지역에 과연
어떠한 역사와 문화들이 남아 있어서
한번 세계인들과 함께 또 호흡할 수 있는 곳인지
그런 부분들에 관련돼서
한번 상세히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먼저 오늘
함께 하실 분들을 소개를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 오늘 별로 기분이 안 좋으신 것 같아요
얼굴 또 표정이 알겠습니다
오늘 가장 핵심적인 키맨 역할을 하시죠
바로 조금 있으면 강연을 진행을 하실 거고요
그리고 또 우리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서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시는
서울시립대 이익주 교수님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옆에 저 카운트다운 시작할 때 바로 옆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저 오늘 예쁘냐고 아하 예
이런 얘기 할 줄 몰랐죠
아니라고 하셨어요
에이 그래서 제가 제 얼굴 크냐고 물었잖아요
그래서 우리 지금 코리아닷컴 부사장님이시고
그러면서 또 우리 대한민국의 문화를 또 세계인들에게도 굉장히 잘 알리고 계시는
오수잔나 박사님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오늘 이 좋은 행사를 또 기획해 주시고
함께 또 준비를 해주신 또 관광 쪽에 있어서의 전문가이시죠
바로 TNL에 김지선 대표님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와 함께 오늘 이렇게 네 명이 의미 있고 좀 재미있게
뭐 역사로 한다면 좀 사람들이 좀 딱딱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좀 더 좀 이렇게 재미있게 좀 여러분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갖도록 하겠고요
그럼 먼저 우리가 오늘 뭐에 대해서 얘기를 할 건지에
관련된 정확한 메시지를 강연을 통해서
우리 이익주 교수님이 먼저 시작을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 강의를 들으시는 송파구민 여러분
그리고 광진구와 강동주민 여러분 모두 반갑습니다
제가 사실을 중시하는 역사학자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까 두 분의 대화를 그냥 넘길 수 없어서
분명히 오수잔나 박사님은 제가 예쁘죠 라고 질문을 하셨고
이게 팩트입니다
서경덕 교수님은 못 들었어요 라고 했습니다 아닙니다 라고 하지 않은 거죠
바로잡지 않으면 오래 남을 것이기 때문에
제가 이것부터 확인을 하고 오늘 강연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송파구를 중심으로 해서 강동구와 광진구에 분포되어 있는
서울의 역사의 흔적, 문화유산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 텐데요
먼저 이 세 구의 공통점이 무엇일지를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세 구가 서로 친하게 지내시나요?
아마 그러셔야 될 겁니다
같은 역사적인 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죠
한강이 흘러옵니다 한강이 흘러와서 서울로 들어올 때
입구에 있는 구 3개가 바로 강동구, 광진구, 송파구입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이 한강 전체를 한강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구간별로 이름을 붙였는데요
평창 앞을 흐르면 평창강, 여주를 흐르면 여강 이렇게 부릅니다
그러니까 서울을 지나면 뭐라고 했을까요?
경강이라고 했겠죠 이 경강을 또 구간별로 나누어서
한남대교 근처를 한강
그러니까 좁은 의미의 한강이죠
그리고 용산이라는 산이 있어서
그 산 앞을 흐르는 구간을 용산강
그리고 그 다음 구간이
요즘 우리가 그대로 쓰고 있는 서강입니다
한강, 용산강, 서강 이 세 개를 합쳐서 경강이라고 하는데
이 경강의 범위는 지금으로 보면 광진, 광나루에서부터 양화진까지가 됩니다
이걸 경강이라고 했을 때 경강의 상류, 3분의 1쯤
상류가 바로 이 세구가 위치한 지역이죠
왜 이 지역이 중요하냐면 지금은 한강이 아주 반듯하게
무슨 군인들 줄 서 있는 것처럼 반듯하게 치수가 돼 있지만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 강도 구불구불했어요
그러니까 강폭이 어디는 넓고 어디는 좁았는데
그 가운데 강폭이 가장 좁은 곳이 광나루였습니다
그러니까 한강을 건너기 가장 용이한 곳
교통이 편한 곳 그래서 일찍부터 발달을 했겠죠
이것은 좀 뒤에 일이고 먼저 시작하는 것은 이 지역에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만년 전 정도 되니까 헤아릴 수 없는 먼 옛날입니다
그런데 그 유적이 남아있죠
여러분 아마 국사 교과서에도 나오는 암사동 선사유적지
아마 기억하실 텐데요
암사동 선사유적지가
신석기 시대의 사람들의 집터가
가장 많이 발견된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주거유적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신석기 시대에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라고 하는 것이죠
서울 지역에서 발견된 선사유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이기도 합니다
다시 얘기해서 이 지역은 서울 지역에서
사람이 가장 먼저 살기 시작한 곳
조금 달리 표현하면 서울의 역사가 시작된 곳
어떠세요? 이 정도면 자부심이 좀 생기지 않으세요?
조금 부족한가요? 그럼 다음 더 들어보시죠
청동기 시대로 넘어가면서
역시 청동기 시대에도 사람이 사는데
유적이 발견된 곳은
암사동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가락동입니다 가락동도 여기서 멀지 않죠
가락동에서 독특한 모양의 토기가 발견되는데 이것을 가락동식 토기라고 불러요
그리고 이런 토기가 발견된 곳이 남쪽으로 금강까지 내려가는데 이 지역을
가락동 유형의 청동기 문화라고 부릅니다
하나의 문화 유형을 대표하는 이름이 바로 이 옆에 있는 거죠
이 지역의 사람이 계속 살면서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어떻게 지역의 자부심이 조금 더 올라가나요?
그래도 좀 아직은 부족하죠? 여기까지가 역사 이전의 시대, 선사라고 하는 시대입니다
선사 시대에 이곳에 사람이 살았고
문화를 발전시켰다
이렇게 하고
이제 역사 시대로 들어와 보죠 백제가 있습니다
백제가 삼국사기에 의하면
기원전 18년에 나라를 세우는데
온조가 북쪽에서 내려와서 나라를 세웠는데
나라를 세운 곳이 어디일까?
아무도 모릅니다 흔적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다만
부하악이라는 산에 올라가서 지세를 살폈다고 해요
이 부하악은 북한산의 다른 이름입니다
북쪽에서 내려왔으니까 북한산을 통해서 내려왔겠죠
거기에서 지세를 살핀 다음에 어디가 좋을까?
자리를 잡았는데
처음에 어디에 자리를 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한강 북쪽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10여년 뒤에 한강
남쪽으로 내려왔을 것이다 라고 추정을 하는데
아주 실마리
아주 작은 실마리를 가지고 이런 추정을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온조가 자리를 잡은
그 지역을 하남 위례성이라고 하거든요
하, 물, 강, 강 남쪽의 위례성
그렇다면 옮기기 전에 하북 위례성에 있었다는 이야기고
이것은 한강 북쪽의 어디였을 것이고
남쪽으로 내려가서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하남 위례성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생각을 하고 있고
여기가 어딘지를 가지고 수십 년 동안 역사학자,
고고학자들이 논쟁을 벌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조금 뒤에 하기로 하고요
여기에서 한 400년 정도 발전을 하다 보니
400년이 얼마나 긴 세월인지 감이 잡히세요?
우리 대한민국의 나이가 100년이 아직 안 됐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이 언제인지 생각나세요?
400년 동안이나 이 지역에서 계속 발전을 합니다
처음에는 아마 수천 명,
만 명 이 정도 되는 작은 집단이었겠죠
계속 주변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인구가 늘어나고
이런 과정을 거쳐가면서
이제 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거죠
370년경에 근초고왕이 기억나세요?
여러분이 아실라마 백제왕 중에 한 셋 중에 하나가 근초고왕이겠죠?
이 고등학교 역사교육의 효과는 정말 대단해서 여관에서는 안 잊어버리죠
이 근초고왕이 백제의 전성기를 누르게 되는데
영토를 확장해서 전라남도 해안까지 내려갑니다
그리고 황해도 쪽으로 올라가서
누구랑 싸우게 되느냐 하면 고구려 하고 싸우게 되요
고구려의 수도는 그 당시 암목강 쪽에 있었습니다
암목강에서 부터 평양을 거쳐서 황해도 까지 내려왔으니까
고구려도 굉장히 남쪽으로 많이 내려온 거고
백제도 한강 남쪽에서 한강을 건너서 북쪽으로 올라가서
어디에서 만나느냐 하면 평양 근처에서 만나는데
이 전쟁에서 예상을 뒤엎고 백제가 승리를 거둡니다
이때부터 백제의 전성기가 시작이 되는 거죠
근초고왕 때 백제의 전성기
다 기억하시죠?
백제가 전성기를 누릴 때 서울이 어디였느냐
이게 중요한데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 공주나 부여가 아니라
바로 하남 위례성 바로 이 지역이었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 하남 위례성이 구체적으로 어디냐 하는 게 지금 문제가 되겠죠
하남 위례성이 어딜까요?
위례성이라고 하는 이 지명 때문에 많은 역사학자,
고고학자들이 논쟁을 벌였다고 했는데
일본으로 저요하고 나온 데가 충남 직산입니다
한강을 내려가도 너무 많이 내려갔죠?
왜 직산까지 이게 가게 되느냐 하면 삼국유사에 그런 말이 있어요
삼국유사의 위례성이고 직산이다
이게 문헌이 있으니까
부정할 수 없잖아 해서 직산이라고 하다가
그래도 너무 멀다
그래서 다음에 나온 이야기가 뭐냐면 경기도 광주입니다
경기도 광주쯤이면 한강 넘어서 조금 내려가는 곳이니까
이쯤에 도업을 했을 수 있겠네라고 생각을 해요
이것도 역시 산북유사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직산도 그렇고
광주도 그렇고 발굴을 해도 흔적이 나오지 않아요
미심쩍다 그러니까
그러면 여기야 라고 나오는 데가 하남입니다
우리가 하남이잖아
그래서 하남에 있는 검단산성을 가지고
이게 위례성이라고 했는데
너무 좀 작지 않나? 도읍인데
또 이런 의문이 생긴 거죠
그러다가 우연하게
우리가 1988년도에 올림픽을 하잖아요
올림픽을 하면서 올림픽 경기장을 만들면서 예상하지 않게
그 주변 땅을 파게 됐는데
여기에서 뭔가 옛날 성의 흔적이 나온 겁니다
이게 바로 위례성 아닐까? 해서 발굴을 다 했어요
그랬더니 과연 옛날 백제시대에 만든 성이 나옵니다
이거구나 이게 바로 하남 위례성이구나
한동안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교과서가 막 바뀌는 거죠
그런데 그로부터 10년 뒤에
1997년에 풍납동에서 대사건이 벌어집니다
신정 때 그 지역에 살고 있던 고고학자가
마을을 산책하다가 기왓장이 막 쌓여있는 걸 본 거예요
저게 뭘까?
고고학자들은 기와 조각만 보면 이게 얼마나 되는 건지
알거든요 이거 한 천 년은 넘었겠는데?
2천 년 가깝겠는데?
그래서 그 지역을 한번 조사를 해보니까
과연 어마어마한 백제 시대의 성이 나온 겁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풍납포성이 바로 그건데요
사실은 1925년에,
1925년이면 우리 식민지로 있을 때
그 해가 을축년이거든요
을축년 대홍수라고 해서
한강이 엄청나게 범람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 번 한강물이 그 아래쪽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성의 흔적이 나온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게 풍납토성일지도 몰라라고
이미 그때부터 얘기를 했었는데
귀담아듣지를 않고 있었던 거죠
1997년에 발굴을 해봤더니 거기에 뭐가 나오느냐면요
한강입니다
한강의 면에서
무슨 모양이라고 해요?
길다란 장방형의 저런 성벽이 나온 겁니다
둘레가 3.5KM 정도 되고 안에 면적이 25만 평 정도가 됩니다
이거를 흙으로 돋아서 성벽을 쭉 쌓아 올렸는데
자그만치 15M까지 올라가는 곳이 있어요 15M면 아파트 5층입니다
아파트 5층 높이로 흙을 쌓기 위해서
그러면 옆으로는 얼마나 넓게 했을까?
그렇죠? 10M 이상 위로 15M 정도 되는
이런 어마어마한 성벽을 이렇게 둘러놓은 겁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포크레인도 없는데
무엇으로 이런 성을 쌓았을까?
계산을 해봐요 몇 명쯤 동원해야 될까?
연인원 한 100만 명 정도가 동원됐을 것이다
8톤 트럭으로 한 20만 대 분량의 차량이 동원돼야 쌓을 수 있는
성이다 우주인일까요? 아닙니다
오랜 시간 걸쳐서 한 200년 정도 이 성을 계속 쌓고
보수하고 또 쌓고 올리고 이렇게 했겠죠
이러면서 우리 눈앞에 백제의 하남
위례성, 수도가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겁니다
여기를 중심으로 해서 근초고왕이 평양에 가서 고구려 군대와 싸워 이기고
남쪽으로 내려가서 남해안까지 백제 땅으로 만들고
이러면서 백제의 전성기를 이루었구나
이런 사실을 비로소 확인을 하게 됐던 것이죠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근초고왕이 싸워
이겼던 고구려의 국왕 이 이름도 교과서에 나와요
고국원왕입니다
고국원왕을 전사시키는 데까지는 성공했는데 이 승리
때문에 백제는 두고두고
고구려의 복수를 당하게 됩니다 이
고국원왕의 손자가 정말 어마어마한 사람이었거든요
바로 광개토대왕
광개토대왕, 내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
계속 남쪽을 공격한 거예요
그래서 광개토대왕은 배를 타고
인천 앞바다를 통해서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서
수군을 가지고 풍납토성을 공격합니다 위례성을 공격해요
고구려 쪽 기록에는
백제왕이 항복을 했다고 기록이 되어 있고
백제 쪽 기록에는 우리 안 했는데 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 항복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어쨌든 고구려가 승리를 하는 전쟁이 한 번 있었고
그런데도 광개토대왕은 위례성을 정복하지는 못해요
광개토대왕의 아들 누구죠? 장수왕 오래 살아서 장수왕이죠
이분이 백제를 겨냥해서 수도를 아예 국내성에서
압록강 유역에서 평양으로 옮겨놓고
더 가까이 와서 백제를 본격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풍납토성을 공격하기 위해서 고구려가 강 건너
강북 쪽에 보루를 쌓아요 이 보루가 지금도 남아있죠
어디에 남아있느냐 하면
아차산에 아차산 줄기에 고구려의 보루가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백제의 수도가 함락당하고
백제의 국왕이 죽음을 당하고
백제의 왕자가 남쪽으로 도망치듯
내려가서 공주의 자리를 잡는데
그때는 웅진이라고 하죠
이래서 웅진 백제 시대가 시작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전 500년 풍납동
하남 위례성에 자리를 잡고 있었을 당시
백제는 뭐라고 이름을 붙일까?
한성 백제라고 이름을 붙이게 되는 거죠
그리고 웅진이 너무 좁아 해서
사비, 부여로 또 천도를 하게 되는데
백제가 웅진에 있던 기간은 한 60여 년입니다
사비로 가서
거기에서 수도를 삼았던 시기가 한 120년 정도 됩니다
백제 역사 700년 중에
500년은 한성에서 200년은 충청도에서 있었던 것인데
자 여기에서 퀴즈 하나 내볼까요?
기억이 가물가물하실 테지만
옛날에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기억나세요? 옥의 티를 찾아라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아,
이것은 백제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거기 보면 의자왕이 충청도 말을 쓰잖아요
그럼 안 됩니다
전라도 사투리를 군인들이 쓰는 것도 어색해요
아마 백제 왕들은 서울말 더하기
충청도말이 합쳐진 마치 서울 살다가 충청도로
전학 간 아이의
그 말이었어요 이 정도 말을 써야 되는 거였겠죠
이건 그냥 웃고 넘어가지만
심각한 오류를 범할 때가 있습니다
뭐냐면 지금은 다 없어졌습니다만
20, 30년 전까지만 해도
경상도 전라도의 지역감정 얘기가 나왔었어요 이
지역감정의 뿌리를 옛날
신라와 백제의 다툼에서부터 찾는 이상한 논리가 있었는데
이건 역사를 잘못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현실까지도 그르칠 수 있는 굉장히 잘못된 생각인 거죠
백제는 충청도, 전라도 아니고
충청도와 서울이 중심이 되는 나라였다
그럴 때 서울이 중심이 된다고 했을 때
서울의 어디냐? 바로 여기입니다
경강 상류 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던 나라 이런 거죠
신석기 청동계에 의해서 500년
백제의 도읍 이 정도면 좀 힘이 들어가세요?
500년 백제의 도읍이였다
그 이후에 고구려 땅이 되었다가
고구려가 한 100년 정도 이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가
이번에는 다시 신라에 빼앗기게 되는데요
신라는 우리가 흔히 고구려 백제
신라를 삼국이라고 그냥 이야기하지만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요
고구려가 건국되었을 때 신라는 생기지도 않았고
신라가 나락고를 갖출 때
이미 고구려는 수백 년이 된 제국이었습니다
출발 시기도 다르고
나라의 크기도 다르고 훨씬 후발주자였고
문화적으로도 후진적이었고
심지어는 광개토대왕 때 고부려
군대가 신라의 수도에 주둔하고
외부로부터 신라를 보호하고
신라의 왕위 계승에 참여해서 내정간섭을 하고
신라를 속국이라고 불렀어요 이 신라가
이제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서 서기
500년쯤부터 나라의 꼴을 갖추고
우리도 뭔가를 해봐야지 하기 위해서는
고구려의 간섭에서 벗어나야 된다
어떻게 간섭에서 벗어날까?
고구려와 원수지간에 있는 백제와 손을 잡으면 되겠다
해가지고 백제의 성왕과 신라의 진흥왕이 손을 잡고
고구려를 밀어올려서 한강을 둘이 다 차지하게 되죠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있는 거죠?
유명한 진흥왕의 배신이 있습니다
한강 상류는 신라가 차지하고
한강 하류는 백제가 차지하기로 했는데
한강 상류를 차지한 진흥왕이 너무 억울한 거예요
아무것도 나오는 게 없습니다 거기 강원도 산간이거든요
이걸 내가 가져서 뭐하지?
그리고 백제를 보니까 저쪽은 서울이 있는 거예요
이거는 셈이 안 맞는다 배신을 하고 성왕의 뒤를 치죠
그래서 한강 하류까지 모두 차지해서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한강 유역을 차지했다고 하는데
신라에게 한강 하류,
서울을 차지는 영토를 넓힌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중국으로 갈 수 있는 교통로를 확보했다는 것이죠
그 이전까지 신라는 중국을 가는 길이 없었어요
그래서 중국에 가기 위해서는 고구려
사람들이 중국에 갈 때 깍두기처럼 끼어서 갑니다
그러니 고구려와
이익이 정반대가 되는 상황에서는 외교를 못했겠죠
그러다가 한강 하루를 차지하면서
비로소 중국과 직거래를 하게 되고 이
직거래의 결과가 뭐죠?
나당 연합군의 성립입니다
고구려 백자가 볼 때는
또 후손이 된 우리가 볼 때는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당시 신라의 입장에서 볼 때는
굉장히 탁월한 외교를 한 것인데요
이렇게 본다면 한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삼국이 서로 싸우는데
서울 지역을 차지하면 이긴다 전성기를 누린다
근초고왕 때 백제의 전성 광개토대왕 장수왕 때
고구려의 전성 신라진흥왕 때의 전성기 공통점이 뭐냐면
전부 한강 유역
그중에서도 서울 지역을 차지한다는 거죠
서울 지역 가운데서도 핵심이 되는 게 바로 역입니다
그 당시에 전략적인 요충지였던 거죠
그러면 누가 이 지역을 차지하느냐
가장 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제가 볼 때는
가장 절실한 나라가 가장 절실한 나라가 이 노른자
위를 차지하는 거고
노른자 위를 차지하기 때문에 전성기를 눌릴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석을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백제 땅, 그 다음에는 고구려 땅, 그 다음에는 신라 땅
주인이 두 번 바뀌어서
세 나라가 모두 차지해본
적이 있는 이 다음이 중요한데요
우리나라의 유일한 지역 들으시면서 딴 데는 없나
생각하시죠?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없습니다 여기가 유일해요
그래서 세 나라가 모두 자기의 흔적을 남긴 지역
세 나라의 유산이 모두 남아있는
유일한 지역이 지금의 서울이고
서울 가운데에서도 바로 이 지역이죠
경강 상류 지역 이 지역이
한국 고대에는 가장 중요한 지역이었던 거예요
세 나라의 유적을 한번 보겠습니다
백제 전성 때 한성을 수도로 해서 영토를 넓히고
중국까지 진출했었다라고 하는 지도입니다
서울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유적이 모두 있습니다
아차산, 보루군, 고구려의 유적이죠
그다음에 백제,
풍납토성, 몽촌토성 같은 백제의 유적
그리고 신라의 초록색 유적 이 지도는 왜 서울인가?
서울에서도 왜 강남
경강 상류의 삼국인가를
그 역사적인 중요성을 보여주는 굉장히 중요한 지도입니다
아까 보셨던 풍납토성 지금 이렇게 남아있습니다
모두 아파트가 되었지만 성벽은 그대로 보존이 되어 있고
지금도 발굴이 진행 중입니다
아마도 이 유적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하는 걸 가지고
많은 논란이 진행되고 있고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것으로도 알고 있습니다만
2000년 된 유적은 훼손되면 다시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 다음 볼까요? 이 그림은 사진은 몽촌토성입니다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올림픽 공원을 만들 때
백제시대에 토성이 나왔던 곳이죠
몽촌토성은 풍납토성에 비해서 공원 내에 있기 때문에
보존이 좀 더 수월한 편입니다
다음 보실까요? 살아있는 사람만 사는 게 아니고
죽은 사람도 살아야 되니까 무덤을 만들죠
아마 왕릉이었을 겁니다
석촌동에 백제 고분군이 있는데
계단의 모양을 갖는 적석총
이것은 꼭 집안에 있는 안목강변
집안의 국내성에 있는
광개토왕의 능이라고 알려져 있는 장군총을 닮았습니다
아까 백제의 왕실이 고구려로부터 내려왔다고 말씀드렸는데
고구려의 문화가 이렇게 백제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방이동에 있는 고분군입니다
지금 서울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문화가 모두 남아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백제가 가장 오랫동안 이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위례성으로 거의 확실한 풍납토성
그리고 아마 그 위례성을
남쪽에서 방화기후에서 만들어졌을 거라고
추정되는 몽촌토성, 석촌동 고분군, 방희동 고분군
이런 유적이 있습니다 이
유적들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이 유적을 가지고
어떻게 역사를 교육하고
더 나아가서 관광으로까지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이 고민을 해야 될 때인 거죠
어떠셨습니까?
경강 3구에 사시는 주민
여러분 이 지역은 서울의 역사가 시작된 곳입니다
서울의 역사는 이 지역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또 이 지역은
2000년 전에 이미 수도가 되었던 지역입니다
2000년 전에 무려
500년 동안 수도로서 기능을 했던 곳입니다
한국 고대사의 중심지 이런 의미를 갖게 되죠
자부심을 가질만 하고
자부심에서 그치지 말고
이것을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할 것인가
이제 이 문제를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해야 될 때일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멋진 강연이였습니다 그쵸? 다시 한 번 큰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가장 또 훌륭하신 게 정확하게 30분에 맞춰서 끝내주셨습니다
생방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죠
시간을 정확히 맞춰준다는 건 역시 진정한 선수세요
다르시네요 오늘 딱 저도 뒤에서 강연을 들으면서요
교수님 굉장히 많이 놀랐습니다
저야 당연히 홍보를 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역사 전공자가 아니다 보니까 삼국의 그죠
그 아까 보여주셨던 지도 한 장이
그만큼 절실한 나라가 이쪽 서울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500년 동안 이렇게 됐다는 그 부분에 있어서
저는 굉장히 좋은 지식을 배우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혹시 이런 부분에 관련돼서
우리가 다른 해외를 한번 예시를 든다면
다른 도시가 있을 수 있을까요? 이런 비슷한
1000년 전에 수도로
건설됐고
그 도시가 지금까지도 수도인 경우
이런 사례는 정말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우리 역사 긴 거를 굉장히 불만스럽게 생각하는데요
공부할 게 많아서 일단 역사가 긴 것은 자랑할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역사가 참 길죠 이 긴 역사에서
한 지역이 한 도시가 2000년 전부터 지금까지도 수도다
제가 다른 나라 수도를 좀 찾아봤는데
로마 정도, 아테네 이런 데는 워낙 고대부터 문화가 발전을 했고 수도였으니까
그런데 말하자면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요
런던, 파리 이런 데도 천 이렇게 되질 않습니다 그렇군요
파리 같은 경우가 메로빙거 왕조의 수도
제가 공부 좀 해봤습니다
내가 된 게 한 서기 500년 그러니까 거기가 한 1500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지금 우리 개념의 수도였느냐
런던은 한 1000년 정도 됐을까 하니까요
정말 서울은 보기 드문 정말 유서 깊은 그런 교수님
강의 듣다 보니까 미국 사람으로서는 열정감이 느껴요
우리 역사 워낙 짧아가지고 할 말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물어보지도 않는데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셔가지고
미국 딱 말씀하시니까
갑자기 마이크를 싹 들으시는 거예요
그 말씀하시려고
사실 지금 얘기 들어보니까
백제 역사가 약 73% 바로 이 지역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18년부터 있었다는 게
그럼 미국에서는 우리 할 말이 없어요 이 자리에 사실
그래도 그냥 그렇게 듣기만 하고
넘기면 너무 자만한 것 같으니까
이런 말씀 드려야 될 것 같아요
미국은 역사가 짧은 대신에
나라가 젊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석을 또 이 정도면 서로 덕담을 한 거죠
그렇죠 주고받고
그리고 미국이 가장 힘이 세잖아요
그게 되게 복잡한 질문인데
사실 역사 아까 말씀하셨지만
한국 역사 길다고 학생들이 또 불평 많이 한다고
우리 애들도 한국 학교 다 다녔거든요
그래서 저한테 와서 항상 이런 얘기하다 엄마 좋겠는데
왜 미국 역사 짧아서 공부 많이 안 해도 된다고
그래도 반면에 여기 지역 살고 계신 분들이
굉장히 자랑거리 많다고 오늘 들어보니까
진짜 자부심을 가지셔도 정말 충만하셔도
정말 상관이 없을 정도로 저는 뭐 송파 이렇게 하면 사실
여기 롯데월드 그리고 또 이제 젊었을 때
이제 종종 이제 어렸을 때 종종 갔던 데가 문정동이라고
예전에 또 아울렛으로 유명한 그리고 신천역 주변에 우리 젊었을 때
이제 대학생 때 술 한잔 마시러 많이 다녔던
근데 이렇게 송파구가 그죠
역사적으로 굉장히 훌륭한 도시
그러면은 우리 대표님은 저는 송파 가면 이런 게 생각이 났었는데
네 맞습니다
지금 저희가 강의를 들어보니까 와 정말 어마무시한 자원이 역사
문화 자원이 있는 곳이 이곳이구나 라는 느낌이 다시 한번 들었는데요
실제 저희가 이번에 빅데이터 조사를 한번 해봤어요
그래서 송파와 관련된 방문, 관광
이런 키워드를 가지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나오는 게 바로 쇼핑이나 그렇죠
이렇게 간단한 만남, 모임을 위한 카페, 맛집
이런 키워드가 굉장히 많았거든요
데이트 그래서 주로 이곳에 방문하시는 분들은 사실
어떻게 보면 가볍게 데이트를 하거나
이런 식사를 하거나
쇼핑을 하기 위한 장소로
아마 자리매김이 많이 되어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이런 역사문화 자원을 가지고 하는
그런 관광 개발이 조금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번에 또 들은 얘기로는 그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코로나 이전에 왔을 때
롯데월드 롯데타워에 내려서 관광을 하고
그 다음에 가는 코스가 뭐 삼전도비 에서 내려 준다는 얘기도 들었거든요
그래서 정말 조금 심각하구나 이런 문제에 대해서 저희가 다시 한번 좀 깨닫고
좀 더 볼만한 관광 거리를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중국 관광객들 중국 관광객들이 삼전도비를 방문한다는 거
이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요
삼전도비가 뭐냐면
원래 이름은 대청황제공덕비예요
삼전도 이게 섬이 아니고 나루입니다
여기에 세워졌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삼전도비라고 하는 건데
중국 관광객들이 그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할지
좀 한번 꼭 들어갔으면 좋겠는데요
이런 겁니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을 지키지 못하고
인조가 항복을 하죠 항복한 지점이 삼전도예요
여기에 청나라가 조선을 굴복시켰다
항복을 받았다 해서 거기에다가
기념을 해서 비석을 세워놓은 거거든요
혹시 중국 관광객들이 여기에 와서
우리가 옛날에 조선을 점령했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데
아마 중국 관광객들 중에서도 역사를 조금 아는 분들은
그런 생각을 안 하실 거예요
왜냐하면 병자호란이 왜 일어났는가
조선이 중국에서 여진족이 만주족으로 이름을 바꾸죠
만주족이 막 힘을 키울 때
조선에 명과의 관계를 끊고 청의 사대를 해라 이런 요구를 했을 때
조선이 우리는 명과의 관계를 못 끊겠다
명과의 의리를 지켜야 된다고 해서 전쟁이 일어난 거거든요
그리고 그 전쟁에서 패배하고
삼전도비가 만들어지기까지 되는 건데
중국 관광객들이 역사를 바로 한다면
당연히 삼전도비 앞에 가서는 옛날 조선이 명에 대해서
이렇게 의리를 지킨 나라구나 이 생각을 해야 옳다고 봐요
또 한 가지 조선에 와가지고
삼전도비를 만들게 한
그 만주족은 명나라도 멸망시키거든요
그러면 그 관광객이 만주족이 아니라면
우리도 똑같이 멸망당했는데
이런 생각을 해야 옳죠
삼전도비를 가는 것까지야 말리지 못하겠지만
삼전도비 앞에 가서
중국 관광객들이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가라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안내를 제대로 해야 될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하여튼 코로나 이전
내년 되면 포스트 코로나도
우리가 또 준비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새로운 많은 추억들
중국 관광객들이 왔을 때
그런 부분을 고려를 해서
잘 설명을 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러면 외국인 관광 얘기를 하다 보니까
우리 부사장님 같은 경우에 외국인들 입장에서 봤을 때
서울 하면 뭘 제일 먼저 떠올릴까요?
서울을 생각하면 대부분 놀기, 먹기,
쇼핑하기가 좋은 곳이다
그런 생각이 떠올리죠
그러니까 그 자체 나쁜 곳이 아니에요
하지만 이 그 도시 아까
그 교수님 말하듯이 오래된 역사
그리고 이 역사 그냥 보통 역사 아니에요
지금 발굴 내용이 보니까
굉장히 세련된 이곳 수도
역할을 했다는 것이 이제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제가 이 동네가 왜 좋아하냐면요
거기 지난 일요일날
사실 거기 와서 직접 혼자서 답사했거든요
거기 분납토성도 한 바퀴 돌고 몽촌토성 한 바퀴 돌고
그다음에 한성백제 박물관도 가보고 정말 볼거리 많아
아 이 토크 콘서트를 위해서?
네 여기서 볼거리 많고
직접 다 혼자 답사를 하신 거예요?
네 혼자서 돌아보면서 외국분들 오시면 이 좋은 역사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고민 많이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현장 방문해서
그리고 직접적으로 워킹투어 보러 가면서
실제로 눈으로 확인하고 만지고
그 풍납토성 아까 말씀하신 5층 건물 높이에요
그 바로 옆에서 그때 당시 인간들은 어떻게 그걸 만들었을까
그걸 고민하게 되고 그리고 박물관에 들어가서
실제로 유물도 전시도 잘 되어 있어서
그리고 아까 마지막으로 약간 그게 지금 살고
계신 분과 갈등 문제라든지 이거 어느 나라 가든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송파 지역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해결해달라고 하는지에 대해서
외국 분들도 공유해서 같이 고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관광이라는 것이 쇼핑해도 좋지만
그래도 역사 느끼고
다시 이제 자기 나라 들어가면
그 추억이 제일 오래 가요
그 기억이 제일 오래 남잖아요 네, 그렇죠
그래도 뭐 역사 말씀하시면서
오늘 계속 쇼핑이란 단어는 안 빠지고 있어요
다들 그렇죠? 굉장히 중요하죠
우리 웨어버리도 해야 되잖아요
와서 쇼핑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네, 하지만
그것만 하고 가면 조금 아쉬워요
그럼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한번 딱 돌아보셨다고 하셨잖아요
네 딱 뭐가 제일 딱 기억에 남으세요?
여기 우리 송파 국민들이 풍납소성
굉장히 많이 사랑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딱 눈 오자마자 썰매 갖고
올라가서 썰매 타는 거예요
이번에 눈 많이 온 날 가셨던 거예요?
다음 날 갔죠 다음 날요? 그래가지고..
다 가족끼리로 나와서 올라가서 재밌게 놀고 있었어요
그래서 나름대로 애정이 많이 갖고 있어요
물론 전문가들이 문화유산 위에서 썰매 타는 걸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주민들이 상당히 아끼는 것 같아요
문화유산 위에서 썰매 타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옛날 분들이 좋은 일 하신 거죠 그 뭐든지 의도대로만 쓰이는 게 아닙니다
저는 중국에 가서 만리장성 보면서
그런 생각 많이 하는데요
그 어마어마한 만리장성을 쌓아놓고
그 만리장성은 방어 기능을 한 번도 못해요
만리장성 무서워서 중국을 침략하지 못한 경우가 없습니다
그런데 후손들에게
어마어마한 관광 수입을 지금 만들어주고 있잖아요
진시황이 참 좋은 일 했다
물론 금알리 장성은 진수왕께 아니고
명나라 촉구하긴 하지만
아무튼 문화유산이라고 하는 것은
꼭 보는 데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라는 거예요
이걸 활용을 하는데 훼손하면 안 되겠지만
훼손하지 않으면서
활용하는 방법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죠
그걸 해야 되는 거죠 그렇네요
썰매를 타더라도
훼손을 안 하면서 탈 수 있는 만큼만 가족끼리
굉장히 행복하게 놀러오는 것 같아서 솔직히 그날 탔죠
그럼? 네 딱 타보입니다 그렇죠?
그러면 대표님 같은 경우는 이쪽
워낙에 같이 서울시와 함께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시는데
이런 부분에 관련돼서 자랑하시기 없어요?
일단 문화유산은 어떻게 보면
저희가 관광 쪽에서 바라볼 때
쇼핑이나 이런 것보다도
가장 고품격의 관광을 활용할 수 있는
그런 콘텐츠가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한국을 알릴 수 있는 가장
어떻게 보면 외국인들한테도 먹고
마시고 하는 것은 굉장히 즉각적이고
또 금방 휘발성이 있어서 날아갈 수도 있는데
이런 역사나 문화로 인해서
체험을 한 것은 굉장히 오랫동안 기억에 남고
그 날에 대해서
깊이 만난다라는 느낌을 줄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역사 문화가 굉장히 고품격의 우리
한국 관광을 알릴 수 있는 그런 컨텐츠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이익주 교수님
말씀하신 대로 이 송파 일대가 지금까지는 가볍게 먹고
마시는 그런 도시였다면
이제 새롭게 역사 도시로
조금 그런 컨텐츠를 알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서울시에서 굉장히 재미있는 조사 결과를 하나 줬어요
보내서 보니까 서울시에서 외국인 대상으로 2030
서울 비전이라는 대표 상품을 가지고
외국인들에게
서울시가 가장 먼저 추진해야 될 정책이 뭐냐라고
질문을 했는데
외국인들이 응답한 1위
서울시 추진 정책이 바로 풍납동에 역사
유적 지구를 다시 그 되살리는
그 조성하는 게 1위로 나타났더라구요
서 와 이거 외국인들의 눈높이가 굉장히 높거나
시가 그것밖에 없었던 거에요
30개가 있었습니다 30개 주
예 3시 개중에서 예 1위 였어요
그래서 아 일단 외국인들의 일단 기대치도 있구요
그리고 지금
현재 풍납 주변에서
지금 2026년까지 도시재생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한성백제를 가지고
그 역사문화도시 그 거리를 조성하고 있는데
아마 5년 되면 역사 문화 조시로
어느 정도 이렇게 좀 모양새가 나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고 있고요
지금 송파 에서도
지금 한 10년 넘게 지금 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한성백제는 어떻게 보면 지금
이미 백제의 역사
유적 지구가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되어 있기 때문에
공주, 부여, 익산과 연합을 해서
이거를 같이
이제 세계유산으로
확장 등재하는 지금 노력들도 하고 있는데
이런 움직임에 대한 전국적으로
이게 조금 같이 동참해야 될 필요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고요
아 예 그래서 아마 할 일이 조금 많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 어 깜짝 놀랬습니다 30개 예시 중에서 1위를
2, 30대 그럼 MZ세대잖아요 그죠
2030비전이였고요 2, 30대를 대상으로 한 건 아니고
국내외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했답니다
그리고 교수님 제가 일요일에 돌아다니면서 딱 보니까 발굴 현장 지금 아직 있어요
아까 97년 사건 언급하셨지만 굉장히 극적인 사건이었어요
공사하면서 우연히 발굴했어요
스탑시켜가지고
그 다음에 그만큼 유물이 많이 나왔는데
가능하면 앞으로 이런 관광 프로그램
거기 실제로 발견한 현장에서 외국분들 와서 보고 실로
그 현장에서 일하신 분 얘기 좀 들어보고
참여할 수 있는 게 가능할 것 같아서 지금 질문이었네요
깜짝이야 맨 끝에 싹 올리면서 그렇죠?
가능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저는 가능한 일이라기보다는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와서 그냥 본다
이거는 관광으로서는 가장 낮은 단계의 관광이죠
느낀다 체험한다 이런 것까지도 포함을 해야 되는 거고요
그렇다면 무엇을 가지고
관광객들이 무언가를 느끼고
체험한다고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할까?
이걸 고민을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냥 있는 것을 가서 보고
온다에서 좀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생각입니다 굉장히 좋은 말씀이신 것 같아요
뭔가를 체험을 해서 와서 그냥 보고 느끼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함께 뭔가를 이렇게 좀 만들 수도 있고
이러면서 좀 체험할 수 있는
그런 관광을 계속 개발을 한다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관광자만 나오면 그냥 계속 우리
김 대표님은 자기가 내가 뭘 얘기를 하는 하셔야죠 당연히
하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지금 우리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보는 게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보고 체험하고 하는 게 중요한데
어떻게 보면 그동안 지금
송파구 같은 경우에는
이렇게 매직이 문화재가 주로 많다 보니까
뭔가 보여 줄게 많지 않아서 이걸 조금 활용하는데
조금 부족해서 어떤 거 같아요
근데 지금 이제 시대가 달라졌군요 해서
그냥 실질적인 물
그런 물체를 우리가 그냥 보는 것 뿐만이 아니라
지금은 ICT 나 디지털이 너무 기술이 발달되어 있겠다
지금은 지금 없는 그 옛날에
옛날의 현장, 옛날의 역사적 인물들을
저희가 이제는 디지털로 다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지금 대부분의 박물관을 보면
지금 한성백제박물관에도 VR 체험, AR 체험 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
지금 이제는 그거를 뛰어넘어서
실내 공간이 아닌 야외 공간에서도 저희가 AR, VR, XR
그리고 홀로그램 그리고 스팟별로 AI,
역사적 인물로 이제 나타나서 그 시대를 다시 한번 우리 우리한테 만나서
설명도 해주고 다 보여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저는 그 석촌동 고분군이나
방이동 고분군이 굉장히 넓거든요
그 넓은 게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볼 게 없다가 아니라
그 넓은 공간이 굉장히 넓은 그냥 캠퍼스처럼 보여요
그래서 그거를 디지털로 뭔가를 거기에서 하게 되면
굉장히 다양한
콘텐츠들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잠재력이 지금의 오늘날의 기술을 활용을 해서
옛날의 한상백제의 때를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이 만날 수 있도록 하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명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인 ICT 기술을 활용해서
홀로그램으로 예전에 있었던 우리 백제의 왕이 그대로
다시 탄생을 해서
직접적으로 도슨트를 한다는
그 작전은 굉장히 재미난 내년에 바로 되나요?
내년에 일부 살짝 맛보기로 되지 않을까
이거는 아무래도
송파구와 서울시와
정부의 예산이 조금 투입되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예산이 좀 필요하다고 합니다
예산이 조금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중앙정부에 특히 계시는 분들은
바로 서울시와 송파구에 좀 후원이 되면
훨씬 더 좋은 프로그램 만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관광에 대해서 수잔나 박사님은 체험
그다음에 이제
우리 대표님은 요즘 메타버스 얘기 나오는데
메타버스 기술을 접목해서 뭔가 좀
그 실감을 느끼게 하자 이런 말씀이신데
저는 또 다른
차원의 아이디어를 한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폐사지를 답사를 해요
있는 절이 아니라 무너진 절을 답사하는 묘미가 있거든요
풍납토성이 아무것도 없는데 만일 여기에 와서
내가 2000년 전 사람들의 숨결을 느꼈어
이런 생각을 하고 갈 수 있다면 이 풍납토성을 재건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와서 2000년 전에 냄새를 맡고 느낌을 갖고 상상을 하고 가게 할 수 있다면
아주 고품격의 관광 상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너무 좀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아니요
그거보다 이렇게 아이디어를 계속 내시면 예산이 올라갑니다
지금 예산도 우리가 고려를 해야죠
그렇죠? 정말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가장 중요한 거를
제가 계속 토크 콘서트를 하다 보니까
벌써 저희가 약속했던 시간이 돼버렸어요
그런데 오늘
저희가 함께 보고
계시는 우리 누리꾼들과 함께 커피
쿠폰을 저희가 드린다고 얘기를 했었어야 되는데
가장 중요한 걸 제가 깜빡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빨리 지금이라도 좋습니다
그 질문을 하나라도 남겨주신다면
이미 벌써 제가 실은 이제 시작하기 전에
제 SNS에 커피 쿠폰을 쫙 쏠 테니까
네 좀 참여를 부탁드렸는데
벌써 많이 올라왔네요 네 벌써 질문이 먼저 올라왔습니다
일단 좀 읽어보겠습니다
댓글에 서울의 역사를 새롭게 들을 수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예예 근데 중요한 건 이런 댓글을 써주시는 건 좋은데
아니요 아니요
댓글 써주신 분한테는 너무나 감사드리는데
최소한 아이디까지 같이 적어주셔야 됩니다
어느 어느 분 그렇죠? 안타깝습니다
두 번째는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이곳을 방문해서
풍납토성도 보고 쇼핑도 하고
좋은 기억을 가지고 갔으면 좋겠어요 누구누구분 그렇죠?
여기서도 쇼핑이라는 단어가 나와요
오늘은 역사와 관광과 하나에 더 붙인다면
쇼핑까지 좋습니다
그러면 질문이 또 두 개가 올라와 있습니다
질문을 제가 먼저 읽어보고
어떤 분이 답변을 할지는
한번 저희가 고려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한반도의 한강 말고 다른 큰 강들도 많은데
꼭 한강 지역을 차지한
나라가 전성기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거는 교수님 답변하셔야죠
제 강의 들으셨으니까
우리 해설할 때 한강 중요성을 항상 강조해요
그리고 참고로 위대한 도시라면
위대한 강 항상 같이 있는 거예요
천세계적으로 봤을 때
그리고 지리적으로 그 위치에 봤을 때 조언이라든지
거기 옛날에 세금이나 낼 때라든지
한강이 무지무지 중요한 요건을 했어요
한 가지만 드린다면
교수님도 이어서 더 말씀도 하실 수 있겠지만
역사적으로 그래요 네 맞습니다 삼국의 중앙에 위치한 강
이것이 중요한 사실일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중앙을 차지하게 되면
한강을 차지하게 되면
어디까지 그냥 딸려오느냐 하면 천안까지 딸려옵니다
경부선 타고 한번 내려가 보세요
서울에서부터 천안까지는 산을 하나도 안 만나요
다 평야 지대입니다
그리고 천안에서 이제 저쪽
서해안 쪽으로 가다 보면
서산 당진까지는 그대로 평야입니다
그러니까 한강을 차지한다고 하는 것은
서울 지역뿐 아니라 중부
서해안 일대를 모두 차지한다는 걸 뜻하죠 중요합니다
그리고 아까
신라의 경우에는 중국과의 교통 이 문제가 하나가 있고요
그리고 오늘 강의하면서 저도 스스로 진화를 했는데요
역사적인 정통성을 갖게 된다
3국을 모두
이은 나라라고 하는
이런 정통성을 갖게 된다는 의미가
또 한 가지가 있겠구나
저도 이렇게 말씀드리면서 제가 알게 된 사실입니다
스스로 진화하는 강의였습니다 알겠습니다
진화하는 강의로서
1번에 대한 답변을 두 분이
더 깔끔하게 정리를 해주셨고요
질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문화재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활용 방법은 없었죠?
뭐가 있을까요
이거는 아까
썰매탄단 얘기 때 나오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화재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활용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 수 있을까요
대표님 일단 저는 관리가 굉장히 중요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가이드라인이 또 중요하겠죠
그리고 사실
이게 보존과 활용의 밸런스를 맞추는 게 가장 중요한데
또 보존에 너무 치우치다 보면
매력성이 조금 덜 부각이 되고
또 이게 너무 활용을 하려고
이걸 과하게 하다 보면 또 보존이 훼손이 되거든요
그래서 이거를 관리를 해야 되는데
이걸 관리를 하려면 평가 지표라든지
이런 것들이 있어야 되겠죠
관리하는 기준이나 지표가 명확하게 잘 되고
이거를 모니터링을 하고
그러면서 이게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끊임없이 이거를 진단을 하면서
이걸 어떻게 좀 과한지 덜한지를 모니터링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이거는 어떻게 보면 정부나 중앙의 역할이 크겠죠
그래서 훼손하지 않도록 교육하고 관리하고
이런 역할들이
정부가 좀 잘 해나가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화재청에서 열심히 또
일을 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알겠습니다
이번 댓글도 달아주시고
또 질문해 주셨던 이 네 분은 커피 쏘겠습니다
꼭 저희가 드릴 테니까
그리고 여러분들
저희가 설마 서울시와 송파구가 함께하는 일인데
커피 네 잔만 준비했겠습니까?
더 많이 여러분들
오늘 토크 콘서트를 보시고
감상평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오늘 또 좋은 걸 들었다
아니면 좀 2탄을 좀 한번 다음 주에
또 한번 더 해달라 뭐 그죠?
이런 얘기들이 나올 수가 있기 때문에
내 것까지 챙겨주지요
예? 제 것까지 챙겨주죠 제가 뭐 질문 커피요?
그건 제가 사드릴게요
오늘 뭐 시작할 때부터 서 교수
오늘 나 이뻐? 이렇게 시작하면서 그죠? 오늘 부사장님
아주 재밌습니다 알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렇게 함께 감상평까지 남겨주시면
저희가 커피
쿠폰뿐만이 아니라
저희가 더 좋은 행사들을 앞으로도 준비할 수 있는데
굉장히 큰 힘이 되기 때문에요
그런 부분들도 함께 해주신다면
여러분에게 소통할 수 있는 좋은 토크
콘서트를 더
우리가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제는 거의 마무리 단계가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보면 역사 전문가님, 관광 전문가님
그 다음에 또 우리 그죠?
아주머니
예예 아주머니 아저씨 그죠?
둘이 그냥 티키타카가 맞았어요 그죠?
그래서 이렇게 또 외국인이지만 한국에서 오랫동안 사시면서
이렇게 바라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좋은 얘기들을 많이 해주셨고요
저는 이제 홍보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그러면은 역시 이렇게 많은 관광객들을 모을 수 있는 것도
홍보가 또 굉장히 또 필요하고 그죠? 예 그리고 또
이런 역사의 진정성과 중요성도 알리는 것도 굉장히
필요한 부분인다라는 생각이 좀 많이 들을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이제 서울시에서
특히 이런 또 송파와 함께
뭔가 좀 새로운 좋은
이런 역사적인 프로그램들이 많이 만들어진다면 그죠?
다른 구에도 어떤 모범적인 사례가 또 많이 만들어져서
서울이 좀 더 풍성한 문화와 역사 도시로서 성장하는데
굉장히 큰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오늘 이렇게 함께 거의 한 70분 정도 원래 60분 행사였는데
70분 동안 함께 이렇게 경청해 주신 우리 특히 누리꾼 여러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앞으로 이런 좋은 의미 있는 역사 토크 콘서트 지루하지 않고
좀 재밌게도 할 수 있다는 부분을 여러분들과 함께
소통하고 싶어서 이런 일들을 기획을 하게 됐는데요
무엇보다 여러분들 오늘 정말 자신의 이런 또 지식과 그 다음에
또 여태까지 진행했던 여러 가지 프로젝트
성과를 함께 해주셨던 우리 세 분께 여러분
큰 박수 먼저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또 여러분들 좋은 기회 때 이런 우리나라의 어떤 역사,
문화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또 일들로 여러분들
또 인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70분동안 너무나 감사드리고요
다음에 또 더 좋은 기획으로 여러분 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