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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로명의유래]하정 유관과 지봉 이수광
2008-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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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 이상배 위원/ 서울시사편찬위원회

1. 청백리 유관과 하정로
조선 초기 청빈하게 살았던 재상 유관(柳觀, 또는 柳寬)의 집터는 오늘날도 청빈한 생활의 대명사로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곳이며, 공직자들의 귀감이 되는 역사적인 장소이다. 이로 인해 그의 호를 따서 하정로(夏亭路)가 생겼다. 유관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1346년(충목왕 2)에 태어나 1433년(세종 15)에 죽었다. 본관은 문화(文化)이며, 자는 경부(敬夫), 호는 하정(夏亭), 시호는 문간(文簡).
공민왕 때인 1371년 26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시작하였고, 조선 건국 때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죄인에 가한 무리한 고문을 폐지했고, 궁정에서 잔치를 벌이고 술 마시는 것을 금했으며, 허례허식을 폐하자고 주장하였다.
은퇴 후 본관인 흥인문 밖에서 출퇴근하였는데, 간편한 사모에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니며 수레나 말을 쓰지 않았고, 초가집 한칸에 베옷과 짚신으로 담박하게 살았다.

2. 청백리란 무엇인가
관리들을 크게 둘로 나누는데 하나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며 자신과 가정의 희생을 감수하는 청렴결백한 청리(淸吏)와 일신의 영리와 일가의 번영을 위해 백성들을 현혹하고 가렴주구로 피해를 주는 부류인 탁리(濁吏)이다. 청리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부류를 청백리라 하였고, 탁리들은 오리(汚吏)), 혹리(酷吏) ), 장리(贓吏) 등이 해당한다.
청백리의 청백은 청렴결백(淸廉潔白)의 약칭으로 엄격하게 말하면 청백리는〈청백리안(淸白吏案)〉에 올라있는 인물들로서 작고한 사람들에 대한 호칭이다. 살아있을 때는 염치를 알고 근면한 관리라는 의미에서 염근리(廉謹吏) 혹은 염리(廉吏)라고 불렀고, 이에 선발되면 승진이나 보직에서 특혜를 받았으며, 죽은 후에는 그 자손들에게 벼슬이 내려지기도 했다.

3. 유관의 삶을 이은 이수광
유관이 살았던 집터에는 이희검이 살았고, 후에는 아들인 이수광이 살았다. 그는 새로 집을 짓고 유관이 우산을 펴고 비를 근근이 가렸다 는 뜻의 비우당(庇雨堂)이란 당호(堂號)를 지어 달았다. 이수광(1563-1628)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실학자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1582년(선조 15) 20세의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3년 후인 1585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지봉유설》, 《지봉집》, 《채신잡록(採薪雜錄)》, 《승평지(昇平志)-순천읍지》등이 있고, 《주역언해》와 《사 기》등을 교정하였다. 《천주실의(天主實義)》2권과 《교우론(敎友論)》 1권, 《속이담(續耳譚》 6권을 가지고와 한국에 최초로 서학( 西學)을 도입하였다. 《지봉유설》은 1614년에 편찬한 백과사전으로서 모두 20권 10책이다. 목판본으로 된 이 책은 그가 죽은 뒤 아들에 의해 1634년 출간되었다.

4. 지봉길과 문화유산
1) 동묘(東廟)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숭인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건물로서 보물 제142호로 지정되어 있다. 중국의 관우(關羽)의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임진왜란 뒤인 1602년(선조 34)에 세워졌다.
2) 안양암 석감마애관음보살상
안양암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동 130-2에 있는 사찰로, 그 안에 암벽에 있는 석감마애관음보살상은 1999년 11월 15일에 유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화강암벽 위에 조각된 결가부좌의 불상이다.
3) 동망봉(東望峯)
청룡사 동쪽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산으로, 세조의 왕위찬탈로 인해 영월로 유배갔다가 그곳에서 죽은 단종을 그리워하던 부인 송씨가 매일 산에 올라가 동쪽의 영월을 바라보며 명복을 빌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4) 청룡사(靑龍寺)
종로구 숭인동의 여승들이 거처하는 사찰로, 일명 새절승방이라고도 부른다. 고려 922년(태조 5)에 도선국사(道詵國師)의 유언에 따라 창건되었으며, 한성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 줄기에 있어 청룡사라 불렀다.
5)정업원구기비
1771년(영조 47)에 영조가 세운 비로, 정업원(비구니들이 살았던 사찰)의 옛 터라는 의미를 적어 기록한 비다.

[제작일시 : 2008.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