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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포럼-2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포럼-2부
2019-08-13
13:00~18:30
소회의실
음성ㆍ문자 지원
안녕하세요
어색한데 박수 한번 칠까요?
2부의 사회를 맡은 김수진이라고 합니다
오늘 2부의 주제가
일본군 위안부 증언 번역의 의의와 과제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라고 하는
이렇게 생긴 책이고요
이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2000년
일본군 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 한국위원회 증언팀에서
2001년에 초판을 냈고
2011년에 재판 증고판을 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올해 영어와 일본어로 번역이 됐습니다
초판이 나온 지
18년 만에 번역이 됐는데
어쨌든 이 번역이 된 일을 계기로 해서
이 국제학술대회도 사실상 조직이 되는 계기가 되었고요
그래서 오늘 이 번역을 계기로 해서
이 증언이라고 하는 것의 문제
또는 양예나 교수님께서
모두 말씀하신 것처럼
언어와 증언, 증언과 언어라고 하는 것의 문제를
조금 더 새로운 각도에서
18년이 경과한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고
새로운 문제들을 제기하게 되고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되는
그런 의미가 있는 컨퍼런스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를 맡은 저는 이 증언팀의 일원으로서 활동을 했었고요
이번에 번역 프로젝트에는 참여를 못했습니다만
이 프로젝트는 여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이 그렇지만
연구자로서 그리고 한 여성으로서
한 개인으로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학술적인 용어로 얘기한다면
인식론적인 전환 존재론적인 충격
그리고 깊은 성찰을 가져온
어떤 저희한테는 사건입니다
이런 사건의 경험을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공유하게 될
그리고 새롭게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고 계시는
후속 세대 젊은 선생님들과 함께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되어서
굉장히 감격스럽게 생각합니다
제가 오늘 이 세션을 준비를 하면서
앞에 1세션에서 말씀하시는 것들을 보니까
중요한 키워드가 몇 가지가 모이는 것 같습니다
기록과 기억,
그리고 자료와 증언,
그리고 마지막에 혼다 상원장님 말씀하신 것처럼
파워 오브 널리지라고 하는 것들이
굉장히 마음에 와닿는데
저는 오늘 이 세션에서 다룰 주제는
이 문제들을 관통하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냐면 도대체 기억이라고 하는 게 무엇인가?
기억이 혼자 하는 기억과 혼자 하는 기억이
함께 하는 기억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저희 증언팀에서는 듣기라고 하는 용어를 만들어낸 게 아니라
발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듣는 자가 없는 기억은 아무것도 아니고
역사로도 기록도 될 수 없고
역사에 기입될 수도 없다
라고 하는 문제의식에서
저희가 출발을 했었고요
그런 점에서 두 번째 도대체 알미란 무엇인가
저희는 저희가 이 증언 팀에서
처음 시작을 할 때
이미 다 알고 있는 거 아니냐?
뭐 다 알고 있는 거 아니야?
이런 얘기를 항상 들으면서 시작을 했습니다
도대체 알미란 무엇인가?
라고 하는 질문을
저희에게 깊이 던졌던 사건이고
지금도 여전히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정말 파워 오브 널리지라고 하는
알매 힘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알미가 만들어져야 하는 것인가?
라고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던졌던 그런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합니다
좀 서두가 길었는데요
네 분의 발표를 듣고
그리고 휴식을 하고
토론을 이어가겠습니다
네 분의 발표는
첫 번째 양현아 교수님께서
증언사집에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번역의 방법론이라고 하는
차원에 대한 발표를 해주시겠고요
그리고 김수아,
최기자,
양윤아 선생님께서 함께 준비하신
실제 영문 번역을 했을 때
어떤 문제들이 제기되었는가
매우 재미있는 얘기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좀 발표해 주실 거고
그리고 이 번역의 또 다른 공동연구자이신
최정무 교수님께서
위안부 증언을 영문으로 번역하는 것의 함의 부분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오신 김부장 선생님께서는
일본 사회에서 위안부의 증언을 듣는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관련해서
일본어 번역과 관련한 얘기를 이어 주시겠습니다
그러면 첫 번째로 양윤아 교수님의 번역 방법론과
그 의미에 대해서 청해서 듣겠습니다
박수로 받아 주십시오
네 안녕하십니까
다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제가 오늘의 자리를 준비하면서
생각했던 것이
저희 증언사집이 출간된 것이 2001년이니까
정말 18년 만에 외국어 번역을 시도하였는데요
그와 동시에 사실 증언사집이 갖고 있는 의미라든지
방법론의 내용이라든지 하는 것을
국내에서도 그렇게 널리 공개적으로 발표할 기회가
그렇게 많이 없었습니다
왜 없었는지는 또 좀 논의를 해봐야 할 것이지만
이번 번역을 계기로
또 이렇게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한일 합의 이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는
이러한 상황에서 또 한국과 일본
또 세계적인 동북아 질서의 흐름이 변화하는
이 시기에 저희 또 이 증언사직과 사직방법론
번역의 방법론을 함께
이렇게 발표하고 생각할 수 있는 자리가 생긴 점
대단히 뜻깊게 생각합니다
또한 이 자리를 마련하는데
재정적이고 공간적이고
모든 기초를 놓아주신
서울시 모든 담당자분들
또 박원순 시장님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그래서 저희가 오늘 펼쳐드릴 이야기에
또 오늘 이렇게 와주신 청중께서도
이 이야기에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 되셔서
함께 생산적인 생각과 토론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길 바랍니다
시간이 많지는 않아서
제 발표문에 기초해서
저는 ppt는 없고요
발표문에 기초해서
부분 부분을 읽어가는 방식으로 발표를 해볼까 합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연구와 모든 사회운동,
또 진실 규명과 정의 실현에 있어서
위안부 증언을 받는 역할은 심대합니다
무엇보다 사실과 진실 규명에 있어서
위안부 증언은 일종의 촉매제,
촉발제가 되어 왔고요
유행이나 많은 법정에서
증거자료로 제출되어 왔고요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정말 이름 없는 아시아의 할머니들,
고령 여성들이 역사의 주인이 됐다는 사실을
한국과 아시아,
세계 만방에 떨침으로써
오늘 많이 얘기하고 있는 집합기업
혹은 공공기업의 새로운 균열,
새로운 글쓰기를 했다라는 등등의
가칭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피해자 위안부,
한국에서 벌여진 위안부 피해자 연구도
아주 큰 의미가 있는데
역시 한국 사회의 1981년 이후에
과거 청산의 흐름,
민주화의 흐름,
여성운동의 폭발적 성장이라는 흐름 속에 놓여 있었고
여기서 김학순 등
여러 피해자들이 공개적으로 증언하시는
그런 용기를 북돋아주는 맥락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 많은 선배 연구자들의 노고 속에서
증언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증언 1집 1993년, 증언
2집 1997년,
증언 3집 1999년 줄줄이 외워지네요 이제는
저희 증언사 2001년 동시에
또 여순주 선생님께서
오랫동안 연구해 오신
또 같이
정신대 연구소 쪽에서 또 증언 5집,
2004년 증언 6집 등등
이 외에도 지역의 증언집,
일본 연구자들의 증언집,
미국 연구자들의 증언집이라고 된
증언 연구 등등이 많아서
또 중국에 잔류해 계신
중국에 남은 위안부들이라는 책이
두 권 나왔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증언만도
100여 건이 넘습니다
사회과학적으로 심층 인터뷰를 구수를 100건을 했다는 것은
정말 상당히 방대한 자료가
이미 증언에서 축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상당히 티피컬한 전형적인 모습,
비전형적인 모습들이 두드러지고
그것은 어떤 개개인이
이야기를 패브리케이트해서 만들어서
조작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자료들이
한국에 출연되었다
추적 추적되었다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아까 젊다는 말씀이 나왔는데
1999년 당시로서는 저희도 상당히 젊었습니다
젊은 연구자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증언팀이라는 팀을 만들었던 것이 1999년입니다
그때부터 새로 시작된 증언연구를 하여서
그것이 증언 4집이 되었고요
증언팀이 만들어질 수 있는 계기는
잘 아시다시피
2000년 12월에 도쿄에서 개최되었던
2000년 일본군 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이라고 하는
매우 긴 이름의 국제법정의 개최에
진상규명 차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위안부 증언연구는
한국에서 공권력 피해자 연구의 의미에서도
굉장히 의미가 있는 사례가 되고요
또 구술사, 여성사, 생애사
이런 측면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방법론적 측면이나
여러 측면에서의 사례가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제가 한 얘기가
고다운 페이지까지 쭉 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제 1999년 4월 모임을 하면서
스스로를 뭐라고 부르지 하다가
증언팀이라고 불러서 시작을 했고요
처음에 30명 정도가 시작하다가
마지막 편집까지 8명 정도가 남아서
끝까지 일을 마쳤습니다
저희 방법론을 방법론을 얘기를 하지 말고
그냥 번역의 방법론으로 넘어갔으면 좋겠는데요
그렇지만 또 증언사지 방법론에 대해서
우리가 언제 이렇게 발표를 했을까
생각을 해보면 하는 수 없이
저는 또 증언사지 방법론을 익숙하신 분도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발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사실은 최근에서야
이 발표문들을 쓰면서
다시 정리하는 새로 쓰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사실 지금 묻기에서 듣기로 하는 방법론은
어쩌면 평범하다 못해
지극히 당연한 원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묵기에서 듣기로라는 방법론은
다소 전복적인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합니다
사회과학에서도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라고 부르듯이
면접을 하는 사람,
질문을 묻는 사람이
면접의 주도권을 갖습니다
인터뷰임 면접을 당하는 피면접자들입니다
그렇고요
또 우리 실증주의의 여러 가지 경향을 가진 연구들에서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가?
라고 하는 틀 속에서
이 할머니가 진짜 위안부 할머니 맞나?
진짜 뭘 아시나?
라는 걸 약간 검토도 해가면서
또 문서자료와 교차역 같이 살펴보면서
증언을 듣는 방법론이
당시 지배적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증언팀은 당시 뉴 제네레이션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고
또 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저희는 그것이 아니다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의 증언이 아니라
우리가 unknown,
모르는 영역으로 끌고 가는 것이 증언이다
증언자들은 정보를 제공하는 인포먼트가 아니다
우리가 몰랐던 범죽까지 알게 해주는 사람이다
라고 하는 것이 묻기에서 듣기로의 방법론입니다
그렇다고 안 물었겠습니까?
저희가 들으려면 묻죠
듣고 나서
그런데 그때 그랬잖아요
할머니 그건 뭐예요?
라고 당연히 묻습니다
우리가 호흡이 들숨과 날숨이 있죠
어떻게 들숨만 하고
날숨만 합니까?
다만 자기의 호흡을 들숨이 먼저라고 생각하냐
날숨이 먼저라고 생각하냐
이건 큰 차이입니다
내가 들었기 때문에
물을 수 있는 거지
내가 물었기 때문에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이건 여러 가지 의미를 갖게 되는데요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러면서 사실은 기존의 위안부를 바라보는 틀이 당연히 해체된다고 할까요?
그 틀에 의거하지 않는 증언조사를 하게 됩니다
그 부분이 실증주의 연구라고도 관련이 되는데요
시간이 없으니까요
저희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도 중요했지만
그 무슨 일에 어떻게 증언자가 의미를 부여하나
내가 아팠다가 아니라
그 아픔을 어떻게 표상하고 표출하나
이거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방법론적으로 녹취록의 작성이라든지
녹취록의 이런 모든 사인들을 어떻게 남기느냐가
저희의 죽고 사는 문제였습니다
두 명이 한 팀이 돼서
증언자들을 다 만났는데요
증언팀들은
한 명은 주도하고
한 명은 서포트하면서
또 그 다음 면접에서는
거꾸로 역할을 바꿔가면서
한 사람 녹음기를 가지고 가면서
이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두 명이 들은 방식이 달라요
녹음했는데도 달라요
녹취록을 다르게 풀어요
이 문제를 서로 싸우면서
그때부터 풀어졌기에 녹취록을 들리는 대로 푼다?
이거는 매우 매우 소박한 생각이었다
이것만 해도 참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이 있는데요
혹시 궁금하시면
이 책의 서론에 다소 소개를 해놨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실증주의의 문제라기보다는
무슨 사실이 있었는가를
고백하는 게 증언이 아니고
거기에 대한 자기 재현이라는 데 주목했고
이 자기 재현의 틀을 총체적으로 재현해보는
그런 아주 큰 포부를 가지고
증언의 전체 틀을 생애서사로 보기 시작했고
생애서사와 그들의 관계 구술체
이런 것들을 들여오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피해는 단지 위안소에서 피해해서
크라이막스를 이루는 것도 아니고
개개인마다 중요한 피해와 사건과
또 그 고통 속에서도
어떤 기쁨과 극복의 서사
이런 서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바로 Map OF Memory라고 하는
저희의 발견인데요
사람마다 기억의 지도를 갖고 있었고
그것은 우리 전형적인 위안부상과
꼭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당시로서 한다는 것은
다소는 가슴 떨리는 얘기입니다
한옥선 군의관 간의 깊은 사랑
사랑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그 증언이 모두 다 상을 하랑 외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요
그거는 일본군과의 협력을 얘기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봉사를 얘기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중요한 관계가
식민지와 전쟁 속에서
어떻게 훼손되고 파손되고
그러나 평생을 그 관계를 가슴속에 끌고 오는 외
또 자식을 낳았기 때문에
뭐 이런 아주 복잡
다단한 증언 구조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저희가 증언을 선별하거나 판단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애를 썼고요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인생사건 중심으로
증언을 제안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미시사,
개인사라고 부르는 것도 어폐가 있습니다
저희는 미시사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민족주의 서사에서 떠났다는 건
저희는 말할 수 있지만
미세사를 한 것도 아닌 것이
가부장제의 식민지 전쟁이라는 거대 담론,
또 거대 구조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했다라고 하는 생각들,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녀들의 고통에 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면서 재연을 했고요
그렇습니다
그 다음 부분은 아마 이제 구술체에 관한 부분인데요
이거 대단히 중요하고 재미있는데요
이 텍스트가 문자 텍스트지만
약간 악보와 같습니다
그러니까 음악을 잘하는 사람은
음표를 보면서
걸스도를 벌써 노래와 리듬이 떠오르듯이
구수를 잘 읽으면
속으로 웅얼거리는,
눈으로 읽는 텍스트가 아니라
말로 웅얼거리는 텍스트를 읽어야 하는 것이죠
탕탕탕탕 콩콩콩콩
지금 보니까 이게 빗소리만이 아니라
총소리이기도 한 것입니다
콩콩콩콩 탁탁탁탁 하는데
피는 오고 해서
이 피가 그 당시에 콩콩콩 탕탕탕탕해서
이 할머니의 불안감과
앞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대화시키고 있는 효과를 나타내는데
또 살아나시는 그런 스토리입니다
저희는 이걸 위해서
다양한 기호를 개발을 했었고요
그 당시에 녹취록에서,
녹취록을 하면
할머니가 한꺼번에 그 얘기를 해주는 게 아니고요
1차, 2차, 3차,
4차,
5차,
10차 면접까지 가는 걸
그 스토리를 붙이고 뛰면서,
붙이고 뛰면서
이야기들을 전체 나레티브로 만들어갔던 겁니다
저희가 가피라는 부분은 없습니다
방법론의 중요한 부분인데
이 구슬 텍스트가
이번에 미국에서 번역을 하면서
아마 죽도록 고생을 하셨던
이 아이구 한숨
이걸 아이구로 써야 된다
그냥 싸이로 써야 된다
이 논쟁 지점에서 아마 많은 고통을 받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쨌든 구술 텍스트 부분이
지금 방법론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이 들고요
마지막으로 저희 방법론의 가장 처음이자
마지막 방법론 하나만 들려면 공동연구입니다
사실 사회과학에서 공동연구는 많이들 했습니다
1, 2, 3집도 다 어떤 면에서 다 공동연구십니다
저희의 공동연구는 역할을 나누어서
함께 작업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저희 방법론 자체가 공동이라는 것입니다
서론을 쓰는 것이
매 회의마다 회의록에 입각해 있었고요
저희가 윤순만한테 거먹소라는 별명을 붙이고
안벅순한테 무스탕 할머니라는 별명을 붙일 수 있는 건
제가 안벅순 할머니를
사실 그때까지 한 번도 못 만났지만
그 많은 녹취록과 회의록 속에서
암법수는 무스탕 할머니다라는
그 정다움과 그 친근감을 갖게 되는 겁니다
저희가 서로에 대한 상호 이해를,
상호 주관성을 증언팀 안에서 교류하면서
이 할머니들이라는 어떤 저희도 불안한,
한 인간을 재현하는
그 불안한 또 위안부라는 분을 재현하는 불안감을 같이
공동연구로 손을 잡고 극복해 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독자들에게
이제 읽힌다는 마음으로
편집본을 가지고
가상 독자를 만들어서 읽혀가면서
증언 편집을 하였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공동작업은
증언자와 증언자, 말씀을 해주셨던
할머니와 증언팀 간의 공동작업입니다
할머니들이 이거 하면
일본에서 돈 주는 거야?
이거 하면 일본에서 사죄하는 거야?
그 말씀 수도 없이
저에게 물어보셨고
저의 할머니 그렇게 되기 위해
하고 있는 증언집입니다라고
말을 해도 그렇게 하기 위한
2000년 법정을 위한 것입니다라고 말을 해도
그러면 결국은 일본이 사죄배상 하겠네
이렇게 결론을 맺으시면서 얘기를 하셨고요
그러나 사실은 제가 생각하는 저의 생각인데
더 큰 결실은 이것을 하는 과정에서
할머니들은 점점 더 힘이 세지시고
점점 더 영어로 하면 인파워되는 거죠 힘이 붙으셨고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1차 면접 끝나고
녹취를 푼 다음에
2차 3차 면접을 하면
전에 말씀하셨던 거의 외워서 가요
너무 싸우면서 녹취록을 풀었기 때문에
할머니 그 골목 뒤에 뭐 있었다 그랬잖아
그럼 할머니가 어?
그거 어떻게 알았어?
이러십니다
이게 뭡니까?
그 골목 뒤를 기억해준
최초의 사람을 만난 거예요
그 골목 뒤가 뭐가 중요해요?
할머니한테 너무 중요한가?
위안소의 위치가 폭격 때문에
한번 바뀌고 있기 때문에
그거 어떻게 알았어?
할머니 때문에 알았지
그러면 그 다음에
그분 더 상세하고
더 자신감 있게
우리 김성래 선생님 말씀 맞다나
기억할 만한 이야기가 돼서 인파워되고
그게 조금은 치유의 길로 가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 증언들이 지금 오늘 우리에게
그분들은 가셨어도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 이제 영문 번역의 진행과 절차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증언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동안 주로 증언은 많은 경우
한국어로 회자되었습니다
물론 일본을 중심으로
여러 증언이 번역된 것은 아닌데요
제가 잘 몰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통째로 증언집이 이렇게 번역된 사례는 많지 않고
특히 영미권에서는 키스 하워드라는 영국의 음악학자인 것 같습니다
민속 음악학자가 제 1권을 제목으로 The True Stories OF Korean Comfort
Women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을 1995년에 한 바 있고
그 이후 영미권에는 다시 번역이 되지 않았습니다
가끔 사람들이 왜 증언사집 조사 열심히 하셨습니까
좀 영어로 번역 하시지 그래요
라는 질문 때때로 한 2년마다 한 번씩 받았는데요
제 답은 이 번역을 누가 하시겠어요 였어요
그런데 작년에 마침 여가부에서
이제 증언사집 번역에 대한 용역 사업이 공모가 되었고
그래서 저희가 이제 그 사업을 추주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가 오랫동안 알고 있고
존경했던 유니버스 더 브릿지
캘리포니아 어바인의 최정문 선생님과 접촉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최정문 선생님,
제가 아까 쉬는 시간에도 얘기했지만
갑자기 그야말로 등장을 하셨던 것입니다
이 역사의 장에
그래서 작년에 저는 항상 이 증언 번역은
한국 팀과 영어를 굉장히 잘 아는
또 한국 역사를 아는 영어권 팀이
공동 작업해야 한다는 순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증언의 원본이 녹취록이거든요
증언의 원본 증언집의 원본이
이것도 증언집의 원본이지만 한국어로
이거는 원본이라기보다는
원본에 파생한 번입니다
원본은 우리가 만들었던 녹취록이 훨씬 더 깁니다
어떤 피해자들은 한 100페이지 가까이 정도가 된 에이퍼로
그런 녹취록을 갖고 있습니다
그게 원본입니다
번역하는 사람 전문가들은 그걸 보고 저본이라고 부르더군요
바탕할 때의 저자를 써서
그 저본의 의미가 확실하면
번역은 그런데 대개는 그 저본의 의미가
불확실하거나 흔들린다
그 말은 굉장히 정확했던 게
저희한테 저본은 녹취록이지만
사실은 외안부들의 말 그 자체입니다
그러면 그 말 그 자체는 녹음됐다고는 하지만
이미 저희의 기억 속에 밖에 없고
정말 허공에 있는 말일 수도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정말 번역에 곤란함과 도전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더 큰 도전은
작년에 여가부에서 용역을 수주해 주신 건
참 감사한 용역을 주신 건
참 감사한 일인데
시간이 너무 짧아서
뭐 길어야 한 4개월의 시간 동안
저희가 이제 이 증언번역을 완료해야 했습니다
이게 지금 그 번역의 보고서로
완역본을 보여드리고 있어서
너무 기쁜데요
어쨌든 완역본을 낼 수는 있었습니다
아직 책이 아니라
그냥 가 초본의 번역본입니다
이 번역본을 낸 거를
간단하게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말씀드린대로 UCI, 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 팀과 서울대 여성연구소 팀이
공동연구로 진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서울대 팀은
주로 증언자가 본래 말했던 의미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해석하고
검토하는 것을 주작업으로 하였습니다
물론 그 외에도 역사 확인 등등이 있었지만
그때 이 할머니가 무엇을 멘트했는가
그게 가장 저에게 중요한 과제였고요
그 멘트가 보통은 한계도 아니고
중의적일 수도 있고
할머니도 좀 애매한 표현을 썼을 수도 있습니다
그걸 저희가 최대한
그 당시로서 다 가다듬는 거지만
뒤에 공동산이니
이런 사례가 나올 텐데요
오히려 한국에서는 사투리와 지방어라도
공동산,
징징지가루 당시로서
우리가 몰랐을 수도 있어요
근데 뭐 어떤 사투리는 알겠지 라는 사투리에 대한
되게 넓은 관용이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같은 한국어라고 보니까
근데 그게 영어가 되면
더 이상 관용할 수 없습니다
징집가로 뭔지
영어로 해석해 내야 되고
공동사는 뭔지 해석하지 않으면
커먼 마운트는 아니었거든요
공동사는
근데 공동사랑 공동묘지였습니다
그런 것들을 이제 밝혀가야 되는 게
이제 영어 번역의 과제였어요
UCI팀으로 말할 것 같으면
뒤에 말씀 주시겠지만
My Ringue Allerty
그러니까 한국어와 영어가 다 탁월한 뿐만 아니라
그거 갖고 되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한국 역사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까지 겸비한 팀을 만났고
저희 증언팀은 이제 오리지널 증언팀과
원래 증언팀과
또 새로 영어의 능력이 탁월하신 영어팀 두 사람이 들어오시게 돼서
이렇게 뭐 저희 나름으로는 드림팀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하고
일단 용감하게 3,
4개월 동안 영어 텍스트를 생산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UCI 팀에서는
어떻게 작업을 하셨는지는
말씀을 하실 거고요
저희 서울대 팀의 작업은 정말 다단계로 이루어졌습니다
그거 뭐 이렇게 증언 보면서
UCI 팀의 번역도
이미 초판인 이미 훌륭하신데
그걸 뭘 그렇게 애쓰고 해서
쭉 보면 되지
보고 이렇게 조금 이상하다 싶은 걸 체크하면 됐을 거 아니야?
라고 저한테 물어요
너무 모든 일을 열심히 하지 마세요
이렇게 해서 그냥 이렇게 UCI 팀도 안 그래도 훌륭하신데
그냥 체크해서 보세요
그런데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나 팀 일이 다 단계였는데
꼭 그림을 한번 보시면 좋겠습니다
서울대 팀의 작업 절차는 적어도 5단계를 갔는데요
처음에 UCI에서 이렇게 해오신
최갑순 할머니 처음에 왔는데도
너무 훌륭해서 그냥 보자마자
눈물이 나는 거예요
이제 할머니가 영어로 스피커 하시네
그래서 우리가 I can speak도 봤지 않습니까?
최갑순도 I can speak네
너무 좋은 거예요
아이고 그러면서 술값은 지난 전라도 말이 나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런데 전혀 또 그렇게 될 수가 없는 사람들이라
또 녹취록 증언지,
녹취록 증언지 이러면서
저희 세 사람 이제 최 기자,
김수아,
저희 선생님 이렇게 세 명이 해가지고
일단 체크한 게 1단계
다 고쳐서 1단계
2단계는 우리 세 명이
온라인 회의에서
또 어떤 접수를 해
우리끼리 세 명 조율해서
그게 2단계
그래서 우리끼리 조율한 걸
영어 두 사람,
영어 되게 잘하는 두 분한테 또 보내요
그리고 고쳐줘야 되기 때문에 반영해주자
그래서 그걸 하면
거기에서 또 3단계,
거기서 반영해요
4단계 오프라인 회의,
우리가 4단계 회의를 또 해요
다 같이 만나서
아직 해소되지 않은 전체 회의해요
그런데 거기서 다 안 끝나요
각주나 맥락이나
이게 영어 독자들한테 가면
또 다른 텍스트가 돼버릴 거였기 때문에
이런 걸 만들어가면
또 무슨 우리 박정희 선생님,
강성희 선생님 또 가서
자문 이렇게 하는 게
5단계, 6단계였습니다
그렇게 작업을 했기 때문에
아주 여러 차원에서 고민을 하게 됐는데요
그다음 페이지부터는
그래서 구체적인 성과와 과제들을
몇 가지만 지적을 하겠습니다
한국어와 영어라는 다른 언어 책인데요
이 뒤에 권명하 선생님도
문턱이라는 표현을 쓰신 게
이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일단 I, You,
We,
They
이런 주어가 너무 다릅니다
그리고 한국은 주어 없는 건 너무 많은데
숫자도 너무 애매한데
여기는 다 달아줘야 되고
분명히 이건 지금 WE를 얘기하고 있는데
그 영어로 보면 다 you, they예요
이런 문제들
또 하나 뒤에서 또 김수아 선생님께서 말씀 주실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이 구어체의 감탄사, 간투사
이걸 그냥 I.goo,
A.I.G.O.O 아무도 못 알아듣는
영어로 갈 건지
최종문 선생님 아니다
그거 다 알아듣는다 하시니까
또 그렇게 갈 건지
이런 조정이 필요했습니다
제가 여기서 하나 좀 소개해드리고 싶은 건
이 Chain OF Translation이라는 거예요
이게 좀 이번 번역에서
제가 좀 크게 느낀 부분이에요
뭐냐면 증언사집에 그냥 한글로만 들어갔던
외국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러시아어를 들었다는 거예요
할머니가 전쟁 끝나고 나서
또 중국어를 들으셨다는 거예요
또 일어는 많이 들으셨죠
위안소에서
그거를 갖다가 근데
저희가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도 부족해서
그 외국어를 다 번역을 못하는 거예요
자 봅시다
니나 지자 호아 니네 지자 호아 하면서
니노와 시세
여기 지금 혹시 보이시죠?
몇 페이지입니까?
80페이지입니다
조자우 깨오 짱가 깨오 짱가 이런 표현을 막 하시는 거예요
죄송합니다
그러면 좀 이제 진정성을 살리기 위해서
그러면 우리가 버려야 되는 증언이잖아요
근데 안 버린 거예요
안 버리고
녹취를 달아 놓은 거예요
그냥 들리는 대로 일단 푼다
이 부분은
최대한 불리는 대로 풀고
할머니한테 몇 번 말씀하시게 해서 해놨잖아요
그래서 그걸 증언 집에 실었습니다
이렇게 중국 사람을 만났다
나한테 좀 나를 살려달라는 거예요
mercy를 지금 구하고 있는 중인 거예요
나 좀 살려주세요라는 표현인 것 같은데
우리도 그건 알지만
그 당시 중국 번역까지 유려하지 않았어요
뒤에 윤순만
방적 공장에서 군인들 옷을 만들다가
위안소로 끌려가신 분인데요
이 분은 이 방적 공장에서
일본 노래 만난 거예요
이거는 좀 더 우리 김 부장님이
고고와 고꼬로노 오또
나라 기미와 이렇게 막 들어갑니다
이런 것들을 우리가 모르고 밝히고 있는데
이번에 UCI 팀에서는
그거를 번역을 해오신 겁니다
자 그 지금 두 번째 노래는 거기 보면 신척영이라고 하는
니쥬마 가까미 라고 하는
그 당시 40년대 회자되었던 노래 같더라
라는 것을 밝혀오니
아까 우리 앞에서
우리 김조라 선생님들 팀에서 하신 거와 같이
UCI의 국제적인 감각이자 이야말로
그것이 다 찾아내서
그 당시 러시아와 중국을
이렇게 막 찾아낸 겁니다
제가 이걸 보면서
참 이게 참 성과라고 느끼는 것은 뭐냐하면
저희들이 먼저 20년 거의 20년 전에
녹취록을 들어서
이걸 기록으로 남겨놓은 것 그랬죠
물론 이제 할머니가 얼마나 놀란 거예요
자기가 모르는 외국어를 기억해 놓은 거예요
기억해 놔서,
뭐가 기억이 부정확하세요?
기억해 놓은 것을 기록했다는 것
두 번째는 이 텍스트를
우리 증언팀에게 넘겨줬다는 것
손녀뻘인 우리들에게 넘겨줘서
우리가 기록했다는 것
그러자 다시 그 다음 세대뻘인
우리 UCI의 팬들이 또 젊...
코트윈 코트 젊으시거든요
선생님 말고 젊으시거든요
그분들의 또 중국에서 자라나
일본에서 자라나
이런 분들이 또 떡하니
이제 할머니들의 기억이
이제 그 후대에 전수됐을 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 다시 태평양을 건너 번역되었더라라는 것이
저는 이번에 번역을 기억의 사슬,
기억의 손을 맞잡고라고 이름을 붙여갔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새로운 독자,
영어 독자권의 상상 부분인데요
앞으로 누가 이걸 읽을 것인가
저희가 증언집을 만들 때
이걸 한국어로 읽을 수 있나
굉장히 검토해서
좀 이렇게 훨씬 쉽게
여러 가지 장치를 넣었어요
각주나 뭐 어떤 이런 괄호 안에 넣는 거 다
그건 저희가 넣은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제
만약에 영어로 출간될 때
이때 각주나 그런 부분에서
이제 캘리포니아나 미국
혹은 미국을 넘어서
저도 세계적인 여러 인권기구,
국제기구,
법정,
NGO,
연구소 다 볼 수 있는,
다 회자될 수 있는 정도의 증언 번역 출간되기를 강하게 희망합니다
그런 상상적 독자로 생각하면서
김은실 토론자님 말씀대로
어떻게 말을 걸어야 될까,
말을 붙여야 될까에 대한
많은 고민과 노력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이에 대한 많은 서울시와 같은
우리 지자체나
우리 국가, 연구소 등에서
많은 지원이 필요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이제부터의 증언은 많은 경우
사후 증언이 되어 버립니다 돌아가셨지만
이들의 목소리가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연속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음악처럼 들리네요
저는 발표가
그래서 다른 건 첨언할 필요 없는 것 같고요
전반적인 번역 방법론,
작업 과정,
작업 과정 자체가 가지는
매우 중요한 여러 가지 차원의 의미들,
이런 것들을 짚어주셨습니다
두 번째로는 김수아 선생님께서
세 분의 작업을 대표해서 발표를 해주시겠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증언의 영문 번역에서 제기된 여러 쟁점들,
이해 가능성과 진정성 사이의 긴장,
발표 듣겠습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예 안녕하세요 김수아입니다
이 발표는 양현 선생님과
최기자 선생님과 함께 준비했고요
제가 대표로 발표를 하게 됐습니다
최기자 선생님은 전체 조직 때문에
계속 일이 있으셔서
제가 대표로 소개를 해드리게 됐고요
지금 저 발표 자료집 82쪽에서
선생님... 양현수께서
발표에서 말씀 안 하셨는데
사실 저희가 6월에 갔을 때
조은하 선생님이라는 UCI에 번역 작업을 하셨던 박사님께서
증언을 읽으면
그녀라는 사람 느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했고
저희가 다 그 질문을 굉장히 많이 생각을 했었는데
특히 저는 더 그랬던 게
여기 자료집 74쪽에 가운데 인용해 주신
김복동 할머니 증언이
그러니까 그 인권을 동명이인이신 분이신데요
제가 증언을 뵙고 체록하고
편집하고 했었습니다
근데 그때 조은하 박사님이
이 부분을 읽어주셨어요
근데 그 읽어주신 거랑
제가 들은 목소리가 사실은 다르지만
근데 제가 그때 느꼈던 건
아, 조은하 박사님의 머릿속에
혹은 그 마음과 어떤 그 속에
이 증언집에 그 해당 증언을 읽으면서
일종의 만들어내신 할머니의 목소리와 말투가
그거 제가 거기서
제가 직접 제가 들은 목소리랑 달라요라고 말하는 건
사실 아무 의미가 없는 얘기였고
UCI 조은하 박사님께서 읽어주셨을 때
그리고 사실 그게 번역이고
저희가 계속 얘기했던 증언 새롭다고
사실 저희가 재연하는 거고
재연이 전달돼야 되고
독자들께서 이해해주셔야 되고
이런 과정이라는 그 겹겹의 과정을
조은하 박사님이 딱 이걸 읽어주셨어요
짜게 지는 애 그렇게 웃어요
이거를 딱 읽어주실 때
그 생각을 되게 많이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 증언 번역 작업과 관련해서
사실 그 지금 쟁점들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지금 말씀드린 이런 재현과 증언을 상상된 독자들한테 전달하는 과정에서
이게 뭐가 틀렸다,
더 맞다, 좋다
이런 거라기보다는 어떻게 우리가 독자를 그 독자들이 이해하는 할머니의 목소리들이
어떤 모양일까를 저희도 한번 상상해보고
근데 그 상상 속에서
혹시나 사실관계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 보면
계속 얘기가 나왔던
영어권 독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우리가 갖고 있는
그 집합적 감각이라고 하는 게 너무 달랐어요
제일 어려웠던 부분이
대의와 위의 부분이었고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한번
저희는 얘기를 드려보고 싶습니다
정말 여러 가지 쟁점들이 있었거든요
최기자 선생님이 자꾸 빼먹었다고 아쉬워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할머니들께서 말씀하실 때 짐작하시겠지만
굉장히 많은 말들이 거시기로 시작해서
거시기로 끝날 때가 있는데
그거는 전부 IS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든 그 번역어를 적절하게 찾아야 되는데
그래서 여기 시야에서 IS으로 했지만
우리는 그것이 다른 것이다
라고 하는 게 틀렸다
맞다의 문제는 또 아니고
이런 점들을 함께 얘기해보고
이게 독자들에게 전달될 때
우리가 어떤 독자를 상상할까라는 점을 먼저 놓고 얘기를 드리고 싶어서
준비한 발표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좀 사소해 보이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만
그런 얘기들이고요
그래서 저희가 지금 사실은
양현석께서 거의 말씀하셔서
좀 짧게 넘어오면
저희가 계속 진정성과 이해 가능성이라는 것을 두고
증언 작업에서 고민을 했었고
시각적 기호를 두면서
이게 말 자체를 그대로 옮긴다기보다는
이게 김수진 선생님 표현대로 하면
에스프리라는 표현이었는데
오히려 말과 말 사이에는
휴직이나 이런 것뿐만 아니라
말이 되지 않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이런 고민들이 있었던 게
저희 증언사집에 있는 편집 기호들하고
그다음에 녹취록 업무는
어떻게 만들어내는가에 관련된 작업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게 그냥 영문으로 가운데 줄표를 넣을 거냐
말 거냐의 문제라기보다는
저희가 줄표를 넣겠다고 결정하는 게
아까 그 정말 잠깐 읽어주셨던 비에 대한,
비가 오고라고 하는
그 기호들이 사실
저희가 굉장히 고민했던
진정성의 재현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가를 가지고
고민을 했던
그런 기호들의 표현이었고
그래서 이런 증언자가
자기 정착을 지원하는 방식이나
언어구사와 정조의 그런 총체적인 분위기 속에서 드러나는 그런 문제들을
이 한국어 증언집에 담으려고
굉장히 고민을 했었는데
이게 이제 다른 언어로 옮겨갈 때
이 부분이 옮겨질 수 있는지
혹은 옮겨지는 게 필요한지
혹은 옮겨지는 게 중요한지
등등을 저희가 고민하게 됐었던 과정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 주신 번역보는
너무 훌륭하고 재밌고
그리고 정말 고민이 많이 담겨져 있으셨던 부분인데
그 부분에서 예를 들면
저희가 뒤에도 말씀드리겠지만
제일 크게 말과 말 사이 휴직 기간을 두기 위해서
저희가 일부러 세 칸씩 띄워놓고 했던
시각적으로 그런 거는 사실 영문증언집에 그렇게 들어갈 수 없는 노릇이었거든요
번역이 그렇게 들어갈 수 없는 노릇이라면
그런 게 저희한테
처음에 그 고민을 했던 것은
어떤 의미였고 번역될 때는 어렵다고 하면
왜 어려운 거고
혹은 어떤 방식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지 아닌지
이런 고민들을 계속 했어야 되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어로 이걸 전달해야 하는가
이거는 사실 저희 서울대 팀 내부에서의 논의랑
사실은 연결이 됐었는데요
양영진 교수님 앞에서 잠깐 말씀하셨던 것처럼
독자들은 여기에 익숙하지 않을 텐데와 플러스
이제 쓰는 영어나 간습이나
언어 간습이 굉장히 다른 젊은 독자들일 경우도 있고
그다음에 아이고 같은 게 대표적인 거지만
어쨌든 이해 가능성이라고 하는 게
결국은 저희 안에 있었던 고민이
현대 영어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가 돼야 되는가
이걸 읽을 것으로 예상되는,
뒤에 최정훈 선생님 발표가 나오는데
지금 10대 혹은 20대 학생들의 교재로
교과서에 어떤 참고자료를 쓰인다고 할 때는
그 학생들이 쓰는 말,
그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
그냥 직관적으로 이해 가능한 말로 옮기는 게
번역의 목표여야 되는가?
내용을 전달하면 되는 거지 뭐
그거가 번역 작업에 중요한 것이 아니면 다른 목표를 저희도 세워볼 수 있는 건지
그 자체를 그냥 계속 질문해 왔던 과정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것 때문에
반드시 필요했던 몇 가지 저희가 서울대팀에 할 수밖에 없었던 작업들에
제일 중요한 건
사실은 설명주를 생성하는 작업은 정말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특히나 맥락과 정보와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는 독자들이 읽을 거라고 상상했기 때문에
저희가 그 사례로 말씀드리는 게
지금 92쪽부터 93쪽까지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증언자들께서는
피해상 겸손님께서는 손님
이런 표현들을 그냥 자연스럽게 쓰셨습니다
쓰실 수밖에 없는 거였고요
그렇게 익숙하게 계속 사용해 오고
그 당시에 위원소에서 사용하던 용어들을
그대로 반복하고 계시는 경우였는데
이럴 경우
그냥 저희가 그대로 커스터머
이런 식으로 그냥 해버리면
그리고 그거를 아무런 설명 없이 그대로 둘 때 생길 수 있는 오해나
이런 것들을 막아야 했는데
이 부분은 사실은 저희가 반드시 서울대팀이 할 수밖에 없는 작업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위안부 문제에 모르는 독자들이
반드시 이해할 필요가 있는 거
이 말은 왜 이렇게 이 시점에 이렇게 쓰이는가
그리고 오해하면 안 되는 영역들은 무엇인가
라면 각주를 생성하되
또 이게 완전히 연구 논문이나 해설서는
아니기 때문에
어떤 중간점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인데
오해를 막으면서
동시에 또 너무 증언집인데
또 각주나 연구 자체가
너무 길어져 버리는 걸 막기 위한
그런 중간적인 성격을 찾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었고
그 사례로 저희가 만들었던
한국어 원문은 94장,
그쪽 아래 각주 8번에 있고
이걸 번역을 한 부분은 이 예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각주들이
너무 많이 들어올 수는 없으나
저희가 이런 부분들을 세밀하게 찾기 위해서
그 모든 증언들에서 관련될 수 있는 부분들을 찾았습니다
그런 사례들이 굉장히 유과학이라고 표현하신다거나
이런 것들이 좀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찾아내서
각주 혹은 설명, 혹은 대괄호 설명 같은 걸 통해서 일을 하기 위한 부분이었고요
그다음에 각주의 절반 정도는
이런 역사적 사실과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알리기 위한 거였고
또 저희가 생성한 각주의 다른 반 정도는
아까 잠깐 언급하셨던 예인데
그 사투리 표현에 있어서
우리가 원문이라고 말하면 안 되고 증언사집에
이게 사투리로
정확하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모르겠지만
이런 거라고 추정된다는 식으로만
저희가 설명을 해뒀던 게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그냥 번역팀에서 UCI팀에서는
그냥 노란색으로 하이라이트를 해서 보내실 수밖에 없었어요
왜냐하면 대응을 찾을 수도 없으실 뿐더러
이게 무슨 말인지조차도
사실은 모르겠는
그런 단어들이 아주 많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노란색 하이라이트를 해서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면 저희가 그거를 정확하게 공동산도
그 노란 하이라이트 하나예요
징집가루도 노란 하이라이트였습니다
그래서 그거를 저희가 그때부터 다시 추적을 하는 작업을 가졌습니다
그러니까 저희는 이거를 한국어 증언사집에서
그대로 뒀던 것은
맥락상 이해가 가능했기 때문에
징집가루를 묻혀 먹었다고 하셨으니까
그때 전쟁 때 먹을 거 없었을 때
뭔가 가루를 내서 드셨나
보다 라고 하고
저희는 넘어갔던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쓰실 수는,
번역을 그렇게 하실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명칭과 내용을
저희가 다시 수소문을 계속 했어야 했어요
그래서 여기서 최 기자 선생님의 넓은 인맥과
이런 걸 정말 폭넓게 동원하여
저희가 온갖 사투리와 지역어들과
어른들의 말씀,
이게 또 징집가루 같은 경우는
사실은 지금도 사용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적으시다고 해요
너무 옛날에 어르신들만 사용하시던 말씀이라
기억하시는 분들이
현재 많지 않은 언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보리나 쌀을 마지막까지 털면 남은 가루입니다
사전에 등록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거를 이제 어떻게 설명할지를
저희가 각주를 생성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설명조 작업은
이런 큰 두 가지
서울대팀의 증언집이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
이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했어야 하는 작업은 이게 있었고요
그다음 이거는 또 역시 이것도 이해 가능성과 관련된 것이긴 한데
저희가 처음에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습니다
이게 저희가 영알못이라,
저는 이거 위인 것 같은데
대희라고 쓴 게 영알못이라 그런 거죠
영어를 몰라서
저희가 이상하다고 하는 거죠
처음에는 그렇게 조심스럽게 하다가
나중에는 저희 팀에 영어하시는 분한테도 아니다
이거는 대희가 문법적으로 맞다고 해도
의미적으로 위니까
위로 바꿔달라
이렇게 조를 정도로
나중에는 쟁점이 됐던 부분이에요
최갑순 할머니 증언 중에
코트나 하우스웨어나
두루마기 같은 것들에 대한 얘기고
여성들의 복장에 대한 얘기인데
그때 당시 위안소의 상황을 보여주는 그런 표현인데
그걸 그냥 그땐 그랬어
라는 식이니까
영어로는 데인 거죠
그땐 그랬어
일반 주어가 되는 거지만
저희한테는 그냥 우리가 그랬다고
명확하게 집칭해 주지 않으면
그다음에 또 한편으로는 그냥 할머니께서
그때 내가 무슨 검사를 받았어
그러면 당연히 영어감각에서
내가 받은 거니까 아이지만
이제 우리는 위안소의 집합적 성격을 생각한다면
이거는 그분만 받으신 게 아니라
우리 위안부 전체 경험이니까
이런 거는 또 위주어로 하는 게
오히려 영어 문법적으로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게 저희는 위안소의 성격을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해서
위로 바꿔달라고
이런 얘기들을 저희가 하게 됐었던 부분이거든요
그리고 이것도 같은 예인데
차비가 없어서 기차를 타는
그 증언 장면도
그냥 그대로 번역하면
원래 한국말은 주어를 안 하시니까
그땐 차비도 없었어
그냥 이거고
그러면 당연히 영어 감각에서
내가 차비가 없었던 건데
그때는 우리들은 아무도 차비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그런 부분들
저희가 나중에 우겨서 넣었습니다
영어로는 정말 틀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희는 이런 집합경험 주어 같은 게 좀 필요하다는 생각들을 했었어요
그래서 이게 어떤 논의드릴 수 있는 사항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요
또 주인네 같은 경우에도
저희는 그냥 알아듣는데
사실은 영어는 단수복수를
주인네가 한 명인지 두 명인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지만
그걸 HE, she, they
이런 거로 명확하게 지칭해줘야 되는데
저희가 그걸 확인할 수 없어서
가능하면 녹취록 원문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증언 4집이 실리지는 않았지만
녹취록을 확인해 보니까
그때 위안소의 주인이 둘이었다고 말씀하신 경우
복수로 찾아 놓고
그런 게 없었을 경우는
그냥 단수로 놓기도 하고
이런 고민들을 좀 거쳤어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주어 없이 말하는 게
아마 번역 직접 UCI팀에서
굉장히 많이 고민하셨을 것 같고
저희도 이걸 굉장히 큰 고민사항으로 삼을 수 있었고
이것도 이제 집합경험에 대한 거인데요
김하수 할머니께서
네,
하도 위안부였다는 것을 흥보니까
내가 차마 말을 못한다라고 하는 것을 흉본다
그들을 흉본다,
위안부를 흉본다니까
역시도 영어로는
아마 대의가 맞을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것도 이게 사실은 굉장히 아무 말 아닌 한 줄이지만
아까 양현수께서 설명하셨던
우리 회가 계속해서
한국 사회에서 와서 느끼셨던 지곡의 한 줄 표현이거든요
사실은 흉봐서 말할 수가 없었다
그거를 대의로 이렇게
영어로는 올바르게 표현하는 것보다
이걸 어스로 바꾸는 게 맞겠다는 생각으로 바꾸는 것을 제안해 드렸습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들이 있고
그다음에 구술 텍스트의 경우
아이고 같은 그런 부분부터 해서
이제 가운데 줄 부분들
이런 것들
그러니까 길게 줄 섰다
라고 하는 게
스트레이트의 가운데
이걸 넣을 거냐
말 거냐 넣는 게 유효하냐는 거죠
사실 유효하냐는 질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게 어떤 효과를 가질까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영문 독자에 어떤 효과가 있을까라고 하는 거
그다음에 대표적으로
김하선 할머니의 증언집은
이게 보이실지는 모르겠는데요
여기 워낙 천천히 말씀하셔서
저희가 일부러 칸을 많이 두었었어요
호흡 자체가 굉장히 기시고 말하는 걸 좀 꺼려하셨었고
천천히 말씀하셨고
말과 말자
휴지가 기셨던 것을
이렇게 하고 싶었던 거죠
그 할머니 에스프리의 일환으로서
그 말투와 정조의 느낌을
시각적으로도 보여드리고 싶었었어요
읽는데
근데 이게 이제 영문으로는
이게 안 되더라고요
이렇게 할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구수 텍스트로 간다는 게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
아니면 이런 좀 이상한 단어를
이렇게 만들 거냐
아니면 그냥
이거는 와 진짜 좋았어
This IS great
제 뜻인데 이런 거 만들 거냐
우리만 쓰는 말이 될 테지만
이런 거 만들 거냐
뭐 이런 게 이제 질문인 거죠
질문입니다
그래서 사실 UCI 팀에서는
저걸 만들 수 있다고 해주셨고
근데 이제 또 10대가 읽어야 되는데
10대는 저런 거 있으면 안 읽는다
그레이트를 바꿔야 된다
이런 얘기가 저희 우리 팀 안에
영어 번역 전문가는 주장을 하고
이런 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안에서의 고민이고
사실 저희는 저 위에가 멋있는데
라고 생각은 했는데
사실 고민이거든요
못 읽겠다고 하면 어떡하지?
그래서 계속 질문을 하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편하게 만들어주는 게
번역에 중요한 걸까요?
사실 한국어 질문 되게 어렵거든요
이런 텍스트를 읽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다시 중간에 왜 이거 다 오류인가
못한가 왜 이렇게 띄어쓰기가 많아
그럼 나도 읽을 때
한 번 더 쉬어야 되나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 걸
저희가 생각을 하고
이런 기호들과 장치들을 만들었던 건데
영문이라고 그러면
너무 쉽게 내용만 알려주면 되는 건지
이런 게 저희한테 고민이 됐던 것 같아요
근데 어쨌든 이 질문도 제기는 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전문 번역가가 말씀하셨처럼
여자가 젊은 층이라고 하면
젊은 층이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도
어쩌면 쟁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질문이 계속 이렇게 이해 가능성이 좀 쉬운 글을 말하는 건지
사실 한국어 증언집 자체도
그렇게 많이 안 일으켰습니다
네, 많이 증언집이
많이 안 팔렸고요
어려운 텍스트인 거잖아요
어려운 텍스트고 마음을 써야만 접할 수 있는 텍스트인 건데
이걸 또 그렇게 번역할 때
이렇게 10대 독자
이렇게 상상을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다음에 독자한테
우리가 사실 요구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
저희는 그 증언사집할 때
독자한테 요구한 거거든요
이거 어려운 거야
어렵게 읽어라고 요구를 한 거였는데
이런 게 번역할 때는
어떻게 가야 될까라는 고민들을 하게 됐던 거고요
그다음에 이게 어쨌든 일본군 위원 문제가
자가격의 범죄임을 밝히려고 하는 작업이고
그걸 피해 생존재의 목소리로 드러내려고 하는 작업일 때
예를 들면 나이 문제를
저희가 지금 한 번쯤은
한국 나이를 했지만
이걸 수정했다거나
아니면 그 사람들
아니면 사람들이 왔어
라고 할 때
그 사람들이 그냥 사람들이 아니라
soldier라는 걸 좀 명확하게
그래서 그냥 사람들이 왔었기 때문에
day로 번역해 주신 것을
저희는 다 soldier
뭐 이런 식으로 바꿔야 된다는 것들
그다음에 검사를 받아서
그러면 그냥 check UP이 아니라
성평검집을 얘기하는 거니까
그런 것들을 명확하게 하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들이 있었고
또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공동 한도 저희는 그때는 그냥 이해하고 넘어갔던 건데
이제 공동 묘지로 해오시니까
저희가 오히려 역으로
더 의미 명확하게 케 이해하게 된
그런 게 있을 때 입니다
그 다음에 못 한국의 어떤 계량 형들 같은 부분들을
좀 더 명확하게
저희가 설명을 가는 각주를 생성을 했습니다 해서
결국은 이제 그 이 공감적 청중을
지기적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에서
언어감각이나 문화의 처리를 고려하면서도
동시에 역사적 사실의 설명을 놓치지 않으면서
증언자의 진정성은 어떻게 표상되어야 되는가에 대한 고민들이 많아져서
그 고민들의 일부를 소개해드리고 싶어서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매우 디테일한 내용들인데
다 이해하셨을 줄로 압니다
그러면 세 번째로
최정무 교수님께서
위안부 증언의 영문 번역과
그 함의에 대한 발표를 해주시겠습니다
박수로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반갑습니다
최정무라고 합니다
저희는 이제 그런데 제가 듣고 시작하기 전에
awesome하고 straight 여기에 대해서 잠깐 설명을 하자면
제가 조금 놀란 것은
여기 감수팀에 영어 하시는 분이
우리 번역자들하고 거의 동시대잖아요
그런데 그거를 젊은이들이 안 읽는다?
No!
왜 그러냐면 그런 거가 만화에 맨날 나와요
네, 만화에
그러니까 당연히 젊은 사람들이 읽는,
아,
그러니까는, awesome!
그러면은, www
그래갖고 awesome 쓰고,
straight 하면은,
크, 진짜 긁고
만화에 노상 나오는 건데,
젊은이들이 당연히 쓰죠
그래서 저희들은 당연하게 구어체로 그렇게 사용을 했었습니다
어,
그건 이제 앞으로,
어, 또,
뭐 더,
어, 위논을 해야 될 부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어, 저한테
주어진 시간이 또 많지가 않기 때문에,
또 제 얘기를 하겠습니다
넘겨야지
그래서 이제 아까 보신 것처럼
올해 초 서울팀에서는 조금 더 많으셨죠
우리보다
저희는 12월 초에 12월 10일 정확하게
그 정도에 시작을 해서
2월 20일에 다 보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히게 했는지를 아시겠죠
제 경우 제가 제가 어린 나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가 정말 이틀을 꼬박 한잠도
눈 한번 안 붙이고
이틀을 꼬박 한 적이 있었어요
근데 저희는 그게 겨울이어서
여러분들은 겨울방학 하시고 계셨지만
저희는 쿼트 제도이기 때문에
1월 첫 주부터 강의를 시작합니다
그래서 저희들 다 강의를 하면서
새 학기에 새 강의를 시작하면서
이거를 했어요
그래서 아마 한 번씩들은 다 쓰러져 누워있었고
원형 탈모도 걸리고,
저 아니고 젊은 친구가
원형 탈모도 걸리고 그랬는데
아무튼 번역을 해서
일단은 이런 작업이 나온 거를
굉장히 감사하게
그런 기회가 주어지는 데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제 이걸 그럼 왜 이 시점에 번역을 하게 됐느냐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올해,
올 가을 앞으로 몇 주 후부터
캘리포니아 공립고등학교에서
10학년 4회,
한국은 커리큘럼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데
9학년에서는 미국자를 해요
그다음에 10학년에는 세계사를 합니다
이제 세계사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미국에서는 이거를 종합적으로 하기 때문에
세계사를 하면서
역사만 하는 게 아니라
거기 사회 사회,
그러니까 사회 과정이에요
그래서 문학도 같이 읽으면서
좀 이렇게 입체적으로 하기 때문에
거기에 이제 사회 감옥에
위안부 역사가 들어가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증언집이 부교제로 사용될 수가 있어요
그래서 그런 거를 기대를 하는데
문제는 아까도 여러 가지 재료 모으시고
정말 수고 많이 하시고
아까 혼다 의원님께서도
이 재료가 많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국회에서 프레셔를 넣을 수 있다
그런데 무슨 말로?
무슨 언어로?
그게 문제인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30년 동안
굉장히 많은 재료를 수고하시고
많은 분들이 하셔서
재료가 많은데
영어로 출간된 자료는
정말 많지 않아요
그래서 저희가 작년에
여가부의 E-뮤지엄 콘텐츠를
영어로 번역을 해서 디지털화시켜서
서울시에서도 같이 참여를 해주셨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번역을 해서
디지털 아카듀를 만들고자 하는 제안을 했어요
그러면서 이제 그 증언집 4집
제가 오래전부터 4집의 그 과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증언집 4를 번역을 하기로 했고
개인적으로는 이건 저의 개인 얘기도 되지만
어떤 면에서는 전체 역사 문제하고도
관계가 없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제가 1991년에 김학순 할머니가 나오시고
그리고 그 해 12월에 동경재판소에 진술을 하시고
그러자마자 그게 11월이니까
제가 12월...
92년부터 이 문제를 가지고
미국에서 논문 같은 것을 발표하고
또 컨퍼런스도 하고 그렇게 했어요
그런 연구 때문에 그랬는지,
2000년 무렵에 정대협에서 저보고
그때까지 나온 증언집
다 번역을 해줄 수 있느냐
그러셨는데 솔직히 말해서
여건이 돼있지 않았어요
한국학이라는 자체도 겨우 시작이 겨우 된 것이
1990년대 초반이었어요
그때부터 겨우 10년 정도의 역량이 모여졌고
물론 그 전에 하신 분들도 있었지만
다른 쪽으로 그러다 보면
한국 문학도 겨우겨우 번역이 시작되고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인력도 없었고
만약에 번역하는 분들
몇 분 정말
다섯 손가락 아래 속한 분들한테
그런 거를 번역을 부탁을 하려면
또 재정이 있어야 되고
그러니까 neither
그러니까 인적 자원도 없었고
재정 자원도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걸 할 수가 없어서
못하겠습니다 말씀을 드리고
내내 이제 그것이 마음에 빛이 됐어요
그랬는데 이제 조금 할 수 있는 여건이
조금 마련이 됐기 때문에
제가 하게 됐습니다
그럼 이제 번역본이
그럼 얼마나 많이 나왔느냐
아까 말씀하신 대로
증언집 1이 1993년에 나오고
그거 번역이 된 것이
1995년에 나왔어요
그게 증언집은 소파 다예요
그다음에 미국 내 조사자들이 발견한 증언집이
두 건 있습니다
하나는 김대실 씨가
저분은 연구자가 아니고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니고요
영화감독이세요
그래서 영화를 만들었어요
같은 제목으로
그래서 그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몇 분을 인터뷰를 하시고
그 내용을 역사적인 배경을
자기가 리서치한 것을 더 넣어서
책으로 꾸몄어요
그게 이제 99년에 나왔고요
그 다음에 뉴욕에서,
워싱턴에서 그 워싱턴 컴포트
웨민 이슈
코알리션이라는 그룹이 있어요
거기서 이제 국회나 이런 데 이제 좀 보내기 위해서
사진을 주로 많이 했어요
그래서 최상미 편집,
윤수님이 사진 그렇게 나왔는데
그래서 이제 위안부들이
컴포트 웨민 스픽
그래서 이제 그 작은 책에
19명의 증언이 들어있었으니까
얼마나 짧은 건지
아마 이해를 하실 거예요
책 자체도 좁고
아무튼 그래서 그거는 거기서 이제 필요에 따라서 그렇게 쓰셨어요
그게 다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다예요
그리고 이제 4권 우리가 한 거
그러니까 30년 동안에
증언지 번역이 둘
1권하고 지금 4권 마친 거가 다예요
그러니까 이거를 가지고
세상에 나가서 얘기하기가 너무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그러면 영어로 번역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가 다 알다시피
한국에서는, 아까도 곽 선생님 말씀하셨지만
각 지역의 한국 여성들만 피해자가 아닌 거잖아요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또 눈을 들어서 보면은
그때 이래로 정말 어마어마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전 세계에서
분쟁지역에 이런 일이 없었던 적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한국인 피해,
생존자의 구슬,
또 뭐 이런 데 대한 영어로 된 증언이 나와서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들의 기본 대타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조금 이따가
제가 더 말씀드리겠지만
성노예라든가 전쟁 시절 강간이라든가 UN에서는
그것을 뭐라고 해요?
Weapons OF the war라고 규정을 하죠
그래서 이제 지금 30년간,
제가 이제 30년간, 보세요
우리가 그 김학순 할머니가 나왔을
그 무렵부터 시작해서
만 볼 때
그 보스니아 때 그 악명 높았던
그 rape camp,
강간 캠프가 있었잖아요
거기에 지금 5만여 명이 추정이 돼요
Day and night
거기서는 진짜
그 다음에 루안다 인종맞살,
짧은 기간에 있었지만
진짜 정말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하는
그때 여성 성기절제 훼손
이런 것들이 너무 많이 일어난 거예요
강간뿐만 아니라
그다음에 그것이 주변 국가로 흩어져요
그래서 루안단 예전의 확대로 콩고
또 나머지 주변국
그런 데까지 흩어져서
무상과격군자들 이런 사람들이 체계적으로 흩어져요
그 주변국에 있는 여성들까지도
이제 간간 성기훼손,
또 뭐 약물로 또 화학물을 붓는다든가
이런 일들을 하고 있고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잘 듣지 못했던
그 수단이 결국은 2012년에 남북으로 갈라져서
두 수단이 됩니다
그런데 거기까지 30년이 걸려요
거의 30년이 걸리는 동안에
그 수많은 잔악행위가
여성들한테 또 자행되고 있었어요
그래서 작년에 우리 이대에 와서 상을 받으셨다고
제가 기억을 하는데
2018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으신 데니스 묵헤게,
그분도 의사세요
근데 이분이 노벨 수상 연설할 때
맨 첫 센턴스를 제가 잊을 수가 없어요
자기는 그러니까는 사인보행과 의사로서
그 급하게 실려오는 여성이 있길래
자기가 맨 처음에 시작을 했는데
급하게 실려오는 여성이 있길래
누가 유산을 하는 줄 알았대요
그런데 그게 아니고
진짜 이렇게 엉망
진짜 만신창이가 된 여성을 데려갔다는 거예요
그게 자기가 처음으로
산부인과 의사로서
환자를 본 거고
그런 여성을 보게 된 거예요
그 이후로 지금 30년째 일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현재 진행 중인 거,
나이지리아 북부 무슬림 복어하람들이 낚시해 간
200 몇 십 명의 여성들
그들이 체계적으로 다 강간하고
애기도 또 낳고
그래서 82명은 돌아오고
나머지 200 몇 명은 아직도 모르고
그다음에 우리가 너무너무
신문에서 시상해서
잘 많이 보셨을 거예요
성노예로 당했던 야지디,
소주민족의 처녀들
이 처녀는 다섯 번째 탈출 중에 성공을 했어요
탈출 중에 옆에 갔든
같이 데리고 나오든
어린아이가 지뢰를 밟아가지고
걔는 죽고
이 여성은 살아남았는데
이 얼굴을 보세요
아무튼 그렇게 되고
우리 아까도 이제 미얀마 얘기 나왔었지만
옛날에 범아 그 지역에 지금 2016년부터
거기 뭐 1948년부터 시작했지만
다시 내전이 재점화가 되면서
그 불교 군대로부터
또 로힝야 여성들이
지금 또 똑같은 일을 당하고 있고
그런 일들이 지금 벌어지고 있고
어떤 여성들의 목소리는 나오고
어떤 여성들의 목소리는 주목을 받지 못해요
그럴 때 이제 우리가 영어로,
지금 현재는 이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영어가 세계공용화가 되기 때문에
영어로 이런 증언집이 나올 때
우리가 굉장히 많은 용기를 줄 수가 있고
또 힘을 줄 수가 있고
또 어떤 면에서는
공공화를 시킬 수 있는
그런 무기가 될 수가 있죠
그뿐만 아니라
영어로 번역이 돼서 나올 때
이것이 영어, 문학을 보면 그래요
영어로 번역이 돼서 나올 때
다른 유럽 언어라든가
또 다른 언어들이
영어가 하나의 중역의 기본 텍스트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것도 저희는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런 것이 나올 때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같이 이것을 읽고 이해하고
또 문제를 의식하고
또 생존자의 트라우마뿐만 아니라
아까 UN에서 말한 그것은 뭐였냐면
이게 왜 전쟁 무기가 되느냐 하면
이렇게 당한 성노예로
또는 강간을 당하고
아니면 뮤틸레이트를 당한 여성들의 경우
본인만 피해자일 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공동체가 다 망가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 자체가 무너지는 거예요
그런 거기 때문에
이것을 전쟁 무기로 규정을 하게 되죠
그래서 이런 경우
정말 개인 여성 한 사람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적인 역사적인 트라우마를
어떻게 같이
정말 트라우마를 같이 풀고
또 공동체를 같이 회복을 하고
그래서 인간성을 회복하고
같이 살 것인가
이런 문제까지도 연결이 되기 때문에
그래서 이럴 때
혹시 선생님들이 오실지 몰라서
제가 약간의 이론적인 얘기를 좀 했어요
우리가 잘 아시는 그 한나 아렌트나,
루크 볼텐스키,
수잔 선탁 이런 사람들이 얘기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Distant Suffering이라는 얘기를 해요
그래서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그것에 대해서 그냥 어떤 연민을 가지고
그것이 정치화가 됐을 때
거기에 있는 문제점보다는
이런 것에서 더 나가서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고 개입하고
윤리적인 책임을 지고
그래서 그들의 얼굴에
우리가 함께 동참하는
그 윤리성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증언집이 가장 기본적인 텍스트이긴 하지만
그렇게 우리 마음에 같이 울림이 있다면
그래서 같이 우리가 전 세계 사람들이
거의 같이 동참을 할 수가 있다면
그 고통에 같이 동참을 하고
그 트라우마를 같이 해결하고
또 공동체를 같이 구축할 수 있다면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는 거고
그러기 위해서 영어 번역이 의의를 갖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캘리포니아 고등학교의 경우
그런 한 예가 되겠는데요
캘리포니아 아시다시피
진짜 다민족이 살고 있어요
제가 이제 UCL에서 가르칠 때
문 밖에 나가면
174개의 랭귀지를 한다
그럴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런, 그러면 이 많은 사람들이
다 평화롭게 이민 와서 다 평화롭게 멜팅팟을 이루고 사느냐?
그렇지 않아요
그렇잖아요?
그래서 이제 일상과 일터와 학교와
이 모든 데서
매일같이 이런 것들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럴 때 불편함과 트라우마,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일본과 한국,
그다음에 제가 여기도 아주 우리보다 더한 경우가 있어요
20세기 초 터키와 그 이른나라 알맹이야
진짜 인종말살을 했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 흩어지고
이런 후손들이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는 후손들이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그런 것 때문에도
더 이제 이런 커리큘럼을 만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이 불편한 진실
이 불편한 진실을
적어도 그 가해 집단의 후손들과 피해
집단의 후손들이
한 교실 안에서 교실이라는 안전한 공간 내에서 같이 문제를 놓고
같이 토론을 하고
같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를 하고
또 거기서 문제가 해결되고
이렇게 한다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고 생각을 하고
그래서 캘리포니아 주에서도
올해부터 이런 문제를 굉장히 불편하죠
캘리포니아에서도 사실은 캘리포니아에 살고 계신
일본 분들은 굉장히 트라우마들이 있어요
2차 대전 때 이들도
집단적으로 수용소 생활을 했었어요
국민이라 해서
그분들이 일본하고
아무 상관이 없이
이민 와서 3세대까지 된 사람들이라도
다 그런 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분들한테 너희들은 우리의 적이야
라고 얘기할 수는 없어요
이제 그런 아주 굉장히 참 어려운 미묘하고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문제를 같이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있고
여기서 이제 그런 커리큘럼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고
또 자신감이 필요하고
그것이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그런 어떤 소망 속에서
그런 일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올해부터 시작하니까
작년에 고등학교 역사 교사 여러분들이 웹샵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거기 가서
이런 얘기를 하고
또 그분들이 어떤 프로젝트를 하나 보니까
이렇게 책자를 만드셔서
이 안에 굉장히 아주 상당히 자세한
역사적인 그런 연구들,
자료들이 많이 모으셨더라고요
그래서 이걸 놓고
또 오후에는 그거 가지고 워크숍들을 하시고
그래서 워크숍 하는데
제가 참가를 해서 보고 그러는데
이제 거기서 보니까
결론 내리는 것 중에 하나가
여성 및 여아들의 인신매매 이슈
우리가 지난 봄에도 아마 보신 분은 기억나겠지만
지난 봄도 아니고
여름 초인가요?
북한 탈북 여성들이 거대한 중국에서
어마어마한 인신매매
네트워크 속에 있다는 것이 발표가 됐는데
영국에서 출판이 됐는데
그런 것들이 지금 10대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 중에 하나죠
그래서 그런 것들을 가지고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이런 문제 가지고
전쟁과 이런 얘기도 할 수 있지만
또 이런 다양한 문제들을
우리가 같이 연계해서 얘기를 할 수가 있는
그래서 공공교육에 이런 것들이 끼치는 영향들
아니면 순기능적 영향들이겠죠
그래서 그런 것을 제가 보면서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럼 뭐 갖고 국회에 나가서,
콩그레스에 나가서 얘기를 할 것인가?
이제 그런 것 때문에
이제 접근성의 문제가
지금 굉장히 심각한 것 같아요
아까도 보여드렸지만
증언집 두 권밖에 번역이 안 됐고
지금 사건도 지금 저희들이 이제 출판 준비 중에 있는 거고
그러면 이제 이 접근성을
어떻게 우리가 해결할 것인가?
우리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거가
저는 이제 접근성을 하려면
우리 세대의 접근성이라는 건
디지털 알카이브가 되겠죠
그래서 이 디지털 알카이브를
그리고 이제 우리가 텍스트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제 멀티미디어를 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지난번에 하신 기억에 대한
여러 가지 시각 자료들,
그런 것과 목소리와 소리와 문자와 이런 것들이 다 합해져 가지고
입체적으로 조명을 하는
그런 아카이브를 만들 수가 있고
그리고 이제 지금 제가 이렇게 보니까
그 자료들이 여러 군데 흩어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그것들을 한꺼번에 모아서
체계적으로 물론 있는 곳은
다른 곳에 있을 수 있어도
인터넷 상에서는 하나로 모을 수가 있잖아요
그래서 그래서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보관하고
이걸 영어로 번역을 하고 디지털화하고
또 시각적인 거 오디오, 비주얼
이런 것들을 다 합하면
굉장히 풍성한 그런 알카이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는 무엇보다도 IT 강국이라고 자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근데 그런 나라가
지금 알카이브가 이렇게 돼 있다는 건
진짜 정말 문제가 크...
굉장히 큰 문제예요
진짜 이건 우리의 책임인 거지
다른 사람이 안 알아준다고
우리가 얘기를 할 거가 못 되는 거가
우리가 알리지를 않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얘기하면
그거는 우리가...
우리의 책임을 반기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 군데 산재되어 있는 자료들
이런 거를 그리고 아까도 우리 젊은 세대 얘기를 했지만
제가 며칠 전에도 보니까
한국에서도 오디오북이
굉장히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시장이 굉장히 확장되고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거는 당연한 것 같아요
저도 이제 지금 뭐 들으려면
오디오북으로 이제 뭐 운전하고 갈 때
오디오북으로 듣고 가거든요
예를 들어서 그 시간 동안에
그럴 경우 이제
그러니까 이제 멀티미디어 아카이빙이 굉장히 필요하고
또 효과적이고 이렇게 되면
또 무슨 또 이점이 있냐면
책이 지금 우리가 여기 9권의 증언이 있어요
그러면 그 한 사람을 하기 위해서
책 한 권을 다 읽어야지
다 구입을 해야지 돼요
그런데 그렇지 않고
벌써 그렇게 됐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제가 굉장히 특히 서울시에서 오신 분들께
부탁을 드리고 싶고요
그 다음에 전략과 방법에 대해서
간단하게 얘기를 하겠습니다
그래서 조금 아까 말씀드린 대로
디지털 오디오 비디오
이런 거를 입체적으로 하고
그러면 한 사람의 생애를
그냥 끄집어낼 수 있는,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하는 게 아니라
이제 그렇게 하고
아까 그 곽 선생님하고
김수라 선생님이 하신 것처럼
그런 여러 가지 연구자료들을 또 한 사람 한 사람 당으로 넣어서 할 수가 있고
그래서 이제 이런 것들을 하는 것을
저는 염두에 두고
저희는 번역을 시작을 했어요
그래서 이제 이것들을 우리가 번역을 하고
이것들을 읽을 때
이것을 자막으로 입힐 수 있는가
예를 들어서
그리고 이것을 읽을 때
이 할머니들 목소리가 성우를 통해서
이것을 읽을 때
이 할머니들의 뉘앙스가 나올 수 있을까?
이런 것에 저희들이 신경을 많이 썼고요
그래서 인적 자원을
제가 잠시 말씀을 드리면
저희 팀이 서울대하고는
조금 다르게 했어요
팀을 제가 이 할머니들이
다양한 지역으로 보내셨기 때문에
제가 빨리 하겠습니다
이런 분들의 경험을 이해하고
이들의 말을 고증하고
또 정확히 번역하고
이런 사람들이 필요하다 싶어서
일본학 전문가 한 사람,
이 사람은 일본에서 자랐어요
그다음에 중국학 전문가인데
중국하고 한국을 같이 해서
한국말도 굉장히 유창하고
그다음에 중국에서 자랐어요
그다음에 한국에서 자라고 낳고
자라고 교육받은 한국학 전문가
그래서 이제 세 명
그 다음에 이제 한국과 미국의 양쪽 언어에 능숙하고
문화적 배경에 익숙한
그러나 한국 사회에 가족들하고
관계를 계속 갖고 있어서
양쪽이 다 능한 사람
그 다음에 이제 이 할머니들이
초기에 교육들을 많이 못 받으셔서
아까도 어떤 할머니가
내 삶을 돌려달라
그 젊음의 기회를 놓치셨잖아요
그래서 이제 그런 기회를 생각을 해서
교육 수준이 사실 그걸 읽어보면
문장 안 되는 것도 너무 많고
주어동사 많이 빠지고
그런 경우들이 많이 있는데
그런 교육 수준이 낮은 기층민들이 사용하는 구어적 표현
왜냐하면 저희 사람들 다 박사들이에요
박사를 받았지 않으면
지금 논문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라서
이들이 쓰는 용어는 전혀 달라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제가 이제 맨 처음부터
어려운 말 쓰지마 8학년 이하의 단어를 사용을 해야 돼
그렇게 해놓고도
그게 또 미심쩍어 가지고
그러니까 완전 네이티브 스피커 백인 여성이에요 근데
이제 한국어를
상당히 이해를 하는
그런 친구가 이제
이 구어체 표현을 체크하는
그리고 이제 저도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았고
또 미국에서 애들을 키웠기 때문에
걔네들이 보는 만화 저도 다 같이 보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도 있었고요
그래서 이제 이 한국어 원어민,
영어 원어민 또 니어 원어민을 짝으로 만들었어요
짝으로 만들어서
이제 폐어로 이제 번역을 한 짝이 한 명
그러니까 모두 합해서
이제 한 두 서너 주선 한 번에 할머니들을 하게 됐는데
그리고 이제 또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일본 학 전문,
중국 학 전문,
한국 학 전문 다 따로 있기 때문에
아까 양현아 선생님이 감탄하시던
그런 리서치를 할 수가 있었어요
그리고 이제 그래서 저희들이 원했던 거는
그 번역의 정확성뿐만 아니라
그 구어적 표현의 적절성
그리고 그것이 정말 영어같이 들리는가
그래서 이제 소리, 아까도 스페이스를 놔두셨다고 그랬었는데
저희도 소리나 리듬이나 말투
이런 거를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어요
표현의 색채,
그래서 사실은 문학,
한국 문학을 외국어로
전문 번역가를 모시고
또 워크숍도 했어요
문학적인 감각을 좀 키우기 위해서
그래서 여러 가지를 했기 때문에
굉장히 번거롭고 서울대 못지않게
저희들도 다단계로 했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번역의 이런 질과
또 영어관의 독자들한테
설득력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을 위해서
이런 작업을 감수를 했고
여러가지 번역시 고려된 상황이 있는데
시간이 없다고
계속 최기자 선생님이 취계를 가르쳐 주시기 때문에
그냥 읽으시고요
그 다음에 이제 그 협동작업도
이제 아까 말씀드린 대로
다단계로 검토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한 단계 더 높아요
여섯 단계로
그래서 초벌번역을 하고
그걸 원어민한테 보내서
또 그 구어체 표현을 체크를 하고
그러면 이제 저한테 보내요
그럼 제가 거기서
또 이게 제가 C이고 A라는 게
한 팀을 A라고 불렀고
원어민은 B라고 불러서
제가 C인데 팀장으로서
그럼 제가 수정된,
이렇게 해서 보낸 거를
제가 일단은 저희들이 하면은
일단은 다시 원번역자들한테 다 보내서
검토를 받아요
그러니까 수정 제안한 것을 인정을 하느냐
이런 의미에서 그래서 이제 그들이 또 그걸 검토하고 수정하면
제가 받아서 고증할 내용들
제가 이제 제가 책임자니까
1차 리서치를 하고
제가 못하는 경우
뭐 올해의 강의 어디 있느냐
뭐 이런 것들을 찾으려면은
예 그래서 이제 추가로
각 지역 전문가 번역자들한테 의뢰를 하고
이제 제가 그래서 다 정리를 해서
수정을 해서
이제 다시 원래 팀한테 보내요
그럼 그 원래 팀이 또 제가 보낸 것을 기반으로 해서
그때쯤 되면 벌써 4단계를 거쳤잖아요
그거를 이제 기반으로 해서
수정한 거를 다시 저한테
그럼 제가 거기다 또 수정을 해서
서울대학에 보내는 그런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래서 역사사회학적인 고려를 했었고요
이 여성들의 백그라운드나
소위 말해서
소셜 이코노믹 백그라운드를 체크한 거죠
그다음에 이 여성들이
고대가 어려운 삶을 통했다는
성인기에 도달한 전쟁 이후에 돌아와서도
빈곤과 사회적 편견과
이런 것을 겸했다는 것
이런 것 그리고 이제 이분들이
이미 70대 나이에 이르렀다는
이런 여러 가지들을 고려를 하게 됐고
또 그래서 그들이 하위주체성으로서의 용어 선택하는 것
표현 선택을 할 때
분노, 수치심, 두려움, 욕설,
불구명한 기억
이런 것들을 다 저희들이 감안을 하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지역 언어들도
굉장히 여러 군데예요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이분들이 여러 군데로 돌아다녔기 때문에
각 지역에서 픽업하는 것들이 또 있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다 추적을 해가지고
저도 이제 학부 때
국문학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언어학적인 배경이 좀 있어서
그런 거를 추적을 해서 더 했고
진지카론은 진짜 제가 어디서 찾아야 되는지 몰라서
그거는 못 찾았어요
그리고 이제 수행성을
저희가 신경을 썼어요
이게 구술 텍스트이기 때문에
스페이스도 있었지만
리듬, 비트, 멈춤
이런 것들을 했고
또 이제 문장이 길지 않,
문장 절대 길게 하지 말라
제가 어떤 경우에는
본래 문장 사이즈로 하라고 주문한 적도 있었어요
왜냐면 이거 설명을 하다 보면
영어로 길어지니까
그렇지 않고
그 문장이 사이즈 정도 될 정도로 하라 그렇게 했고
그 다음에 이제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오디오북, 팟캐스트
이런 거를 염두에 뒀어요
그래서 이런 거로 할 때
진짜 문장이 길어지면
누가 듣겠어요
이게 이렇게 리듬감이 있어야지 되니까
그래서 이제 그러고
이것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비디오로 나갈 때
거기에 이제 자막으로 쓸 수도 있기 때문에
자막 할 때 또 룰이 있어요
여러분들 자막 보시면 그냥 보실 수도 있지만
그것도 굉장히 이렇게 절제를 하면서 합니다
그래서 이제 그런 것들도
자막 쓰는 분한테도
자문을 받아서
훈련을 받은 적도 있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가능하면
아까도 제가 말씀드렸지만
공감을 우리가 그 연민이 아니라
공감으로 가치를 하고
같이 이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그런 것을 이제 저희들이 염두에 두고 했고요
그다음에 이제 연구자들의 지금 양현아
선생님 팀
그들이 이제 고려하셨던
또 고민하셨던 것들도
저희들이 이제 또 같이 고민을 하고 가능하면
거기서 서울팀에서 그러니까는
그 지원팀에서 하신 내용에
또 그 뜻에 부합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또 일종의 의구심도 있으셨던 것 같아요
오리엔탈리즘 또는 일세계 페미니즘의 그런 것들도 No longer the problem
그렇지만 그것도 혹시 의구심을 가지실까 봐
그런 것도 저희들이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과제들이
영어로 번역된 자료 부족에 대해서는
진짜 제가 더 이상 강조할 수 없을 만큼 필요하고요
그래서 이제부터가 사실은 시작인 것 같아요
여기서도 연구도 어느 만큼 축적이 됐고
또 증언도 이제는 할머니들이 많이 돌아가시고
그런데 여기서 제가 또 한 가지 이걸 하면서
아까 제가 그런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이걸 하면서
작년에 저희가 이걸 하고 난 다음에 또 배운 것이 있었어요
홀로코스트 뮤지엄에서는 이미 포스트
그러니까 홀로코스트 생존자들하고
이 할머니들하고 거의 같은 나이였잖아요
같은 때니까
비슷하게 그분들을 위해서
인터랙티브한 알카이브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굉장히 많은 목소리들을 담아놓고
그 다음에 이제 홀로그램이나
이런 거를 켜놓고 가서
직접 말을 건다는 거예요
그 할머니들 이미지에다가 그러면 이제 거기에 대답하는
그런 것까지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굉장히 시사를 받는 점이 많이 있고
그래서 저는 앞으로 우리가 해야 될 일들이
이제부터 이제부터는
진짜 발로 뛰는 것도
아직도 중요하고
김수라 선생님 아직도 가셔야 되고
곽 선생님이랑 아직도 가셔야 되지만
또 여기 책상에 앉아서
이거를 또 번역하는 사람들도
또 많이 나와야 될 것 같아요
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영어 번역 작업 말씀을 드리면서
저희 한국 팀에서 작업했을 때
이제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들을 많이 제기해 주셨습니다
특히 교육의 문제
그리고 다매체 상황에서
새로운 텍스트 또는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의 중요성
그런 것을 고려한 번역
이런 것까지를 제기해 주셨고
또 그런 문제의식 속에서
성공적인 번역이 나왔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조금 힘드시긴 할 텐데요
마지막으로 일본의 상황
그리고 문제의식을 듣겠습니다
김부장 선생님께서 일본어로 발표를 해주시기 때문에
통역기를 착용하실 수 있습니다
김부장 선생님께서 일본 사회에서
위안부 증언 듣기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발표해 주시겠습니다
박수로 맞춰주십시오
그렇다면 저는 일본에서 온 김푸들이라고 합니다만
오늘은 일본어로 하겠습니다
일본 사회에서 1990년대는 총회의 시대이라고 불렀습니다
김학순 등 한국,
아시아 각 지역의 일본군 양국 피해자들이
오랫동안 주목을 하고,
난리 났다 등을 계속해서 총회의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계기로 문제解決을 위해 노력한 시민단체는 많습니다
이한후 문제解決 운동에서 피해 증거는 결정적으로自由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와 함께
이한후 문제에 관한 일정 조언을 발표한 후
이한후 문제는 끝났다!
라고 말하고
이한후 피해의 증거와 사실,
기억의 상황을 깨져보려고 합니다
또한 일본 사회에서도 피해
증언에 진심으로 귀에 닫혔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저 증언 자체가 거짓이라고 의지하고
피해자들 중에서
한국인 피해자들은 강력한 바싱의 대처가 되었습니다
그 중심에 있었는 것은
새로운 역사 교과서 만들기 회
일본 관계 등의 역사 주의자들
인터넷이 공개된 2000년대 중반에서
네트워크 이라고 불리는
매우 평범한 시민,
특히 남성들이었습니다
최근에는 특히 최근에는 일본 전체가
역사修正주의에 놓여져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잊지 못할 것은
창조회 일본 관계의 결성과
거의 똑같은 1990년대後半
즉 20년 전
일본의 일부 페미니스트 중에서
다른 방법으로 피해 증거에 의해 의심하는 시장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우에노 치즈코의 이 책에서 시청한 모델 피가자 존재입니다
우에노는 한국인의 안팎을 연결해
무궁한 순결한 모델 피가자 존재가 만들어졌지만
문제는 이야기자 보다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일 뿐이며
듣고 싶어하는 질문의 문제 등으로 시청했습니다
즉 모델 피가자 존재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聞き手と聞き取り方法にあり、それを問題視する形で被害?言を疑 モデル被害者論を事例に、この言?がどのように?史修正史に結び 일본에서는
8冊의 한국에서는 8冊의 소견서가 출판이 되었습니다만
이 중 첫 번째는 같은 년도에
일본에서 번역이 출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국편의 첫 번째는 また1996年に日本で出版されましたそして2000年代に入っ
그리고 이것 외에도
일본의 책자에 대한 한국인 안팎에 관한 증언이
이런 모양으로 나왔습니다
특히,川田文子님에 대한 증언은
1887년,
90년 전의 것과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 외에는 이런 증언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진을 보세요
이런 모양으로 증언서가 꽤 많습니다
그리고 이것만으로도 일본의 경우,
병력들,
국가의 병력들의 증언이 많이 모여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런 모양으로 이것 외에도 많은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특히 문제화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이 중에서, 아까 말씀드렸던
우에노 지수 씨가 참고문을 군에 올려,
본 부에서 발표한 것은
한국의 증거인사 중에서
첫 번째 주입니다
그럼,
양자는 어떤 관계에 있어서,
어떤 식으로 짚여졌을까요?
그ため에 먼저,
모델 피해자 논란은 무엇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잊지 못할 것은,
우에노가 이것을 군사,
정치적 逃亡や自殺を?ったが阻止されたというものですそしてその上で無
경제적으로 유도에 의해
그것과 억지로 알고 있으며
이야기에 들어갔다거나
아니면 군표에 담은다거나
피해자가 이름을 안기고 싶어하는 경제적,
정치적인 효과가 있는 라고 비판했습니다 강행하면
우에노는 연권법에 대한 규정과 2위 재판의 2분法을 만들고
규정을 과거적인 순결적인 라고 비판하는 것에서
성도, 정의, 개념,
그것 자체가否정되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우에노가 이야기자 보다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에만
듣고 싶어하는 듣고 싶은 문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추가적으로 무구한 피해 소설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듣고 싶은 작용성을 지적했다고 말했습니다
つまりモデル被害者像を作り上げたのは聞き手だと主張しましたと 上野は、韓?女性運動による慰安婦言?を民族主義的な言?だとし 일본인 양府와의 국적에 의한 분노를 가지고 있는 효과가 있고
군사적 도래성 파라다임은
한국의 반일 가시아이즘을 위해 도입되지만
민족의 현실은 또한 가프 정치적인 파라다임의 변신입니다
세 번째, 민족의 현실의 뒤로
대일 정치적 협력이 임명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한국의 민족 정치가
그의 표면을 역사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만
根?くくすぶっているんだというふうに言いました。つまり上野は 韓?の反日民主主義のナショナリズムの動員につながるというふう ?言、?言集1を?めばわかることですが、上野のモデル被害者論
1点目、モデル被害者論の最大の問題点は、連行時に?女であり
이런具?적인 제안이 없어서,
본격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경우,
웨너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대형 교회의 민족 건설 비판은,
모델 피해자의 예를 보다,
이런 식으로 발표하여,
대형 교회가,
피해자,
피해 여성의 증언을導いた,
기계에 따른 것처럼,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第二,
하지만,
처음으로,
증언의 한 주의 기계는,
대형 교회 보다,
젊은 여성의 지구과학자가 모인 체중대학이었습니다
이 내용은 1주의 일본어版에서도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우에노는 이것에 관심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서,
이 1주의 증언을 정밀히 읽지 못한 것입니다.逆으로,
관심이 있었다면,
제가 아까 설명한 것처럼,
의도적으로 듣는 것이
대다수의 교훈이 될 것이라고 공개했습니다
3.
1주의 증언이 우에노의 말에 따른
불중한 피해자의 피해자가 없어져 있고,
숨겨져 있지 않습니다
1주의 증언은 19명의 피해자의 증언을 녹화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인 문옥주는 위안부에 2번 갔는데,
2번은 속았다고,
우스우스한 소식에 의해
빌바노 위안부에 갔는데
우에노의 말에 따른 군표에 담긴 불중한 피해자의 사례입니다
우에노는 바이신 파라데임
문호츠의 증언을 논의하고 있으며
왜 모델 피간자로서는
문호츠의 증언을 무시하는가
또한,
웨너는 모델 피간자와는限らない
다양한 케이스의 피간자에 대해서貧돈이나
부모에 의한 계약,
지역 보수의?制 전개의 유혹이나 사기 마감의 문을 열어드리고 있습니다
이것을 제가 봤을 때
피해자의 증언이 거의 이것에 맞게 됩니다
즉,
이렇게,
다음은 스킵하겠습니다
이렇게 누가 기기의 증언을 보여주지 않고
중요한 증언을 보여주는 수준에도
근거가 없다는 모델 피해자 의혹은 인정 비평에 의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서 웨이너는 이것을 사용해서
양궁의 연권법에 대한
무궁한 양궁조,
즉,
규제,
불중한 양궁,
즉,
지하수 등 규제의 2분을 모아
전자의 정치적 경제가
규제에 의해 만들어진 것처럼 인상적이고,
이것을 성부사별과 민족전설,
더욱한 한국의 반일,
나셔널리즘의 동의에 맞서
정치적 정치적 정치성을否정하고 있습니다
웨이노는 주로의 역사적 정치적 정치와는 다르게
즉,
페미니즘,
가프정치의 비판을 이용해
역사적 정치적 정치을 실시한 것이지 않나요?
한편, 웨이노는 박야의
태국의 이안흐에서 그린 이안흐의 작품에는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
즉, 자아적인
이안흐의 작품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致命적인 것은
이 책이 역사적 수정자처럼
학문적인 지속의 지상성에 의해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유엔의 피해자 논란 모델 피해자 논란은
한국인 위안부의 연구소의 교정 2위의 2분法을 설정해서
전사가 기계에 의해 만들어졌다
모델 피해자다 라고否정합니다만
그 기계의根규는示していません 또한
유엔은 制度冷?を主張する韓?の反日ナショナリズムと批判することによ 세계로의 중대한 문제가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책임을 던져서
정치적인 국가의 효과를 얻었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을 예상했던
역사적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는,
의사소설 4의 번역,
관고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볼까요
저는 우예노 씨에게 비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작년에 제가 일본 여성과 한국 여성과 함께
4주의 발언을 일본에서 번역,
관공을 위해 번역, 편집을 하고 있습니다
그 기회가 되었다는 것은
발언 4주의 편집을 한 양효나 교수님을 바우락,
제가 소속하는 여성 단체인 바우락의 상호작용 심포지엄에 참여한 것이었습니다
양효나 씨의 이 작품을 이해하는 도움을 받은 성경 4주의
일부 일본어로 번역한 것에 따라
4주의 전역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다쿠도 올해 4월에 모든 역을 완성했습니다
이것은 생일 2년에 제출을 받은 것에
이 자리에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는 양휘나 씨 それからイ?ナヨン氏も出筆するバウラック編性暴力比喩を聞くと 이론과 실전을 보여준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역사 연구원에서
오랄 히스토리 연구원의 오오카도 마사카즈씨
아까 신보즈음의 코멘테이터에도 있습니다만
얘기하는 역사,
듣는 역사
이것을 2017년 2년 전에 관광하고
자신의 히스토리 경험에서
히스토리 방법을 테마을 듣기에서
인생을 듣기에 변화하여 듣는 것을
다음 3가지 과정으로 정리했습니다
먼저 듣는 사람이
말을 듣는 과정에 의해 아스크하는 과정
그 다음에 침묵을 포함해서 듣는 과정
그 이후에 말을 듣는 사람이 듣는 과정에서의 대응 과정이 있습니다
특히 듣는 것,
리슨의 중요성을 지적했고
1990년대에서 듣는 역사,
그 중에서 경험을 듣는 역사가 넓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 방법론을 오가도
씨가 말하기 전에
16년 전의 한국에서
지각적으로 실시한 것이
이 4주의 증언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具?적으로는
조론 속에서 적혀 있는 것입니다が
면접자가 아니라,
말하는 사바이벌의 증언에
지적권을 주었기 때문에
물어보기에서 듣기까지,
분명히 적혀있을 것처럼
즉,
오가도가 말하는 Askから Listen을
실시한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을 담은
인생 전체에 관심을 주겠다는
이런 논리적인背景이示여졌습니다 この方針のもとで、余れた9人の被害?言では、被害?言に?する
このことと密接に?連することですが、とりわけ語ることはもちろ それは?言4週の偏者たちが慰安婦の??が何を意味するのか、そ
正面から向き合い、性暴力サバイバ?の?言と?史序述のあり方 리슨을 하고,
아직도 보수했죠
그 과정에서 이한후 경험은
인간의 성의 상대적인 지위에 의한 것을 비판하는 것이고
침묵을 증명자들에게 증명받은 트라우마적인傷,傷跡의 깊이자 증명의 에,
에,
부잘이 아니라
이한후 문제의 성격과 지속성을 전달하는 침묵으로서가 증명이다
라고 이해하고
そして不確かな記憶に?しても、?制と?の情報の中で連れていか ?日テキストだというふうにしていますこのように4週は性暴力被
などの意味を考え?き、被害を含む人生を丸ごと受け止め、それを 家父長生だけではなくて、植民地主義との?係も、このテキストの 어느 날 갑자기 연결이 된다는 이야기만을 강조하고 있다라는 것을
잘못하는 흔적이 일본에 있습니다
이 방식의 방식의 논란에 맞서서,
4주의 증언은 기소해서
이것에 대한 반응이 되어있습니다
4주의 조언에서示された 것처럼,
자신을 재현하는 증언자의 공식에서
정렬화된 위안 부, の姿を見つけ出すのは難しいからです終わりに入っていきたいと思
국가의 역사를 정밀하게 가르쳐주지 못했던
일본의 역사 교육의 소상
바로 제가 일본의 학교에서 모두 졸업을 했지만
그런 것,
저 자신이 그렇습니다
일본 사회에서는 한국인 양후 사바이벌의 피해
증언을 듣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것은 호시이든,
어떤 리ベラル한 일본인이든
同じものを私は感じます。例えば、朝鮮人や被害者に、なぜ性?? 모델 피가者論에 따라
페미니즘의 일정,
심리적인 일본의 일부 페미니스트는
식민지역을 내부화한 자신의 나셔나이즘에 불구하고
한국인 양국에 관한 사실관계를
가프정치적 비판의??에서しか 상상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스트 코로나에서나
트랜스 나셔나이즘에서나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 양국의 피해 증거에 의해
일본 사회에 묻혀져 있는 것은
부정적인 여성의 인권 뿐만 아니라
국민의힘의 비판적인 역사적 인식입니다
일본에住는 저는 한국인 양국 문제와 동일하게
국민의힘의 피해를背景으로 둔 청-영-고의 문제가
인권 문제,
역사 문제에서라도 인식할 수 없는
일본 사회에서
국가의 역사를 향해
인권, 역사의식을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본 사회에서 피해 증명을 듣는 것의 불가능성을 넘기고
그 가능성의?을 조금이라도 넓게 만들기 위해
이완후 사바이벌의 4가지의 일을 사람으로서
경험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그 사회적, 역사적인 문제를 깊이 깨닫고
그것들을 역사에 남아있고
미래에 받아들여질려고 바랍니다
4주의 발표,
번역을 발표하는 것이
그 중의 하나입니다
한국과 일본에서
한국인의 발표가 어떻게 들여다보며 적혀있는지
일본 사회에서 어떻게 들여다보며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다시 한번 검토하고
기억에 두는 작업은
운동 뿐만 아니라
오랄 히스토리 연구의 성장,
일본 사회에서의 이항구 문제의 이해 촉진에도 기여합니다
이것을 마음으로 기대하고
이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마지막 발표를 해주시면서
상당히 고무된 음성으로 발표를 해주셨습니다
저희가 감정적이어야 되는데
일본에서 오신 김 부장님께서
감정적이 된 게 아닌가 생각이 있습니다
위안부 피해의 구술사를
미래에 계승하기 위해서
사집의 번역이 굉장히 필요하고 절실하다라고 하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해주셨습니다
이번 2부 세션이 굉장히 긴 여정을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긴 여정을 걸어왔습니다
잠시 쉬고요
토론으로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겠습니다
저희 10분만 쉬겠습니다
그래서 50분에 시작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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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시 : 2019년 8월 13일(화) 13:00~18:30
장 소 : 3층 소회의실
내 용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국제심포지엄